[서울혁신파크에서 보낸 6년] 겨울 연가
[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마을① : 봄 ]
[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마을② : 여름 ]
[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마을③ : 가을 ]에서 이어집니다.
서울혁신파크에 눈이 내리는 날, 입에선 벌레가 산다.
혁신파크의 겨울이 무척 아름다워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서, 벌레가 내 입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춥다고 건물 안에 머무는 것만 능사가 아니다. 모름지기 겨울은, 추워야 제멋이다. 특히 혁신파크에 눈이 오면 눈꽃이 흐드러지게 핀 풍경을 만나야 한다. 눈이 쌓일라치면 혁신광장으로 향한다. 동네 꼬마 녀석들은 추운 줄도 모르고 광장에 가서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을 만든다. 눈이 마냥 즐겁다.
겨울에는 달달한 것이 필요하다. 카페에서 달달한 무엇을 마신다. 생도 이렇게 달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생의 달달함은 지극히 짧다. 쓰디쓴 맛을 더 많이 접하는 것이 인생이다.
공원 기능도 하는 곳이 혁신파크인데 나는 공원이면 있어야 하는 것이 묘지라고 본다. 내가 가본 선진국의 공원에는 꼬박꼬박 묘지가 있었다.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면 죽음에 대해서도 같아야 한다. 죽음은 인간이 누리는 거의 유일한 평등이다. 죽음을 마냥 삶의 대극으로, 슬픔이자 두려움으로만 여긴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묘지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일상에서 자연스레 만나는 장소다. 그래서 묘지는 죽은 이를 위한 것만이 아니다. 산 사람에게 삶을 누리는 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준다. 즉 삶을 성찰하게 만든다. 죽음이 두렵고 무서운 것이 아님을 인식하게 만든다.
세월호 참사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죽은 이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이 드러났다. 죽은 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살아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에게 차별 없이 대하는 태도가 그래서 필요하다. 성별, 외모, 성적, 학벌, 직업, 지위 등 어떤 것으로도 우리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어떤 삶과 죽음이든 홀대받지 않는 것, 그것이 혁신의 기본이 아닐까.
소녀상이라도 좋고, 세월호 참사 추모비라도 좋다. 나는 혁신광장에서 어떤 죽음을 생각한 적도 있다. 겨울이기에 어쩔 수 없이 쓸쓸함을 머금은 혁신파크지만, 그것이 나쁘지 않다. 세상에 쓸쓸함 없이 우리는 어떻게 고독할 수 있을까. 고립 아닌 고독, 고립 아닌 독립을 생각하는 계절로 겨울은 제격이다.
나는 혁신파크를 하나의 마을이라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나는 마을 주민으로서 마을살이를 했다. 마을은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좋은 것이다. 다양함 속에서 나는 또 한 자락 자란다. 그래서 언젠가 이런 말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
혁신파크,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