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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대낭만 Jonathan Feel Nov 10. 2017

그해 여름, 하얀 커피 꽃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밤9시의커피] 커피 산지에서 만난 커피 꽃과 별처럼 내려앉은 그녀   

공항을 찾아가는 까닭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공항 대합실에 서서 출발하는 항공편들의 목적지를 볼 때마다 그토록 심하게 가슴이 두근거리겠지. 망각, 망실, 혹은 망명을 향한 무의식적인 매혹.  _ 김연수, 《여행할 권리》


그해 여름, 나는 우주 한가운데 있었다. 내 주변은 별로 촘촘하게 채워졌다. 별의 형태와 빛깔은 다양했다. 낮에는 하얀 커피 꽃이, 밤에는 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이 나를 감쌌다. 무엇보다 함께 커피 꽃과 별을 만났던 아름다운 그녀라는 별이 내 곁에 있었다. 어린 왕자가 있던 B612가 부럽지 않은 나만의 행성에서 그해 여름을 맞이했다. 


내가 보고 만지고 새겼던 하얀 커피 꽃. 밤하늘의 별이 내려와 커피나무에 앉았다. 별은 하얀 커피 꽃으로 피었다. 물론 그녀 역시. 아름다웠다. 직접 그것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아름다움 전하는 것, 쉽지 않겠지만 나는 이야기해보기로 한다. 


내 커피의 기원을 만나러 가는 길 


그 별들을 만나기 전부터 나는 설렜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떠난다는 사실을 주지 시키는 공항에서부터 그랬다. 소설가 김연수가 말했듯, 여기만 아니라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항은 그것을 상상하게 만든다. 여느 일상과 다른 나의 존재. 그것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정치적 망명이 아니더라도 문화 망명자로서 스스로를 규정하는 재미까지.


그래, 왜 아니겠는가. 공항은 생에 스핀을 먹이는 행위가 이뤄지는 곳이다. 김연수의 표현을 빌자면, “생을 바꾸는 공간”이다. 스핀이 제대로 먹었느냐, 아니냐는 떠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 떠나보면 알게 될 거야, 라는 책 제목만큼 맞아떨어지는 건 없다. 떠나보고 나서야 알 수 있는 여행, 또한 그것이 생이다. 스핀 없는 생은 불가하다. 이후의 방향은 아무도, 모른다.


생을 바꾸기 위해서였을까, 나는 공항에 서 있다. 


공항을 경험하고 나면 나는 얼마든 변해 있었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온 덕분이었다. 공항에 발 디딘 그때도 언제나처럼 두근두근. 떠남은 곧 박동임을 확인한다. 처음 만나는 신세계를 향한 심장의 달음박질. 내가 만드는 커피가 자란 본고장을 향한 걸음이었다. 말하자면, 커피로드. 커피를 통해 상상했던 자연과 인민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직항이 없는 그곳, 비행기를 갈아타고 오랜 시간을 날았다. 착륙해서도 커피 산지까지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비포장도로는 일상다반사요, 꼬불꼬불 산길을 밤낮으로 달렸다. 그리고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에 자리한 산촌의 커피 마을에 도착했다. 내리기 직전, 차에서 문명의 흔적인 양말을 벗는다. 맨발로 온전하게 땅(의 기운)을 느끼고 싶었다. 조심스레 발을 내딛는다. 발을 통해 저릿한 기운이 올라온다.

 

아, 이곳이 커피가 자라는 땅이구나, 우리는 이 땅의 기운을 함께 마시는구나!

그해 여름, 커피가 익어가는 계절


하얀 커피 꽃이 피었다. 빨간색 커피 체리가 익었다. 체리의 외피·과육을 벗기고 건조를 위한 사람들의 몸짓도 분주하다. 커피 한잔을 위해 자연이 내려앉고 인간의 노고가 투입되는 현장이다. 내가 만들고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잉태되는 터전이다. 나는 커피가 익는 마을에 와있다. 맞다. 커피를 처음 배웠던 그때부터 발 딛고 싶었던 커피 산지! 물론 커피 산지마다 커피가 익는 계절이 다르다. 대륙이나 위도, 땅 상태에 따라 커피가 열매를 맺고 수확하는 시기는 차이가 있다. 내가 발 디딘 이곳은 여름에 커피 열매를 수확한다. 

 

그해 여름, 커피가 익어가는 계절에 나는 그렇게 ‘만남’을 가졌다. 놀랍고 신기한 일이다. 우연에 우연이 빚은 산물. 그래,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1927)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사물과 동물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여전히 당신이 휘말릴 수 있는 우연한 일로 가득하다.” 


모든 것이 우연이었다. 커피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어쩌면 갑자기(실은 축적된 시간과 삶의 흔적들에 의한 것이겠지만) 삶의 방향을 튼 내 모습이 떠올랐다. 

 

제도교육권에서 가장 보통의 신자유주의적 인간으로 사육됐던 나는, 신자유주의 사이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직장 생활을 꾸역꾸역 감당하고 있었다. 까라면 까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충실하고 성실하게 회사(가 요구한) 일을 해냈다. ‘남들 보기에’ 버젓한 직장에 월급도 꼬박꼬박 오르고 있었다. 출세나 권력을 바라진 않았지만 그렇게 일하다 보면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자리에 올라 적당히 호의호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끔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순간 떠올라도 이내 묻어버리곤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배운 도둑질(?)이나 잘하면 되지, 뭐. 


문제는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다. 말하자면, ‘회사 인간’에 가까웠다. 사소한 반항이야 있었다손, 송두리째 삶의 방향을 바꿀 만큼 용감한 인간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디서 불어온 바람이었을까. 10년 동안 일했던 일을 그만뒀다. 아주 간혹 지피다 말고 사그라지던 의문들이 점점 더 간격도 짧아지고 깊은 고민으로 이어졌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인가? 이렇게 살아도 좋은가?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건강하게 사회에 썩어 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눈덩이가 됐다. 배운 도둑질을 그만두기로 했다. 느닷없는 결정을 내렸다.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아니, 커피라는 창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커피를 미치도록 좋아한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허세에 가까운 커피 마시기를 즐겨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커피라는 신세계에 뛰어들기로 했다.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커피를 배웠다. 아르바이트도 했다. 커피라는 콘텐츠를 다루고 싶었다. 그렇게 커피를 만들고, 인디(독립) 커피하우스를 꾸렸으며, 사회적경제를 공부하고 접하고, 공정무역 커피 산지에 발을 디뎠다. 


그 모두가 우연이었다.  

많이 궁금했다. 내가 지지고 볶고 추출하는 커피의 근원이.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보고, 상상했을 뿐이었으니까. 태고의 산악이 품은 산지에서 내 커피의 근원과 세계의 잇닿아있음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커피 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얗게 피어있는 커피 꽃.

하얀 커피 꽃, 아름다운 대자연의 숨결 


운이 좋았다. 그토록 오고 싶었던 커피 산지에 왔다. 숨을 깊이 들이쉰 순간, 느꼈다. 아, 우리는 연결된 존재구나.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은 커피 한 잔에 담긴 자연이었다. 땅, 햇빛, 바람, 비, 안개, 별 등 대자연을 머금고 자란 커피 열매와 그것을 따고 다듬는 사람들. 자연과 땀의 결정이 커피였다. 하얀 커피 꽃은 그것이 발화한 아름다움이었다. 빨갛게 익은 커피 열매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물어보자. 당신은 커피가 어떻게 나오는지 알고 있는가? 나는 하얀 커피 꽃과 빨간 커피 열매를 만났던 그 순간, 확실하게 알았다. 하얀 마음과 빨간 열정이 어우러져 갈색의 음료가 나온다. 산지의 커피 농부들이 이방인을 위해 내려준 커피에서 온유한 맛을 느낀 건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순간 부끄러웠다. 커피를 내리는 내 마음이 그 자연을 제대로 담을 수 있을까.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시간.


산지의 커피 농부들을 따라 커피나무가 자라고 있는 곳을 찾았다. 나는 농사를 모르는 ‘시티 키드’였지만, 자연 앞에서 인간은 겸허해야 한다는 점을 그들로부터 배웠다. 예기치 못한 기후 환경 변화와 재난이 닥쳐도 그들은 하늘을 쉬이 원망하지 않았다. 당연하듯, 기다리고 인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포자기가 아니었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을 원망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갉아먹지 않았다.

 

하얀 커피 꽃을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이어서 그랬을까. 내 눈앞에 하얗게 피어난 커피 꽃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커피 농민들에게 물었다. 커피 꽃은 왜 이렇게 아름다울까요? 어깨를 으쓱이며 그들은 싱긋 웃었다. 그것도 몰라?, 라는 몸짓은 아니었다. 그건 커피 꽃이니까,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커피나무 안에도 하얀 마음이 있는 것이겠지.  

커피 농부들과 함께 밥을 나눠먹고 커피를 마셨다. 그들과 마주한, 해발 1004m에 자리한 마을 사무실(겸 숙소)은 고도 덕분에 ‘천사의 집’이라고 불렸다. 천사가 있다면, 지상에 내려와 커피 한 잔 마시는 휴식처로 쓸 법한 곳이다. 나는 그곳에서 지상의 천사들과 마주했다. 김성호의 노래가 떠올랐다. 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습니까? 나는 손에 힘주어 그들과 악수를 하고, 또박또박 이름을 부르며 눈을 보았다. 개별의 인간에게 새겨진 구체적인 존엄이 거기 있었다. 내 커피의 실존과 마주했다. 마음이 뭉클했다. 좋았다. 엉뚱한 소리지만, 커피 향이 하얗게 피어올랐다.  


물론 개별 삶의 실체는 내가 알 수 없는 또 다른 심연일 것이다. 나는 그 구체적 존엄 앞에 겸손해야 했다. 그들은 자연의 일부였으므로. 나는 그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 알려 줬다. 그 커피 덕에 저 멀리 있는 누군가는 우리는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고.

 

그래, 당신도 알겠지만, 누군가를 행복하게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가. 나는 그들 몇몇에게 커피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지, 무엇인지 물었다. 누군가는 커피는 행복이라면서 웃었고, 다른 누군가는 생각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존재라고 답했다. 어떤 이는 여자친구 같다고 했다. 하나 같이 다른 답변. 그래, 그것이 커피가 아닐까. 나는 당신들이 채집한 커피가 ‘디아’(좋다)하고 ‘가빠쓰’(맛있다)라고 말해줬다. 우리는 함께 웃었다. 좋았다. 


별이 된 하얀 커피 꽃  


그해 여름, 내 곁에는 또 하나의 하얀 커피 꽃이 있었다. 우리는 커피 꽃을 함께 바라보고 커피를 함께 마셨다. 커피는 이전보다 유독 맛있었다. 그리고 커피 산지에서 처음 맞이한 밤, 하늘에 그렇게 많은 별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는 것을 처음 봤다. 별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천사의 집 옆의 땅에 누워 밤하늘을 함께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말했다. “우리가 낮에 봤던 하얀 커피 꽃이 밤에는 하늘로 가서 별이 되나 봐요. 아침이면 다시 내려앉고요.”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건네지 못한 말이 속으로 흘렀다. 커피 꽃 하나는 당신이에요. 지금 별 하나가 내 곁에 있는 거고요.


밤 9시, 우리는 커피를 내렸다. 하얀 커피 꽃이 밤하늘로 가서 별이 된 그해 여름밤 9시. 하얀 커피 향이 우리를 감쌌다. 나는 스테파네트 아가씨를 신분과 계급 차이 때문에 어찌할 수 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목동이 아니었다. 물론 그녀도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아니었다. 우리는 하얀 별빛 아래 입술을 포갰다. 하얀 커피 향이 입술을 통해 스며들었다. 별 하나가 내게로 번졌다.


하얀 별빛 아래 키스는 달콤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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