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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대낭만 Jonathan Feel May 31. 2018

뚜벅뚜벅, 웬디의 진심이 전진한다

[리뷰]<스탠바이, 웬디>:힘겨운 싸움을 하는 이에게 친절해야 하는 이유

안녕 웬디(다코타 패닝). 

이 말부터 해주고 싶어요. 웬디, 멋져요. 그리고 더 이상 당신을 염려하거나 걱정하지 않아요! 웬 오지랖 같은 얘기인가 싶죠? 당신이 걸었던 길을 지켜봤던 사람으로서 꼭 이렇게 건네고 싶었어요. 샌프란시스코에서 LA까지 600km의 나 홀로 여정, 당신이 그렇게 멋지게 성공하리라곤 쉽게 생각 못했어요. 당신을 처음 보자마자 당신에 대한 인상을 지배한 ‘자폐’ 때문이었죠. 

그래요, 인정해요. 당신이 지닌 자폐를 특별함이 아닌 장애로 최초 인식했다는 것을. 당신을 가둔 센터도 안전과 보호를 위한 공간으로 여겼었어요. 당신의 진짜 욕망을 들여다볼 생각을 못한 채 당신을 그저 ‘보호’ 대상으로만 간주했어요. 저 역시 편견에 먼저 굴복했던 셈이죠. 당신 역시 자유가 그리운 가장 보통의 사람인데 말이에요. 자기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어른인데 말이에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해야 하는 규칙과 비좁은 공간과 울타리 안에서 얼마나 답답했을지 먼저 생각했어야 하는데 말이죠. 


그 잘못된 편견에서 확 깬 것은 당신이 마켓 가를 가로지를 때였어요. 마켓 가 신호등을 건너면 안 된다는 스코티(토니 콜레트)의 지시(!)를 어기는 순간, 나는 당신을 제대로 보기 시작했어요. 당신을 옥죄던 두려움을 깨고 경계를 넘는 첫걸음. 새로운 우주가 펼쳐지고 당신의 진짜 항해가 시작됐음을 알 수 있었죠. <스타트렉>의 함선 엔터프라이즈호가 우주로 나가는 순간이었던 거죠. 그것이 당신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진짜 시작점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설렜던 이유도 알 것 같아요. 나도 그 나이 무렵, 고향을 떠나, 부모 품을 벗어나, 세상을 향한 첫걸음을 뗐었거든요. 


뚜벅뚜벅. 당신이 첫걸음을 떼고 나아가자 뒤를 따랐습니다. 물론 그 길이 쉽진 않더군요. 누구든 어디든 첫걸음을 뗀 다음 걸음이 쉬울 린 없죠. 그게 세상이니까요. 당신 친구(강아지 피트)때문에 달리는 고속버스에서 내동댕이쳐졌을 땐 당신이 취한 태도에 살짝 놀랐어요. 피트를 원망하지도 않고(원망해봐야 소용도 없지만), 그 황량한 도로에서 죽상을 취하지도 않더군요. 오로지 LA 파라마운트 픽쳐스에 가겠다는 일념 하나. 그리하여, 전진. 


‘함장님, 논리적인 결론은 단 하나, 전진입니다.’ 


<스타트렉>의 이 짧은 대사. 당신이 가는 길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더군요. 자폐 때문에 유폐된 생활을 해야 하는 당신이었어요. 그 유폐는 온전히 편견 때문이죠. 자폐를 효율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장치로 채워진 보호소에 가둬진 것도, 당신의 언니 오드리(앨리스 이브)가 갓 낳은 조카를 마음대로 안아볼 수 없는 것도요. 당신의 자폐는 잠재적 위험을 지닌 장애로 치부되더군요. 물론 당신을 돌보는 이들이 나쁜 마음으로 그런 것이 아님도 충분히 알 수 있었어요. 하나, 선의가 늘 좋은 결과만 낳는 건 아니죠. 

무엇보다 자폐가 무조건 세상과 관계를 끊고 마음의 문을 닫는 병은 아니라는 것, 당신을 통해 알 수 있었어요. 그저 직설적이고 솔직하게 말하고 행동할 뿐. 즉 직진하는 거죠. 여느 자폐가 없는 많은 이들이 짱구를 굴려 우회하는 것과 달리 말이죠. 그런 당신을 줄곧 응원했어요. 자폐가 장애보다 특별함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427페이지 시나리오를 통째로 외웁니다. 당신은 <스타트렉>을 씹어 먹는 진정한 ‘트레키(Trekkie·<스타트렉> 열혈 팬)’였어요. 그야말로 덕후. ‘서번트’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실은 당신이 <스타트렉> 덕후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친절을 가장해 돈과 소지품을 강탈하거나 바가지를 씌우고, 무뚝뚝한 불친절 등이 그 전진을 수시로 막잖아요. 그럴 때마다 당신은 그 논리적인 결론을 끄집어내죠. 당신이 트레키임을 알아본 경찰이 ‘클링온 語’로 당신을 도와주는 것도 그렇고요. 덕후끼리 통하는 장면도 꽤 인상적이었어요. 덕질에 대한 애정이 서로에 대한 믿음과 돌봄으로 승화하는 과정 같았거든요. 


특히 자폐는 <스타트렉>이 품은 상징과도 연결되더군요. <스타트렉>은 넓게 보면 우주에서 고립된 생명체들의 이야기인데, 자폐를 가진 사람은 세상에서 고립된 느낌을 가질 테니까요. 당신은 <스타트렉>에서 지구인과 외계인 피가 섞인 스팍을 연상하게도 했어요. 스팍이 자폐와 연결 지어 인식되기도 하고, 경계인으로서 당신과 맞물리기도 했어요. LA로 향하는 발걸음도 <스타트렉>의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가 미지의 행성을 찾는 항해와 연결됐고요. 

당신이 목표(<스타트렉> 시나리오 공모전 서류 접수)를 향해 전진하는 과정은 예측 가능한 결말을 선사했어요. 그럼에도 빤하지 않은 걸음이었어요. 그 걸음을 통해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자문하게 만들었거든요. 그리고 내 안의 편견과 차별도 봤고요. 자폐는 융통성이 없다지만, 당신보다 비장애인이 더 냉랭하고 융통성이 없더군요. 우리 안의 차별을 아프게 되씹는 과정이기도 했어요.


웬디, 당신을 향한 세상의 편견과 차별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당신은 이미 ‘스탠바이’가 돼 있는 사람이에요. 문제는 당신을 둘러싼 세계와 주변 사람들의 옹색함이죠. 당신을 가장 잘 이해할 법한 스코티와 오드리조차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그 항해가 당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변화까지 이끕니다. 정말 멋진 항해였어요. 당신이 1인분의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증명과 주변 사람들이 함께 성장한다는 느낌이 참 좋았거든요. 


그 항해가 당신이라는 사람을 증명하는 기제로 작동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나 자체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건 비극이죠. “넌 할 수 없어”라는 세상의 편견 앞에 안간힘을 다해 “할 수 있다”라고 증명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장애 등을 가진 사회적 약자뿐 아니라 ‘을’들이 대부분 그러하죠. 새삼 우리가 만든 세상을 돌아보게 만들더군요.  

마침내 당신이 조카를 처음 안을 때 저는 울었어요. 그것이 머나먼 항해에 발걸음을 떼게 만든 중요한 계기였잖아요. 당신의 시나리오가 비록 채택되진 않았지만, 나는 그것을 실패로 규정하고 싶지 않아요.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넓어졌으니까, 누가 정해놓은 동선이 아닌 스스로 동선을 그릴 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당신이 계속 글을 썼으면 좋겠어요. 당신은 특별한 사람이고 그 특별함이 당신의 글을 특별하게 만들 거예요. 글을 쓰면서 당신이 힘을 받은 건 분명한 것 같아요. 끊임없이 메모하면서 당신이 삶을 스스로 만들고 나만의 규율을 다지는 모습도 참 보기 좋았답니다. 글쓰기가 주는 힘이란 그런 것이겠죠. 김영하 작가가 당신을 만나고는 “쓴다는 것은 읽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세계에 참여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는데, 고개를 끄덕였어요. 웬디의 이야기는 <반지의 제왕> 덕후로 팬픽을 연재해 화제를 모았던 한 소녀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고 들었어요. 아마 모티브로 작용했던 소녀도 계속 글을 쓰고 있겠지요. 

아참, 이 말을 잊으면 안 될 같아요. 웬디를 온전하게 보여준 다코타 패닝(의 연기)은 여전하더군요. 지적 장애를 가진 아빠를 챙기던 6살 소녀(<아이 엠 샘>)가 훌쩍 잘 자란 그런 느낌? 어쩜 그렇게 깔맞춤처럼 사랑스럽게 웬디를 표현하는지. 어릴 때 모습이 아쉽게 변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영화를 보고는 바뀌었어요. 다코타가 아니면 웬디가 어떻게 나왔을지 상상이 안돼요. 


올해 초에 만난 영화 <원더>와도 맞물렸던 웬디 당신의 이야기가 제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었습니다. 기회를 만들어 <원더>도 만나길 권해요. 당신과 다른 특별함을 지닌 <원더>의 ‘어기’(제이콥 트렘블레이)는 <스타워즈> 덕후예요. 두 세계가 판이하게 다르긴 하지만, 자신만의 우주를 만들고 항해하는 당신과 어기는 통하는 면이 많을 거예요. ‘누구나 한 번쯤은 박수받을 자격이 있’다는 어기의 말이 웬디 당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네요. <원더>의 대사 하나를 마지막으로 인용하고 싶습니다. 특별한 당신에게 유독 불친절했던 사람들이 명심하면 좋을 말이죠. 그리고 차별과 편견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고요.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

(※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도 있으나 이 글이 영화 감상에 큰 지장을 주지 않을 겁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시사회를 관람하고 내가 본 대로 느낀 대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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