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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athan Feel Aug 29. 2018

짝퉁뉴요커,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I'm in New York② ] 뉴욕타임즈 단상

정확히 1년 전. 뉴욕에 두 번째 발을 디뎠다.
5년 여동안 나를 쏟아부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뉴욕을 만끽하겠다고 떠난 길이었다. 그전부터 뉴욕 타령을 했었다. 한 번 짧게 내디딘 뉴욕에 혹했기 때문도  있지만 그래야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접 만든 회사에, 대표까지 한 사람이 그만둬고 그래도 되느냐고, 지금까지 이룬 것이 아깝지 않으냐고, 나이도 적지 않은데 괜찮겠느냐고 묻곤 했지만,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Why Not?" 그게 뭐라고. 회사가 뭐라고. 일이 뭐라고. 관계가 뭐라고.
모든 사회적 관계, 의무에 스위치를 끄고(물론 한시적이었지만) 두서없이 맥락 없이 허허실실 뉴욕으로 향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게 당시 내 마음이었다. 다시 나는 한국에 돌아와 그 후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뉴욕에 가서는 내 멋대로 뉴욕을 '(마음의) 고향'으로 삼았다. 비록 몸이 태어난 곳은 선택할 수 없었지만 마음이 태어난 곳을 고향으로 삼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나는 뉴욕을 고향으로 못 박았다.
나는 여전히, 뉴욕을 그리고 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에 젖어있다.  

 

뉴욕에서 첫발을 내디딘 곳은 '뉴욕타임즈'였어요.

물론 전혀 의도한 바는 아니었고요. 42번가 포트 오소리티 버스터미널을 나오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뉴욕타임즈 사옥! 망설임 없이 도로를 건너 바로 들어갔죠. 편집국에 발을 디딜 순 없었지만(하이~라고 외치며 편집국에 들어가고 싶었답니다!), 1층 로비에서 아돌프 옥스의 흉상을 만났어요. 우와. 이렇게 옥스를 만나다니! 전직 기자로서 살짝 뭉클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아참, 그가 누군지 잠깐 얘기 해야겠네요.
옥스는 19세기 끝무렵 재정이 어려웠던 뉴욕타임즈를 인수한 유대인 사업가였죠. 물론 
이건 그를 가장 건조하게 묘사한 설명이고요. 그 이름을 언론사史에 새긴 건 그의 불편부당한 태도였죠.

그는 언론의 사회성 확립에 공헌을 한 사람입니다. '옐로우 저널리즘'(황색언론)이 판치고 있던 당시, 그는 이를 정면으로 거부합니다. 발행인으로서 첫 신문을 발행했던 날, 그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어떤 정당이나 파벌 혹은 이해관계를 개입시키지 않고, 두려움이나 호의도 없이, 불편부당하게 뉴스를 제공하겠다."


저널리즘과 언론사에 한 획을 그은 이 한마디는, 
뉴욕타임즈가 정통 정론지로 자리매김하도록 만든 중요한 계기가 됐답니다. 편집국 독립은 물론 저널리스트의 직업 윤리를 이끌어냈어요. 어쩌면 지금 뉴욕타임즈를 만든 가장 중요한 모멘텀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그는 1층 로비에 흉상으로 자리하면서 여전히 뉴욕타임즈 안팎에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의도한 바는 아녔지만,
이번 뉴욕행 첫걸음으로 뉴욕타임즈의 문을 열고 들어간 건, 충동에 가까웠어요. 전직 기자로서 호기심이 발동한 한편 한국을 떠날 무렵 MBC도 떠올랐기 때문이에요. 사회적 자산인 MBC가 십여년 동안 처절하게 망가지고 견디다 못한 MBC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는 것을 보고 떠났거든요. 더구나 지인들 사이에서 다큐멘터리영화 <공범자들>(최승호 감독)이 화제이고 함께 영화를 보자고 하나 같이 할 수 없는 형편. 특히 지인들은 MBC아나운서국이 파업을 선언한 뒤 응원과 지지를 담아 커피 트럭을 보내자는 얘기도 나누는 마당이니, 내가 떠난 땅의 암울한 현실이 뉴욕타임즈 사옥에 투사됐나 봐요. 젠장, 아무것도 하지 않고 태평양 건너는 신경 쓰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죠.  

 

근처에 있는 <뉴요커>도 눈에 들어오네요. 뉴욕이 황홀합니다. 

그저 언론사 브랜드를 보는 것만으로도 짝퉁 뉴요커는 충분히 감개무량합니다. '뉴욕 사대주의자'라는 말을 들어도 반박할 여지가 없네요. 뉴욕타임즈를 보고 뉴요커를 읽으면서 뉴욕을 사유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럼에도,   

언젠가 한국에 들어갔을 때, 
파업을 끝내고 정상화 작업을 시작한 MBC를 만나고 싶습니다. 이젠 '엠빙신'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거든요.


그리고 발걸음을 뚜벅뚜벅 옮겼습니다. 매디슨스퀘어 공원을 만났습니다. 가고 싶었거든요. 

공원 한켠에 넙죽 자리를 잡았습니다. 책을 읽고 청솔모들 재롱도 보다가 한잠 때렸어요. 



한잠 때린 뒤 매디슨스퀘어에서 바라본 플랫아이언 빌딩. 정말 희한하게 자리한 건물이에요. 브로드웨이가 5가와 만나는 지점에 다리미처럼 납작하게 생긴, 영화에 종종 등장했던 이 건축을 고개 들어 바라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유주얼 서스펙트>였어요. 범죄가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소환 대상에 오르는 용의자를 가리키는 이 용어. 김재철-안광한-김장겸, MBC의 범죄 용의자 사슬과 절묘하게 맞물리죠?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범죄스릴러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에 전직 경찰이자 주인공 키튼의 애인이자 변호사인 이디가 일하는 사무실이 플랫아이언에 자리하고 있었죠.


또 있어요. 
제가 좋아했던 영화 <고질라>(1998)에서 고질라가 비행기의 미사일을 피하자 대신 폭격을 맞아 파괴됐던 건축이이 플랫아이언이었죠. <스파이더맨>에서 피터 파커가 프리랜서 사진기자로 근무했던 '데일리 뷰글'의 사옥으로도 나왔으니 플랫아이언도 언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공범자'였네요.


여담인데, 
'뉴욕의 심장'으로 불리는, 뉴욕을 찾는 사람 100%가 찾는다는 타임즈스퀘어. 그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경위도 옥스(그리고 뉴욕타임즈)와 관련이 있어요. 뉴욕타임즈가 1904년 이곳으로 오면서 앞서 불리던 '롱에이커스퀘어'라는 이름을 타임즈스퀘어로 개명했거든요.


오래 전 그만 둔 기자 생활에 미련은 없지만, 
뉴욕타임즈에서 단 반나절이라도 기사 작성이 아닌 어떤 잡일이라도 괜찮으니 노동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 당신을 데리고 뉴욕타임즈 내부를 구경시켜줄 수 있겠다는 사심이 들어서요.


매디슨스퀘어 공원에서 읽은 책에서, 
'편집이란 밤하늘에 떠 있는 별과 별을 연결해 별자리를 명명하는 것과 같은 작업'이라는 문장을 봤어요. 나는 지금 뉴욕에서 그런 편집 작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신 안의 별(들)도 그렇게 편집을 통해 별자리를 명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그렇게,
별들 사이에 길을 놓고 싶습니다.뉴욕에서 별을 찾고, 당신이라는 별을 떠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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