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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athan Feel Sep 30. 2018

순식간에 다가온 세상의 끝, 그럼에도 사랑

[I'm in New York③ ] 그라운드 제로 메모리얼 파크

1년 전, 뉴욕에 두 번째 발을 디뎠다.
5년 여동안 나를 쏟아부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뉴욕을 만끽하겠다고 떠난 길이었다. 그전부터 뉴욕 타령을 했었다. 한 번 짧게 내디딘 뉴욕에 혹했기 때문도  있지만 그래야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접 만든 회사에, 대표까지 한 사람이 그만둬고 그래도 되느냐고, 지금까지 이룬 것이 아깝지 않으냐고, 나이도 적지 않은데 괜찮겠느냐고 묻곤 했지만,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Why Not?" 그게 뭐라고. 회사가 뭐라고. 일이 뭐라고. 관계가 뭐라고.
모든 사회적 관계, 의무에 스위치를 끄고(물론 한시적이었지만) 두서없이 맥락 없이 허허실실 뉴욕으로 향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게 당시 내 마음이었다. 다시 나는 한국에 돌아와 그 후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뉴욕에 가서는 내 멋대로 뉴욕을 '(마음의) 고향'으로 삼았다. 비록 몸이 태어난 곳은 선택할 수 없었지만 마음이 태어난 곳을 고향으로 삼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나는 뉴욕을 고향으로 못 박았다.
나는 여전히, 뉴욕을 그리고 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에 젖어있다.  


지금 뉴욕의 아침과 밤은, 
가을을 닮아 있어요. 낮은 아직 여름을 흉내내고 있지만 곧 한풀 꺾일 거예요. 여름이 무슨 수로 가을을 당하겠어요. 한국도 마찬가지겠죠? 이렇게 계절이 얼굴을 바꿀 즈음, 당신도 감기 들거나 아픈 곳 없으면 좋겠어요.


뉴욕에도 가을을 반기는 비가 간간이 내려요.
9월 11일을 앞두고 흘리는 슬픈 눈물일지도 모르겠지만. 

물론, 억지춘향식의 해석이죠. 비는 그저 기후 조건의 변화,  기상 상태에 따라 내려야 할 때가 돼서 내릴 뿐인데 말이죠. 그저 가을비에 내 감정이 실린 것으로 알아주세요. 


9.11의 상흔을 간직한 '그라운드 제로'를 찾은 날도 가을비가 촉촉 내리고 있었어요. 

한국에서 4월이면 자연스레,
16일이 떠오르듯, 뉴욕에서 9월은 11일을 떠올리지 않을 재간이 없어요. 발걸음을 그쪽으로 옮긴 것도 아마 9월이 왔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2001년 9월 11일, 브라운관을 통해 생생하게 들어온 참혹한 그날. 비로도 영원히 씻길 수 없는 참사의 현장. 


9.11 그날 이후, 모든 것이 송두리째 바뀐 남자가 있었어요.

아마도 9.11과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사람도 알게 모르게,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삶(의 일부)이 미세하나마 조정됐을 거예요. 여하튼 그 남자는 그날, 아내와 세 딸을 잃었습니다. 생의 균열이 그러하듯, 순식간에 다가온 재앙 혹은 세상의 끝.


그라운드 제로를 향하면서 떠오른 영화였어요. 그날 이후 온 삶이 바뀐 남자가 나온 영화. 
<레인 오버 미>(2007). 제가 만난 9.11을 다룬 영화 가운데, 가장 아스라하게 박힌 영화. 코미디가 주특기인 아담 샌들러가 세상 모든 의미를 잃은 남자 주인공 찰리로 분한 영화. 찰리는 그 상흔을 감당할 수 없어서 영혼을 잠식당한 채 숨만 쉴 뿐입니다. 오죽하면 대학시절 룸메이트이자 치과의사 앨런(돈 치들)조차 기억하지 않아요(못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떠올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찰리는 모든 감각을 닫고 살아가는 자폐증 환자나 다름없어요. 감각기관을 열었다간 그 상흔을 감당할 자신이 없으니까요.


2001년 9월 11일 이후,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트윈타워는 더 이상 없어요. 이듬해 당시 뉴욕 주지사는 파괴된 트윈타워 부지에 건물을 올리지 않고 추모 공간으로 남기겠다는 공언을 했고, 이를 지켰어요. 이곳은 그래서 희생자 3천 명을 애도하고 추모하기 위한 '9.11 메모리얼 파크'로 거듭났죠. 트윈타워가 있던 자리는 거대한 풀(pool)로 조성되고 9·11 테러 메모리얼 박물관이 지어졌습니다.


이 거대한 풀은 폭포처럼 아래로 향하는데,
저는 이것이 눈물처럼 여겨졌어요. 9.11 희생자들을 향한 전 세계 인민이 흘리는 눈물. 그날따라 비까지 내리니 기분이 더욱 애잔해지더라고요. 3천 명(정확하게는 2983명)의 이름 하나하나가 풀을 둘러싼 동판에 새겨져 있는데, 손을 대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최초에는 풀 아래쪽에 새겨질 예정이었다가 유족들이 반대하여 동판에 새겨졌다고 해요.)

그 이름 곳곳에 장미가 꽂혀 있어요.
간혹 미국 국기나 당사자 사진이 있는 경우도 있고요.

9.11 테러에 희생당한 3천여 명의 이름을 훑으면서,
눈에 띈 이름들이 있었어요. 이름과 함께 'HER UNBORN CHILD'라고 붙여진 이름. 이름이 아직 붙여지지 않은 생명이었으나 태어나지 못한 채 테러에 의해 지워진 이름. 태어나지 않은 그 생명을 잠시 상상했어요. 어떤 아이였을까, 어떻게 자랐을까, 세상과 어떤 접점을 가졌을까. 쉽게 보이지 않는 그 미래가 더욱 안타까웠어요.

  

그리고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두 개의 이름. 

미국 이름을 가진 다른 한국인도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눈에 들어온 것은 명확한 한국 이름이었습니다. 구본석, 이현준. 3천여 그 모든 이름이 2001년 9월 11일 전만 해도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였잖아요. 사람들이 그래서 그 이름에 손을 갖다 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들을 조금이라도 느껴보려고.


사우스 풀과 노스 풀을 둘러싼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사진 찍고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들 각자의 추모와 애도를 보내고 있었을 테죠. 저도 제 나름의 추모를 하는 와중에 <레인 오버 미>가 떠올랐어요. 이런 질문도 함께요. 

남은 사람은 그 이후를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당신은 슬픔에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이것을 감당하나요? 

찰리(아담 샌들러)는 자신 앞에 닥친 슬픔은 감내하지 못해요. 그래서 자신을 닫아버리죠. 심지어 사랑하는 딸을 잃은 상처와 슬픔을 공유한 장인·장모와도 갈등하죠. 함께 보듬고 안아도 부족할 마당에 각자의 상처를 후벼 파고 할퀴고 튕겨냅니다.


한 사람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보듬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에요. 찰리와 그의 친구 앨런(돈 치들)도 투닥투닥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에게 조금씩 스며들어요. '남들 보기에' 버젓하게 사는 앨런은 타인의 시선에 포박된 삶이었는데 찰리를 통해 자기 탐구의 길을 열어요. 세상에 문을 닫았던 찰리에게 혼자가 아님을 상기시켜주는 존재가 앨런이고요. 둘은 그렇게 조응하죠.

슬픔과 상처 앞에 대단한 리액션이 필요하진 않아요.
찰리와 앨런이 서로에게 번지는 것을 보면 그래요. 눈물겨운 위로나 포옹, '힘내세요'와 같은 영혼 없는 멘트는 외려 거추장스러워요. 일상을 함께 호흡하면서 견디는 고요한 사투. 뉴욕을 함께 걷고 술 한잔을 나누고 영화를 함께 보는 우정. 섣불리 치유하려 들지 않고 바로잡으려 무리하지 않는 일상의 도반. 곁에 있어주고 함께 웃어주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무리하지 않는 일상.


레인 오버 미(Reign over me)라는 영화 제목. 
'나를 지배해달라' '나를 다스려달라'라고 액면가로 읽는 건 오독일 거예요. 그보다 '내 곁에 있어 줘' 정도가 좋겠어요. 앨런과 찰리는 서로에게 삼투해요. 찰리의 슬픔은 조금씩 일상을 향하고, 앨런은 타인의 시선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삶을 되찾거든요. 두 사람이 함께 일상을 나눈 곳이 뉴욕 곳곳에 있어요.


커다란 슬픔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는 것이 아닐 거예요. 뉴욕도 그랬고, 세월호를 겪은 우리도 그렇습니다. 특히 9.11 당시 뉴욕이나 미국은 그렇지 않았으나 4.16 이후 우리의 국가는 약속을 깨고 신뢰를 저버리면서 우리를 더 참담하게 만들었죠. 우리가 가진 슬픔과 상처는 더 커졌고요. 9.11 앞에서 4.16이 그렇게 슬퍼졌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안녕 뉴욕>이라는 책이 있어요. 
영화 기자였던 백은하 씨가 썼던 책인데요. 백 기자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허망하게 무너지는 것을 본 후 적금을 깨고 보험을 해지하고 영화잡지사를 그만둬요. 그리곤 뉴욕행 비행기를 탑니다. 소호의 네일 숍에서 손톱을 다듬어주고 일용한 양식을 얻으면서 뉴욕에 스며든 영화의 향기를 <안녕 뉴욕>으로 풀어냈어요. 그라운드 제로에 오니, 저 멀리에서도 9.11이 바꾼 삶이 그렇게 떠올랐어요.


곧 9월 11일이 다가오네요. 
그날, 그라운드 제로는 추모의 물결이 가득하겠죠.
저는 그날, 추모와 함께 으스러진 어떤 혁명도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살바도르 아옌데. 1973년 9월 11일, 선거를 통해 세계 처음으로 사회주의 정권을 세웠으나 쿠데타에 의해 암살당한 칠레의 대통령. 지금 저는 1920~1930년대 조선의 독립과 혁명을 꾀하던 세 명의 여성(주세죽, 허정숙, 고명자)이 등장하는 <세 여자>를 읽고 있어요. 그래요. 페미니즘과 혁명이 얽힌 20세기의 봄을 센트럴파크에 읽는 뉴욕의 가을입니다.


당신에게 가을 詩를 건넵니다. 
우리 가을에 다시 만나요,라고 인사했던 그 가을이 번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나의 가을입니다.


* 가을이 온다 _ 박이도


9월이 오면 
어디론가 떠나야 할 심사
중심을 잃고 떨어져 갈 적, 
황의 낙엽을 찾아 
먼 사원의 뒤뜰을 거닐고 싶다


잊어버린 고전 속의 이름들
내 다정한 숨소리를 나누며
오랜 해후를, 9월이여
양감으로 흔들이네


이 수확의 메아리
잎들이 술렁이며 입을 여는가
어젯밤 호숫가에 숨었던 달님
혼삿날 기다리는 누님의 얼굴


수면의 파문으로
저 달나라에까지 소문나겠지
부푼 앞가슴은 아무래도 
신비에 가려진 이 가을의 숙제


성묘 가는 날
누나야 누나야 세모시 입어라
석류알 터지는 향기 속에
이제 가을이 온다


북악을 넘어
멀고 먼 길 떠나온 행낭 위에
가을꽃 한 송이 하늘 속에 잠기다


내 마음의 가을 숲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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