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이름, 최진실
최.진.실.
나의 눅눅한 십 대를 위로해 준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그때,
아해들은, 그런 소년을, 미친놈이라고 했다.
시험이 바로 다음날이었다.
야간 강제 자율학습, 그까이꺼 땡땡이쳤다. 튀었다.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방 벽면 곳곳에서 나를 향해 미소 짓고 있는 (최)진실이 누나가 부산에 첫 행차를 한단다.
그런 거대한 행사에 어찌 누나를 알현(!) 하지 않을 쏜가.
신원에벤에셀이 부산 남포동에 매장을 내면서, 전속모델이던 누나를 모시고 온 것이다. 사인회라는 명목.
(학교가 있던) 문현동에서 남포동까지 거침없이 튀었다.
역시나, 사람들이 북적북적, 미어터졌다.
더구나 대부분 여자.
쑥스럼 많은 사춘기 고딩은 쪽팔렸지만, 다리가 후덜덜 떨렸지만, 그것을 무릅쓰고 줄을 섰다. 줄이 줄어들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헉~! 숨 막히는 순간.
진.실.누.나가 눈 앞에 있었다. 그것도 나를 향해 미소를 띠면서.
심장이 벌렁벌렁, 콧구멍은 푸슉푸슉, 숨이 가쁘다.
이런 순간이 오다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누나는 예뻤다. 예뻤다. 예뻤다. 그 외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내 이름을 묻는다. 아, 감개무량. 내 입에서 수줍게 '준수'라는 이름이, 아주 조그맣게 나왔다. 아마도 10여 초 정도의 시간이 다였다. 그날 나는 세상을 다 가진 소년이었다.
진실이 누나 사인이 각인된 브로마이드를 고이고이 신줏단지 모시듯, 품에 품고서 집에 돌아왔다.
행여나 구겨질세라, 조심조심 또 조심. 가상했다.
그까이 시험, 망쳐도 좋았다.
그저 행복했던 밤.
진실이 누나를, 세상 전부의 아름다움을 직접 눈앞에서 알현해서, 누나가 나를 향해 웃어줘서 세상을 처음 가졌던 그날 밤. 별이, 바람이, 내 어린 마음을 알싸하게 스쳤다. 아해들 말마따나, 미친놈이었다.
그땐 그랬다.
진실이 누나가 세상을 등졌다. 10년이 흘렀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시발이었던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9월 15일)보다,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에 자극받은 비트코인의 탄생보다, 더 놀랍고 슬프고 아픈 소식이었다.
그때 나는 세상이 완전히 뒤집어졌다고 생각했었다.
누나가 떠난 다음날 밤, 나는 내 방 베란다에서 서서 저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을 바라보며 꺼이꺼이 울었다. 그땐 그랬다. 정말이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
2008년 10월 2일,
그 시절, 우리가 가장 사랑했던 배우가 영영 작별을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