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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athan Feel Jan 03. 2019

리먼브라더스 사태, 블록체인을 낳다

[블록체인 선언] (1) 블록체인 비긴즈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해, 미국 경제에 뭔가 수상한 기운이 감지됐다. 기름 값이 급등하고 주택 가격이 떨어졌으며 미국 은행 시스템이 거대한 위기로 가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힘겹게 9월이 됐다. 징후가 나타났다. 9월 7일 미국 국책 모기지 대출 금융회사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이 결정됐다. 각각 최대 1000억 달러씩 총 2000억 달러의 긴급 구제책이 마련됐다. 그리고 9월 15일이 다가왔다.


‘오, 세상에나(Oh, My God).’ 

그날 오전 8시 30분, 구조조정(M&A) 컨설팅 기업인 알바레즈 앤 마살(Alvarez & Marsal) 공동대표인 브라이언 마살은 탄식을 뱉었다.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리먼 브라더스(이하 리먼) 본사 건물이 피난 행렬을 쏟아내고 있었다. 우는 사람, 넋 잃은 사람, 굳은 표정을 지은 사람 등 하나같이 나라 잃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뉴욕 시민들도 리먼 본사 앞에서 ‘충격과 공포’ 어린 시선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계 4위 투자은행(IB) 리먼의 파산. 믿기 힘든, 혹은 믿기 싫은 사실이었다.


전날 밤, 상황은 급박했다. 리먼 브라더스 이사회는 늦은 밤에도 마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긴급하게 합류 여부를 타진했다. 마살이 질문을 던졌다. “현금은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가?” 답은 간명했다. “없다.” 마살은 긴급 투입됐지만, 리먼을 살리기 위한 소방수는 아니었다. 


이튿날 마살은 리먼 브라더스가 문을 닫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해야 했다. 1850년 만들어진 세계 4위 투자은행(IB)의 최후 치고는 허망했다. 리먼의 부채액은 당시 한국 돈으로 치자면 700조 원(6190억 달러)에 달했다.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과 이를 바탕에 둔 파생상품의 연쇄 부실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리먼이 무너지고 세계 자금시장에 돈이 돌지 않았다. 자산 가격이 급락했고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됐다. 이어 대침체(Great Recession)가 왔고 2009년 유럽 재정위기, 양적 완화 등이 이어졌다. 

흥미롭게도 미국발 금융위기의 서막을 알린 리먼의 파산은 또 다른 사건을 낳았다. 모든 위기가 위기로만 끝나지 않듯이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비트코인의 탄생이 그 기회였다.


2008년 10월 31일, 암호화 기술 커뮤니티에 여전히 베일에 싸인 사토시 나카모토가 세계 최초 암호화폐 비트코인을 제안했다. A4 9장 분량의 짧은 논문이었다. <비트코인: 일대일 전자 현금 시스템>(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이라는 논문에서 사토시는 은행이 필요 없는 새로운 전자 화폐를 제안했다. 기존 중앙 집중화된 금융 시스템이 아닌 분권화된 금융 시스템이 핵심이었다. 은행(금융회사)이라는 중개인 없이 신뢰 거래를 가능하게 만드는 개념이었다. 블록체인의 시작이었다. 사토시는 이듬해 1월 3일, 비트코인 소스코드를 공개했다.  


이 논문을 통해 사토시의 세계관을 읽을 수 있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완벽한 전자 화폐 시스템은 온라인을 통해 일대일로 직접 전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금융기관은 필요하지 않다.” 


논문은 첫 문장부터 기존 금융 시스템을 불신한다. 리먼 파산이 비트코인 탄생에 일조했음도 드러난다. 인터넷 상거래에 있어 은행은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다. 그럼에도 은행의 보증과 통제가 있어야 인터넷 상거래가 가능하다. 사토시는 이것을 못마땅해하면서 이런 시스템은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모델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비트코인에서 탈중앙화는 중요한 코드였다. 사토시는 중앙은행과 기존 금융회사가 맡은 통화 발행, 신용 창출 등에 의문을 제기한다. 즉 그는 비트코인을 통해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셈이었다. 


세계 금융위기를 불러온 저들에게 계속 금융 시스템을 맡겨도 좋은가?

돈의 민주주의(금융 주권)를 만드는 주체가 개개인이 되어도 좋지 아니한가? 


리먼의 몰락은 역설적으로 블록체인을 수면 위로 떠올리는 계기가 됐다. 비트코인은 2013년경부터 집중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물론 그 조명은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생각한 투자(혹은 투기) 광풍에 집중됐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초기 정신, 블록체인이 품은 함의는 그것 이상이다.

비트코인은 탈중앙화 사회를 꿈꿨다. 중앙집권적인 통제(관리) 기구 없이 알고리즘으로 분권화된 시스템을 통해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였다. 블록체인을 ‘신뢰 네트워크’라고 불러도 좋은 이유다. 


초기 비트코인은 게릴라였다. 기본적으로 금융 시스템을 장악한 금융기관의 비대화·권력화에 반감을 품고 있었다. 더구나 기존 금융기관은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키는 원흉이다. 세계적으로 은행에 접근할 수 없는 금융 약자가 20억 명을 넘는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금융 포용’(financial inclusion)이 등장했고, 사토시의 논문은 금융 약자들이 금융 혜택을 누리게 하고 소수가 아닌 다수가 금융 주권을 가져야 한다는 의지를 품고 있다. 


논문 핵심은 은행이 독점하던 거래 장부를 분산하여 보관하는 데 있다. 거래 장부인 블록은 통상 10분 단위로 만들어져 이 블록들을 시간 순으로 이어 붙인 것이 블록체인이다. 거래 장부를 공유하면 은행이 독점해 온 중개인 기능은 사라진다. 은행은 또 거래 보증 기능도 잃는다. 


지금 블록체인은 거대한 기대와 싸늘한 시선 사이에 머물러 있다. 블록체인 신세계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일상에서 블록체인을 만나는 것이 아직은 쉽지 않다. 물론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투기) 수요는 여전히 높다. 머지않아 다양한 블록체인 서비스를 만나는 시기가 올 것이다. 이미 블록체인이 깊이 스며든 나라도 나타나고 있다. 자국 행정 전반에 도입한 에스토니아와 같은 나라가 있는가 하면 스위스 등 블록체인 산업 육성을 위해 선도적으로 나서는 국가도 있다. 암호화폐 등을 둘러싼 법 제정은 각국마다 다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블록체인은 지금 다양한 가능성의 영역이다. 거래와 신뢰에 기반을 둔 금융, 법률, 부동산, 지적재산권, 원산지 증명 등 다양한 분야에 접목할 수 있다. 공유와 커먼즈 등에 기반을 둔 새로운 경제모델을 만들고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사회혁신을 이룰 수 있는 수단으로써도 제격이다. 이 책에서는 그런 가능성을 하나둘 다루고 질문을 던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이것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겠다. 블록체인에 대한 과한 기대치가 존재한다. 블록체인이 많은 가능성을 가진 기술이나 동일한 기능을 하는 기존 시스템보다 비싼 시스템이다. 글로벌 합의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을 사용하는 서비스에는 비용을 감수해야 할 당위성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블록체인은 만능 기술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효용을 볼 수 있는 부분을 찾아야 한다.


다시 리먼으로 돌아가 보자. 산산이 흩어진 리먼의 그림자는 여전히 남아 있다. 파산 10년 후인 2018년 2월 크리스 지안카를로 미국 선물거래위원회(CFTC·Commodity Futures Trading Commission) 의장은 미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열린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증권거래위원회(SEC·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와 선물거래위원회(CFTC)의 역할’ 청문회 자리에 섰다. 지안카를로 의장은 이 자리에서 “비트코인을 기반으로 하는 기술(분산 원장 기술)의 잠재적인 이점에 집중해야 한다”며 “(블록체인 기술이 있었다면) 지난 2008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혼란스러운 후속조치 대신 훨씬 신속하고 전문적이고 정확한 규제 개입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리먼 사태와 비트코인(블록체인)의 관계를 안다면 이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많은 이들이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났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는 망가진 금융 시스템을 제대로 수리한 것일까. 자본주의는 고쳐 쓸 수 있을까. 다양한 질문이 뒤따를 수 있다. 

지금 인류를 돌아보자. 인류는 유사 이래 가장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 그 풍요는 기술 발전에 따른 생산성 향상과 함께 과거 다른 체제와 달리 사회의 신용창출 능력을 극대화한 (금융)자본주의 체제에도 기인한다. 특히 1971년 돈의 규칙을 통째로 바꾼 금본위제 폐지에 따른 명목화폐의 전 세계적 도입, 그 명목화폐를 중심으로 한 금융제도 도입으로 만들어진 신용창출 능력이 만들어낸 효과는 눈부셨다. 또한 자본주의 국가들의 위기관리 능력은 몇 차례 발생했던 공황 등 심각한 경제 위기를 극복했고, 이러한 경험들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는 위기가 찾아오더라도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체제라는 믿음을 만들었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그 믿음에 큰 균열이 생겼다.


지금 자본주의 체제는 근본적으로 부의 분배에 실패하고 있다. 특히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금융 불균형이 누적돼 커지고 있다. 분배 실패와 불균형 확대는 생산-소비-재생산이라는 자본 순환의 에코시스템을 무너뜨려 자본주의 체제의 존립 자체조차도 위험하게 만들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낳고 있다. 이러한 분배 구조의 악화에 따른 시장 실패와 더불어 다른 한편에서 진행되고 있는 기술 발달, 특히 정보기술의 발달은, 새로운 기술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던 과거와 달리 전체 산업에서 인간 노동의 필요성을 줄이고 있다. 이는 곧 노동 소득의 축소로 그리고 전반적인 인간 노동 질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기술 발달에 따른 노동 소득 감소로 노동자가 소비자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자본주의 체제는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유지될 수 없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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