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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athan Feel Jan 06. 2019

암호화폐, 새로운 질서의 발현

[블록체인 선언] (4) 화폐의 출현은 공동체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

암호화폐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물품 구매를 넘어 커뮤니티에 의한 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체계까지 갖추고 있다. 화폐가 정치경제 시스템의 중요한 하부 요소임을 감안하면 화폐 그 자체로 사회적 관계를 표상한다. 근대 국가를 기반으로 등장한 법정화폐는 과거 물물교환 등 직접적이고 의존적인 사회 시스템을 해체했다. 인간과 사물, 인간과 인간 사이에 돈이 개입했고 나와 타인, 나와 사물 사이의 직접적 관계는 단절됐다. 그리고 국가 주권에 의한 국가경제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암호화폐는 어떤 세계를 만들까. 

“암호화폐는 통화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은 화폐에 대한 무지하거나 협소한 사고에 기반한다. 특히 화폐가 국가 주도와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국가주의적 발상이다. 역사를 봐도 화폐를 제어한 주체는 국가만이 아니었다. 중세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의 상업 활동은 도시 상인들에 의해 국가 밖에서 이뤄졌고 다양한 증서와 국가 주조나 통제가 아닌 화폐를 통해 거래가 형성됐다. 화폐 발행과 통제 주체가 특정 국가가 아닌 다수 공동체였다.


독일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게오르크 짐멜(Georg Simmel)은 돈(화폐)이 자유를 준다고 봤다. 화폐 덕분에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다. 화폐는 불필요한 외적 관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시간으로, 고유한 내면으로 돌아가게끔 해줬다. 물론 그는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게 만드는 단점도 있다는 사실도 빼먹지 않았다. 돈은 양면적이다. 

화폐는 “추상적이고 보편타당한 매개 형식”(짐멜)이자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미디어(매개)이자 사회 시스템”(사회학자 김찬호)이다. 따라서 화폐는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것처럼 물질(material)이나 사물(thing)이 아니다. 하나의 사회적 관계이자 사회적 배치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화폐는 《증여론》의 저자이자 사회인류학자인 마르셀 모스의 말마따나 “경제적 현상이자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현상”이다. 


화폐 역사는 헤게모니를 획득하기 위한 권력 투쟁의 역사다. 새로운 사회적 관계망이 나타나고 무너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역사다. 유대계 금융재벌가를 이룬 로스차일드(로트실트)가 한 말을 보자. “나는 어떤 꼭두각시가 권력을 잡는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영국 통화를 지배하는 자가 대영제국을 지배하고 나는 영국 통화를 지배한다.” 지금-여기의 사람들이 로또 복권으로 일확천금을 꿈꾸고 아파트 시세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10억 만들기 프로젝트’ 등에 매달리는 것은 물욕이 아닌 ‘화폐의 힘’을 갈구하는 욕망이다. 앞서 암호화폐 성장세와 제도권 편입을 설명한 것은 화폐 헤게모니 이동과 ‘화폐 르네상스’라는 사건의 조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앞으로 암호화폐가 앞선 시대의 화폐가 그러했듯, 어떤 특수하고 우연 섞인 사건들에 의해 자리매김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86조 달러 규모로 추정되는 법정화폐를 대체할 지도 미지수다.


다만 분명한 것이 있다. ‘믿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많은 사람이 잊고 있는 사실이 있다. 지금 (법정)화폐 또한 믿음이 부여한 이름일 뿐이다. 미국 1달러 지폐 뒷면 글귀가 이를 대변한다. ‘In God We Trust One Dollar’. 1달러가 1달러, 1만 원이 1만 원인 이유는 모두가 그것을 1달러이자 1만 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그것을 내밀 때 다른 이도 같은 믿음을 보이기 때문이다. 화폐는 믿음이 있어야 작동할 수 있다. 믿음이 무너지면 화폐는 더 이상 화폐가 아니다. 경제위기에 맞닥뜨린 나라에서 법정화폐가 무용지물에 처하는 이유는 믿음의 붕괴 때문이다. 시대적 변화와 용법의 변화에 맞춰 암호화폐가 믿음을 얻는다면 암호화폐는 ‘암호’를 떼고 화폐의 이름을 얻을지도 모를 일이다. 짐멜이 오죽하면 “화폐에 대한 믿음이 신에 대한 믿음과 유사하다”라고 말했을까.



따지고 보면 모든 화폐는 가상이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모든 화폐제도는 하나의 허구에 불과한 것을 서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세상 모든 화폐는 숫자일 뿐이나 모두가 그 숫자를 믿고 있기 때문에 존재 가능하다. ‘가상화폐’라는 표현도 16세기 이전부터 있었다. 당시 한 상업 문서에는 이런 글귀가 나온다. “가상화폐는 실제로 존재하는 화폐가 아니다. 그것은 실제 화폐와 동일한 합계를 표시하기 위해 임의로 붙여진 이름이다.” 금이 아닌 특정 화폐를 가상화폐로 불렀다. 그러나 이는 실제 화폐 성격과 다르지 않다. 실제 화폐든 암호화폐든 모두 가상이다. 실제 화폐를 진짜라고 믿기 때문에 아직 모두의 믿음을 얻지 못한 암호화폐를 가상으로 여길 뿐이다. 하지만 믿기 시작하면 달라진다. 


믿음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모든 화폐는 정치적이다. 따라서 암호화폐도 정치적 통화다. 

“화폐는 특정한 상품이 아니다. 그것은 상품들 사이의 관계가 하나의 특정한 상품에 반영된 것에 불과하다.”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했던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화폐의 출현은 특정한 인간관계 혹은 사회적 관계의 출현이자 새로운 공동체의 발현이다. 암호화폐는 과거의 공동체를 해체하고 새로운 공동체와 사회적 관계를 낳는다. 화폐는 교환의 질서뿐만 아니라 시대의 질서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암호화폐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기대해도 좋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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