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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athan Feel Jan 09. 2019

“자본주의자에게서 자본주의를 구출해야 한다”

[블록체인 선언] (5) 고장 난 자본주의를 수리할 수 있는 블록체인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과 세계 금융위기 발발 10년 뒤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미국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는 흥미롭다. 18살에서 29살 사이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가 자본주의를 긍정 평가한 비율은 45%로 절반을 밑돌았다. 금융위기 여진이 남아 있던 2010년(68%)보다 낮은 수치였다. 2010년부터 2년 간격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자본주의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젊은 층이 50% 아래로 떨어진 것은 처음이었다. 2016년 조사 때는 57%였다. 2년 만에 12% 포인트 내려갔다. 반면 사회주의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는 51%에 달했다. 


이 결과를 놓고 감히 미국 청년들이 사회주의를 꿈꾸고 있다고 섣불리 말한 순 없다. 다만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는 매력을 잃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에 맞물려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미국 매사추세츠 주 상원의원은 2018년 8월 ‘책임 있는 자본주의법(Accountable Capitalism Act)’을 발의했다. 스스로를 “뼛속까지 자본주의자”라고 말하는 워런은 자본주의가 가진 매력을 되살리자는 취지로 법안을 내놨다. 법안은 회사, 특히 주식회사는 법적 인격체(personhood)로서 사회적 계약에 따른 도덕적 의무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법안은 △연 수입 10억 달러 이상 기업에 대한 ‘연방법인’(US Corporation) 인가제 도입 △연방법인 이사회에 노동자 40% 이상 참여 보장 및 정치헌금 규제 강화 △경영자 보수와 주식 처분 제한 등을 뼈대로 한다.

엘리자베스 워런 미국 상원의원

워런은 기업을 미국 경제의 주요 동인으로 인정했다. 다만 기업 이익을 사업에 재투자하지 않고 주주에게 흘러가도록 방조하고 경영자에게 막대한 금전적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것을 방지하자고 주장했다. 또 주주뿐 아니라 노동자도 기업 의사 결정에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보장하도록 법안을 구성했다. 즉 2차 대전 이후 미국 자본주의가 보다 나은 평등을 추구하던 시대에 나왔던 조치(더 많은 사업 투자, 의미 있는 기회의 사다리 제공, 더 많은 재정 안정성, 노동자에 대한 임금 향상)를 되살리는 내용 등을 담았다. 


워런의 의도를 해석하자면 불평등 해소에 더해 공공성 강화를 통해 고장 난 자본주의를 수리하자는 것이다. 법안은 연방법인이 주주의 재무적 이해뿐 아니라 계열사와 협력업체 노동자, 소비자, 지역공동체 등 전반적인 공공 이익을 위해 활동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가 <월스트리트 저널>에 쓴 기고문 <기업은 주주한테만 책임을 져서는 안 된다>(Companies Shouldn’t Be Accountable Only to Shareholders)는 이렇게 글을 맺는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는 대기업이 한 줌뿐인 사람들의 이해에 사로잡혀 모두의 이익을 외면했음에도 미국 인증 도장을 찍어줬다. 우리는 새로운 딜(거래)을 주장해야 한다.”(For the past 30 years we have put the American stamp of approval on giant corporations, even as they have ignored the interests of all but a tiny slice of Americans. We should insist on a new deal.) 

좋든 나쁘든 자본주의가 가장 고도로 발달한 나라로 인식되는 미국 내 이런 움직임은 자본주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또한 이런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우리 삶에 자본주의는 어떤 의미인가?”


“이집트 피라미드, 로마 송수로, 고딕 성당을 훨씬 뛰어넘는 경이로운 성공을 거둔” 자본주의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사실 자본주의는 죄가 없다. 제멋대로 자본주의를 농락한 자본주의자들이 문제다. 이들은 금융을 통한 주주가치 높이기에 혈안이 된 채 주주 이익에 따른 인센티브와 천문학적인 급여만 챙긴다. 이들에게 공공 이익은 없다. 그런 자본주의자들이 조장한 현 자본주의 체제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한계에 봉착했다. 그것은 불평등 확대와 소비력 축소 등의 형태로 드러났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체제에서 여러 위기가 있었지만 생산성이 향상되면 대부분 노동 소득은 증가했다. 노동 소득 증가로 다수의 중산층, 상당한 구매력을 보유한 소비계층이 탄생했고 이들을 기반으로 경제가 지속 성장했다. 반면 1980~2000년에 들어서 노동 소득 증가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지만 경제는 별문제 없이 성장했다. 아니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시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선진국 노동자들은 소득이 늘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낮은 금리의 빚으로 소비를 유지했다. 선진국 노동자들은 금융을 통해 소득 없이도 거의 모든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할 수 있었다. 이를 ‘경제의 금융화(Financialization)’라고 한다. 경제의 금융화를 통해 선진국 중심으로 금융 서비스 부분이 크게 성장했다. 이 때문에 경제는 호황인 것처럼 보였다. 이 시기, 자본가와 상위 소득자들은 자본소득을 통해 부를 크게 축적했고, 대부분 노동자는 빚으로 소비를 유지하는 불안한 상태가 지속됐다. 경제의 금융화를 기반으로 하는 현 자본주의 체제(이른바 ‘신자유주의’ 혹은 ‘금융자본주의’라고 칭함)는 과거 자본주의 체제보다 더 큰 문제를 일으켰다.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이 모든 상황을 설명해 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토마 피케티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을 통해 간결한 공식으로 증명했듯, 경제 불평등(부의 편중) 심화, 기술 발전 등에 따른 노동(일자리) 소멸과 소비 축소, 가속화되는 금융주권 소외 등은 현 상태로 사회가 지속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현재 자본주의 체제는 근본적으로 부의 분배에 실패하고 있다. 이는 생산-소비-재생산이라는 자본 순환 생태계를 무너뜨린다. 아울러 자본주의 체제 존립 자체도 위험하게 만들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낳고 있다.


이런 분배 실패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주주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주식회사 제도가 있다. 주식회사는 주식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 설립되며 주주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분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대부분 주식회사는 생산 비용을 최대한 낮추고 판매 가격을 가능한 높이는 사업 방식을 택한다. 이 사업 방식은 필연적으로 단위 노동당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 결과 대부분 단위 사업장에서 노동 비용을 최대한 줄이는 양태가 나타났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교수(UC버클리대 정책대학원)는 저서 《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를 통해 주식회사를 비판했다. 그는 기업 임원, 주주 등 직간접으로 기업 이익에서 소득을 얻는 사람은 부를 축적한 반면 임금 노동자는 그렇지 못한 구조를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Dutch East India Company)라는 세계 첫 주식회사가 탄생한 지 400년 동안 인류는 주식회사가 만든 혁신을 통해 혜택을 누려 왔다. 문제는 그러한 생산성 향상에 따른 부가 (주주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소수 주주에게 집중되며 생산된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할 다수 노동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식회사 제도는 이윤 형성에 기여한 이들에게 돌아갈 몫을 제대로 주지 못한다. 즉 합당한 분배에 실패한다. 


또 주식회사가 만든 생산물을 소비해야 하는 노동자 집단의 몰락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정보기술과 정보재가 생산에서 점점 더 비중이 커지고 있는 오늘날, 주식회사 형태의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이 탄생했다. 페이스북, 에어비앤비, 우버 등이다. 이들은 콘텐츠를 생산하고 운전을 하며 집을 빌려준 사용자 기반으로 성장했지만 정작 그들을 배려하지 않는다. 주주 자본주의에 의거, 몫을 분배하거나 보상할 근거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들에게는 국가 단위 부의 집중화를 넘어선 글로벌 규모에서 부의 집중화가 일어나고 있다. 소득 양극화, 부의 편중, 경제 불평등은 일정 부분 주식회사 제도에 기인한다. 주식회사는 주주 이익 극대화에 목을 매는 제도적 한계가 있다.


불평등과 부의 집중은 자본주의 기본 축인 소비를 쪼그라들게 만든다. 이는 자본주의 존립을 위협할 수밖에 없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60년대 자동차 회사 포드 회장이었던 헨리 포드 2세가 미국 자동차 노조위원장 월터 루터와 새 자동화 공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포드 2세가 물었다. “월터, 이 로봇에게 어떻게 조합비를 받아낼 건가요?” 

루터가 받아쳤다. “헨리, 이 로봇에게 어떻게 자동차를 사게 할 건가요?”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이런 자본주의 속성을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1913년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해 생산성을 높인 그는 이듬해 노동자 일당을 당시 평균보다 2배가량 높은 5달러로 올렸다. 결국 소비 축소나 위축은 기업가나 자본가에게도 재앙이다. 이미 자본주의가 고장 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일자리를 없애거나 악화하는 로봇이나 기계와 싸울 것인가? 이미 19세기 기계 파괴(러다이트) 운동은 실패했다. 자본주의를 폐기하거나 버리지 않는 이상 수리하는 일이 우리가 할 일이다. 워런이 제안한 법안처럼 주주가치만 극대화하려는 주주 자본주의를 바꾸고 견제하자는 제도적 움직임도 있다. 미국 경제학자 윌리엄 라조니크(William Lazonick)의 지적은 옳다. “2차 대전 이후 1970년대 후반까지 ‘보유하고 재투자하라’는 자원 분배에 대한 접근 방법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레이건 시대 이후 기업들은 비용을 줄인 여유자금을 금융 영역 이해당사자들, 특히 주주에게 분배하는 접근 방식으로 바꿨다.” 주주를 최우선 가치로 올려놓은 주주 자본주의 체제는 설비(재)투자나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해 구매력을 높이는 데 사용할 자금을 고갈시켰다. 이는 곧 경제 활동 위축으로 이어졌고, 지나친 불평등을 야기했다.

이런 결과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이미 짜인 각본이 아니다. 문제는 분배다. 

기술 발전이 가져온 축복을 누리고 싶다면 분배를 요구해야 한다. 그것은 정당한 요구다. 19세기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기계가 인간 노동을 온전히 대체할 것”이라며 ‘모두의 재산’인 지적인 기계로 누구나 혜택을 받는 시대가 오리라 기대했다. 


과거에는 없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블록체인 기술이 있다. 이는 블록체인이 내재한 분산화, 탈중앙화 알고리즘을 통해 가능하다. 공동 결정을 가능하게 만드는 투표를 통한 컨센서스(합의) 알고리즘은 부의 이전을 낳을 수 있다. 워런이 제안한 법안도 한 직장의 많은 이들이 민주적 통제권과 공동 의사결정을 갖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공동 결정은 근시안적 사고방식을 줄이고 급여 불평등을 완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독일 노동이사제에 대한 연구 결과도 있다. 

 

네덜란드 저널리스트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돈의 재분배(기본소득), 시간의 재분배(주당 근로시간의 단축), 과세의 재분배(노동이 아닌 자본에 부과하는 세금), 로봇의 재분배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자본주의는 주주와 경영진만의 것이 아니다. ‘이해당사자’(stakeholder) 모두의 자본주의여야 한다. “자본주의자에게서 자본주의를 구출해야 한다”는 토마 피케티의 말은 자본주의 기업을 고위 경영진과 주주라는 소수 결정에 휘둘리게 놔두지 말자고 해석할 수 있다. 모든 이해당사자의 동의와 공동 결정으로 우리는 자본주의를 고칠 수 있다. 이는 정부 지출(재정부담) 확대나 증세를 통한 사회복지 강화와 다르다. ‘큰 정부’가 아닌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진의 행동 변화를 꾀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상상이다. 하릴없이 로봇과 싸우지 않고 사회 경제 구조를 바꾸기 위해 공동으로 힘을 모으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자본가들에게도 유리한 구도다. 대량 생산과 함께 노동자 임금을 크게 올려 고도성장기를 연 포드 역시 자본가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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