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절대낭만 Jonathan Feel Jan 11. 2019

돈이란 무엇인가?

[블록체인 선언] (7) 블록체인에서 건지는 첫 질문

어린 날로 돌아가 보자. ‘돈’을 처음 만난 그때. 

우리는 양육자 등 누군가에게 돈을 받았다. 돈은 그때만 해도 숫자가 적힌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그러다 가게를 들렀다. 맛있는 과자를 집어 들었다. 계산대로 갔다. 종잇조각을 냈더니 그 과자는 내 것이란다. 포장을 뜯어 과자를 입에 넣었다. 아, 맛있다. 달콤한 첫 경험이다. 이 종잇조각이 있으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구나.


돈에 대한 원 체험은 그런 식으로 형성된다. 우리는 돈이라는 강력한 자장에 처음 포획됨과 동시에 돈에 대한 고정관념도 가지게 된다. 때문에 이후 “돈(화폐)이란 무엇인가?”를 묻지 않는다. 돈은 고정되고 객관적이며 절대적인 존재로 등극한다.

그런 면에서 비트코인에서 시작한 암호화폐는 돈에 대한 근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우선 ‘암호화폐란 무엇인가’라는 즉자적인 질문을 던진다. 검색도 하고 주변 사람에게도 들어보며 강연을 찾기도 한다. 뭔가 아리송하지만 뜬구름 잡듯 답을 구하다가 질문은 한 발 더 나아간다. “그렇다면, 돈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 거둔 성과다. 그전까지는 봉인된 질문이었다. 경제학자나 사회학자 등만 관심을 갖던 질문이 땅을 밟았다. 진즉 내려왔어야 할 질문이 제자리를 찾았다. 이것은 의미가 있다.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위기 상황에서 제기된다. 살다가 ‘나는 무엇인가(누구인가)’를 묻는 시기를 잘 떠올려보라. 각자 그 시기는 다르지만, 그렇게 묻기 시작할 때는 내게 어떤 식으로든 위기가 왔을 때다. 피를 흘릴지라도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산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그것은 기회다. 내가 무엇인지 묻기 시작하면서 삶은 달라진다. 생각해보라. 그 질문 앞에 답을 찾고 갈구하지 않던가. 돈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을 던졌다는 점에서 암호화폐는 문제적이다. 문제의식 없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돈’을 신성한 주술의 자리에서 내려가게 만들었다. 이는 곧 우리에게 자유를 선사할 수 있는 기회다. 돈이 이끄는 방향으로만 흔들렸던 우리였다. 우리가 돈의 노예가 아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라.


이는 시대정신이 달라진 것과 궤를 같이 한다. 리먼 브라더스 파산과 맞물린 세계 금융위기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정점으로 돌아가는 달러 화폐경제에 균열을 가하고 구멍을 냈다. 꼬박꼬박 세금 잘 내고 임금(노동소득)으로 삶을 유지하던 시민들에게 내 자산이 약탈당하고 있다는 자각이 똬리를 틀었다. 비트코인이 그런 문제의식을 담아낸 것은 앞서 설명했다.

 

한 나라가 법으로 강제 통용력을 부여한 법정화폐만 돈이라는 진리는 없다. 법정화폐는 유일신이 아니다. 법이나 공권력이 화폐가치를 100% 담보할 수도 없다. 북한을 비롯해 동남아, 남미, 아프리카 등지 일부 국가에서는 자국 화폐보다 달러를 선호한다. 자국 화폐를 불신하는 시민들을 탓할 순 없다. 화폐 발행·유통 시스템, 관리 능력 등에 심각한 허점이 있는데 자국 화폐를 믿으라는 공권력이 더 큰 문제다. 더구나 국가 마음대로 돈을 찍어 댔지만 우리 주머니에 그 돈이 제대로 분배된 적이 없다. 시민이 국가의 주인이라고 공표했지만 우리가 언제 돈을 찍어내라고 한 적이 있던가.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은 (투기 요인도 있지만) ‘진짜 돈’에 수요가 불러온 현상이다. 중앙은행이 발행한 지폐와 동전만 돈이라는 생각에 지배당했지만 그 지배를 떨쳐버리겠다는 의지가 발현되기 시작했다. 특히 ‘가상화폐’라는 표현은 잘못됐다. 사람을 속이는 단어다. 은행 예금만 봐도 가상이다. 통장에 찍힌 전자 기록일 뿐 실체가 없다. 정말 내 돈이 은행에 잘 보관돼 있는지 확인해 본 적이 있는가. 그저 숫자만 있다. 그렇게 믿을 뿐이다.


예금이든 암호화폐든 전자 기록이다. 그러니 암호화폐가 실체가 있니 없니, 하는 논쟁은 무의미한 말싸움이다. 지폐와 동전이라고 다르지 않다. 아주 많은 사람이 지폐와 동전에 적힌 숫자만큼 구매력이 있다고 믿을 뿐이지, 지폐와 동전도 따져보면 가상이다. 가상을 쫓아 그것을 보유하고자 애를 쓴다. 그런 심리는 결국 화폐도 투기 대상임을 보여준다. 부동산, 주식, 채권 등의 자산 가격이 떨어질 것 같으면 현금 가치가 오를 것으로 보고 현금 보유를 늘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경기가 나쁘거나 위기가 와도 마찬가지다. 즉 현금 보유는 현금 가치가 오른다는 기대에 바탕을 둔 투기 행위다. 법정통화인 원화 가치가 변동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착각이다. 환율, 주가, 채권, 부동산, 금 등 가치가 변동하지 않는 자산은 없다. 물가도 감안해야 한다. 1980년대 1천 원 가치와 지금 1천 원 가치가 다르지 않는가. 심각한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은 화폐 기능과 가치를 훼손한다.

19세기 영국 사회사상가로서 로버트 오언(Robert Owen)과 함께 협동사회 창설에 나섰던 존 그레이(John Gray)는 《화폐의 본질과 용도》(Lectures on the Nature and Use of Money)(1848)에서 사회적 폐해의 가장 큰 원인은 화폐 제도라고 주장했다. 화폐의 공신력은 법이나 공권력이 보장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의 ‘믿음’에 근거한다. 금융위기 탈출을 명분으로 많은 정부가 양적완화, 저금리, 팽창 통화 정책을 폈다. 돈을 돌게 하려는 조치였으나 이 돈은 되레 위기를 초래한 자들만 살찌웠다. 엄청나게 오른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그것을 방증한다. 


모든 것을 화폐가치로 환산해 행동하는 화폐경제는 인류에 크나큰 물질적 성장과 함께 부의 집중, 불평등과 배제를 낳았다. 화폐경제는 돈의 순환보다 축적에 방점을 둔 경제 형태다. 법정화폐로 구축됐던 화폐경제는 암호화폐라는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다. 학교 등에서 기초적인 물물교환에서 발달한 것으로 배웠던 화폐는 지금 새로운 유형의 상업을 만드는 암호화폐라는 도전 앞에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 아무런 제약 없이 국경을 초월해 쓰이는 화폐는 처음이다. 이는 국가경제를 비롯해 세계경제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국가가 가진 힘과 국경 앞에 고개를 숙였던 기존 화폐와 전혀 다른 작동원리와 규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 전쟁’은 시작됐다. 달러화를 비롯해 각국 통화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약해진다면 암호화폐는 세력을 키울 것이다. 반면 현재 믿음이 유지된다면 암호화폐는 세력을 넓히기 어려울 것이다. 암호화폐가 화폐가 될 것인가 아닌가, 논쟁도 무의미하다. 그저 믿음에 따르면 그뿐. 믿음이 이끈다면 더 나은 돈도 가능하다.

  

그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철학적 사유도 좋고, 인문학적 사유도 좋다.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보자. 돈이란 무엇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블록체인은 질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