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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대낭만 Jonathan Feel Jan 11. 2019

이자는 당연하고 정당한가?

[블록체인 선언] (9) 부의 집중에 따른 불평등을 만드는 이자 시스템

상식은 시대나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다. 노예 제도가 상식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그 상식에 반기를 든 사회혁신가들에 의해 노예 해방이 이뤄졌다. 그 결과, 노예는 더 이상 상식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가 상식이 됐다.


중세 시대 유럽에서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고리대금업은 추악한 행위였고, 이를 금지했다. 당시 기독교는 이자를 부과하다 걸리면 기독교 사회에서 그를 추방했다. 그러나 지금 은행은 실상 고리대금업을 하고 있다. 중세와 달리 합법적이다. 고리대금업자격인 은행원은 약발이 떨어지곤 있으나 여전히 선망받는 직업이다. 은행에 대한 상식도 바뀐 셈이다.

우리는 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도 마찬가지다.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한(?) 상식이다. 돈을 빌려주거나 빌리는 사람 모두 미래 불확실성에 대한 대가라고 여긴다.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 ‘상식’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것도 생각해보자. 다른 물건들은 보관하면 보관료가 든다. 물건 가치도 떨어지는 감가상각도 이뤄진다. 그러나 돈은 다르다. 은행에 아무리 오래 맡겨도 보관료를 내지 않는다. 되레 은행에서 이자를 받는다. 은행은 돈을 맡긴 사람이 먹거나 사고 싶은 욕망을 희생한 보상으로 이자를 주는 셈이다. 은행이 돈을 빌려줄 때도 마찬가지다. 이자는 그래서 중요하다. 현대 금융 시스템을 유지하는 뿌리는 이자다. 우리는 여유 자금을 은행을 맡길 때 가장 먼저 따지는 것이 이자다.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도 금리를 가장 먼저 따진다.  

하지만 우리는 이자에게 속고 있다. 실은 모든 가격은 이자를 품고 있다. 가령 생산자는 상품을 만들기 위한 설비비, 관리비, 임금 등을 지불한다. 이런 비용을 위해 대출을 하고 이자를 지불했다면 이자를 포함한 가격을 설정한다. 금전 거래를 할 때만 이자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숨겨진 이자가 있고, 우리는 일상적으로 이자를 받고 지불한다. 특히 이자 때문에 가난한 사람의 소득이 부자에게 이전되고 있다. 《화폐를 점령하라: 99%의 화폐는 왜 그들만 가져가는가》 저자이자 국제보충화폐(무이자 운동) 운동가인 마그리트 케네디(Margrit Kennedy)는 이렇게 설명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래되는 상품과 서비스 가격의 평균 40~50%가 이자 비용임에도 사람들은 이를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케네디는 이자가 파급하는 효과를 분석했다. 독일인 80%는 자신이 받는 금리 수익보다 이자 비용을 더 많이 지불한다. 나머지 20% 가운데 10% 독일인이 금리와 이자가 같고, 최상위인 10%는 90%가 내는 이자에서 거둬들인 수익으로 다시 금융 투자를 통해 재산을 늘린다. 이자가 가진 문제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현재 화폐 시스템은 극소수에게 부를 편중시킨다. 부의 집중에 따른 불평등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본 원리가 이자 시스템이다. 돈이 돈을 낳는 고리대금업의 근간이다. 부를 가진 사람들은 금리와 경제성장률 차이 등을 활용해 부를 더욱 빠르게 증식할 수 있다. 금융자산의 성장은 채무 성장의 다른 말이다. 한 사람의 금융자산은 다른 사람의 부채이기 때문이다. 케네디는 가격에 간접적으로 부과된 이자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노동량을 줄이고도 같은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이자 없이 은행(금융 시스템)이 돌아갈 수 있을까. 

지구 상에는 이미 이자 없는 은행들이 있다. 우선 스웨덴 야그(JAK)은행. 협동조합 은행인 야그은행은 대출과 저축에 이자가 없다. 대신 조합원이 저축을 하면 신용(포인트)이 쌓이고 이렇게 쌓인 신용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저축이 있는 조합원만 대출이 가능하며 신용이 이자를 대신한다. 이는 공동체 순환 원리와 통한다. 만약 내가 금리 없는 저축을 하면 다른 누군가는 무이자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훗날 내가 필요할 때 누군가의 금리 없는 저축 덕분에 무이자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신용을 많이 쌓은 조합원이 대출을 필요로 하는 다른 조합원에게 신용을 무상 기부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 얼마나 좋은 시스템인가. 은행 운영비는 가입비와 연회비(250 크로나), 서비스 이용료와 대출 수수료로 충당한다. 조합원 수는 4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실 대출 비율은 0.1%대로 조합과 조합원 간의 ‘신뢰’가 이런 수치를 만든다. 야그은행은 무엇보다 공동체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설계돼 운영되고 있다. 이를 위해 이자를 없애고 이자가 삶과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효과와 대안을 연구한다. 조합원은 미래와 공동체를 위해 저축을 하고 필요시 무이자 대출을 받음으로써 건전한 금융 생활 습관을 체득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자 수익에 기반을 둔 금융자산 축적이 없다.


조합원들은 집을 사고, 사업을 시작·운영하며, 금융 프로젝트 진행 등 다양한 이유로 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계좌만 개설하면 조합 구성원이 되고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또 조합원은 은행 주요 결정에 참여권이 주어지고 은행 전략과 방향 결정에 대한 발언권을 갖는다. 이는 저축 액수와 상관없다. 조합원 사이에 긴밀한 유대도 가능하다.


야그은행은 간접적으로 스웨덴 정부 예산도 아껴 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금리 대출 때문에 수렁에 빠져 정부 보조금에 기대야 할 이들이 야그은행 덕분에 재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웨덴 지방자치정부 중에는 야그은행에 예산 일부를 저축해 받은 포인트로 소상공인이나 지역사업체에 자금지원 도구로 활용하는 곳도 있다. 지방자치정부 재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지역 업체를 지원할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스웨덴 이슬람 지도자들은 야그은행 시스템을 지지한다. 이는 야그은행 기본 원리인 무이자 금융 시스템이 이슬람 샤리아(Sharia)가 규정한 돈의 윤리 원칙과 같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슬람권 은행에도 이자(리바)가 없다. 샤리아는 비도덕적이고 사회에 유해한 프로젝트에 투자와 투기, 과도한 이자를 부과하는 대출을 금하고 있다. 돈은 돈을 낳지 못하는데 이자를 내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관점이다. 대신 투자 수익을 얻는 방식으로 이슬람 은행은 유지되고 있다. 즉, 돈을 빌려준 사람은 채권자가 아닌 프로젝트 파트너(참가자)로서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관심을 갖고 함께 참여하는 형태다.  

이처럼 현재 상업은행과 구조가 다른 은행도 가능하다. ‘은행이 이자 없이 굴러가?’라는 상식은 잘못됐다. 우리 사회에서 상식으로 통용되지 않았던 새로운 금융시스템이 이미 세계 곳곳에서 잘 운영되고 있다. 모두를 위한 금융시스템은 가능하다. 블록체인은 그런 금융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적 기술이다.  


케네디의 일갈은 블록체인에 힘을 싣는다. “우리는 시스템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 새로운 화폐에 대한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새로운 기관에 위임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소수가 쥐고 있는 힘과 권력을 분산할 만한 작은 조직 단위로 새로운 시스템을 구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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