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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대낭만 Jonathan Feel Jan 12. 2019

'탈중앙화'는 왜 중요한가?!

[블록체인 선언] (11) 블록체인 철학을 배신한 BCH에서 배울 점

비트코인이 탄생한 배경을 다시 돌아보자.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 등으로 파생 금융상품은 휴지조각이 됐다. 소수가 쥐고 흔든 금융 시스템은 너덜너덜해졌다. 엉망으로 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 비트코인이 제시한 해법은 탈중앙화였다. 악의나 무능으로 무장한 소수 금융 권력이 아닌 이해관계자들이 직접 만드는 금융 시스템을 제안했다. 비트코인이 제시한 탈중앙화는 바꿔 말하면 ‘금융 민주화’였다. 기술로 물리적인 탈중앙화를 만들고 합의를 통해 금융 민주화를 달성하자는 내용이었다.


이런 탈중앙화 정신을 배신한 사건이 2018년 11월 일어났다. 비트코인에서 하드포크(Hard Fork)한 비트코인캐시(BCH)가 재차 나눠졌다. BCH 개발자 집단이 둘로 갈라져 해시파워 전쟁을 감행했다. ‘비트코인ABC’와 ‘비트코인SV’로 나뉜 이 전쟁은 탈중앙화에 대한 배신이었다. 해시파워를 지닌 개인 간 싸움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탈중앙화라는 철학이 얼마나 허약할 수 있는지 보여주면서 독과점 구조를 드러냈다. 암호화폐 시장은 ‘패닉 셀’에 빠지면서 폭락 장세를 연출했다.


비트코인이 나온 지 10년 동안 이질적인 생각과 욕망이 한데 뒤섞였다. 그 과정에서 비트코인 생태계는 초기 정신과 너무 멀어졌다. 폭락 장세에 대한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따질 순 없지만 암호화폐 생태계가 신뢰를 주지 못한 이유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그래야 이를 극복하면서 가능성을 재차 점검할 수 있기 때문이다. BCH 하드포크 전쟁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BCH 보유자 의사와 상관없이 소수 입장만 관철됐다. 비트코인 탄생 정신에서 ‘탈선’한 사례다.


리먼 사태와 금융위기처럼 이해당사자가 소외됐다. 하드포크가 어떤 문제를 야기할 수 있고 장단점은 무엇이며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 등 여러 숙의가 이뤄져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거버넌스’가 작동하지 못한 채 채굴력을 지닌 사람 중심으로 논의와 결정이 이뤄졌다. 정작 피해나 영향을 받는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는 배제 당했다.


이는 아이러니이자 큰 문제다. 리먼 사태가 금융 권력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피해를 준 것처럼 금융 민주화를 내걸고 나온 암호화폐가 같은 사태를 빚었기 때문이다. 이를 단순히 BCH의 문제만으로 치부할 순 없다. 업계 전반이 진지한 성찰을 지속해야 한다. 채굴은 과점 체제화 됐고, 탈중앙화라는 철학을 배신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암호화폐 폭락은 업계가 방향성을 잃은 데 대한 경종이다. 기존 금융 시스템을 비판하면서 같은 모습의 괴물이 된 것에 경종을 울린 집단지성의 발현일 수 있다. 니체가 그랬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이 과정에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만일 네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도 네 안으로 들어가 너를 들여다본다.”


해석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는 본질적인 위기였다. 하드포크는 화폐 유통 공간(범위)이 두 개로 쪼개지는 것이다. 커뮤니티가 갈라지는 것이다. 영국이 EU를 탈퇴한 ‘브렉시트’를 떠올려볼 수 있다. 쉽지 않아도 EU라는 하나의 화폐 공간을 유지하려는 이유가 있다. 화폐 공간을 쪼개는 것보다 단일화 했을 때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에는 거버넌스가 있다. 탈중앙화와 맞물려 ‘어떻게 합의를 이룰 것인가’에 대한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비트코인 커뮤니티는 이해관계자들이 존재하나 거버넌스 시스템이 없다. 보스코인 등 일부 암호화폐 커뮤니티가 ‘의회’(Congress)를 만든 이유가 그것이다. 민주주의의 본질이자 특징은 다양성이다. 이질적인 생각이 섞여 더 좋은 것이 나올 수 있다. 그런 시스템이 비트코인 커뮤니티에는 없다. 1인 1표에 기반을 둔 의회는 탈중앙화 된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됐다. 의회는 어느 한 노드의 일방적인 독주나 권력을 좌시하지 않는다. 다수의 이해관계를 수렴하는 민주적인 합의가 작동할 때 가치 체계는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의 본질에 저항하고자 한 비트코인의 고민과 철학은 여전히 유효하다. 안타깝게도 불평등과 부의 집중은 더 심해졌다. 토마 피케티가 말한 불평등의 장기화 등을 해결하려는 시도가 2008년에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블록체인 업체와 암호화폐 커뮤니티는 그 대담한 시도에 답을 내고 있는지, 과거로 돌아간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닌지 성찰해봐야 한다. 성찰하지 않으면 망한다. 대한민국 정치를 거칠게 빗대자면, 2017년 1월 새누리당에서 하드포킹이 일어나 바른정당으로 쪼개졌으나 결과적으로 두 정당은 지지율 측면에서 보면 거의 망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실익을 챙겼다. 말만 내세운 성찰만 있었을 뿐 다수의 이해관계자를 외면한 결과였다.  


BCH 하드포크 사태는 자성을 요구한다. 커뮤니티 내부의 토론과 합의 노력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관철할 거야’라는 개인 욕심만 두드러졌다. ‘리먼 브라더스 욕하더니 블록체인계의 리먼을 만들었느냐’는 비판도 가능하다. 다양하게 섞인 이해관계를 수렴할 수 있는 거버넌스의 중요성이 다시 확인됐다. 앞으로 이런 일은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관건은 커뮤니티가 얼마나 단단한가에 달려 있다. 커뮤니티에 집중해야 한다. 암호화폐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다. 비트코인이 가진 본질적인 가치는 주주 가치 극대화를 무너뜨리는 ‘금융 민주화’에 있다고 본다.

금융위기의 주범 중 하나로 꼽히는 주식회사 시스템을 모방하는 것은 블록체인에 대한 배신이다. 더 큰 권력을 쥐고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발상은 낡은 주주 자본주의 방식이다. 


탈중앙화는 특정 주체에게 힘(권력)을 싣지 않는 것이다. 글로벌 IB인 골드만 삭스 회장이나 시골 촌부 각자가 똑같은 한 표를 행사하는 주체로 서야 한다. 특정인에게 권력이 과하게 편중돼선 안 된다. 이것이 암호화폐가 가진 진짜 힘이자 지향하는 방향이다. 부의 편중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풍요로움을 생산할 수 있는 기제로 블록체인은 작동해야 한다. 개인을 식별하지 않는 계좌 뒤로 숨어서 자금력을 기반으로 한 패권 다툼과 작별하라는 것이 폭락 장세의 메시지일 수 있다. 경제(적 이익)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탈중앙화와 거버넌스는 결국 민주주의라는 정치와 사회 체제와 관련돼 있다. 암호화폐를 단순히 경제로만 봐선 제대로 볼 수 없다. 


영혼이 있는 암호화폐는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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