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실속 없이 바쁜 일상. 1년, 2년은 금방 지나갔다.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도 몇 명 남지 않았다. 뜨문뜨문 만나는 만남도 점점 피상적이 되어갔다. 자주 만날수록 할 말이 많고 속마음도 얘기할 텐데, 가끔 만나서는 잘 사는 모습만 보여 주고 싶었다.
어느 주말, 무무 씨는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쉬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외출 준비를 했다. 이제 막 출발하려는 버스를 뛰어서 잡아탔다. 사람이 많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급한 일이 생겨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친구의 연락이었다.
무무 씨는 이왕 나온 김에 오랜만에 시내 구경도 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았으나 기분은 좋아지지 않았다. 혼자 먹기도 그렇고 점심은 카페라떼 한잔으로 때우고, 원룸으로 돌아와 씻었다. ‘점심을 뭐라도 먹었어야 했는데… 밖에서 혼자 밥 먹는 거 처음도 아니면서…’ 무무 씨는 냉장고를 열었다.
녹두죽이다.
위로가 된다. 무무 씨는 녹두죽을 맛있게 먹는다.
어떻게 죽이 냉장고 안에 있는지, 누가 갖다 놓은 것인지 처음에는 의심도 되고 겁도 났다. 아프고 허기지고 그래서 먹고 나면 든든한 위로가 되었다. 혼자인 도시 생활, 변두리 작은 원룸에서 따뜻한 힘이 되어주는 냉장고 죽.
갑자기 집전화가 울린다. 이상하다.
휴대폰 사용으로 집 전화는 무용했다. 주말 외에는 집에 있는 시간도 거의 없었다. 전화 서비스를 해지했다. 그러니까 전화기는 있으나 있는 것 일뿐, 신호가 닿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받지 않는다. 그러자 곧 다시 울린다. 한참 만에 전화기를 들었지만, 무무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무무니?”
엄마 목소리다.
“…어”
“왜 전화를 이제야 받니?”
“아…”
말이 나오지 않는다.
“죽은 잘 먹고 있니? 버리지 말고 싹싹 먹어라.”
“…어”
“얘가 대답이 왜 이래, 이만 끊는다.”
어머니는 6년 전에 돌아가셨다.
눈을 뜬다. 꿈속에서 통화할 때는 살짝 당황했지만,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엄마 꿈 정말 오랜만이다. 지난 6년 동안 한손에 꼽을 만큼 엄마 꿈을 꾸었지만, 엄마가 꿈에 나올 때마다 꿈속에서든 꿈을 깨고 나서든 마음이 아렸다. 늘 뭔가 잘 안 되는 꿈이었다. 엇갈리고, 만나지 못하고, 연락이 안 되고, 통화가 끊어지고…… 이렇게 명료한 엄마 목소리. 짧지만 완전한 마무리.
‘얼마든지 싹싹 먹을 수 있어, 그릇에 구멍이 나도록 싹싹 말이야.’ 마음속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듯하다.
죽 하나에 무무 씨의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뭔가 벅차오르는 감정이다. 눈시울이 붉어진 무무 씨는 눈물이 흐를까, 습관처럼 휴대폰 화면을 열었다.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휴대폰 연락처 저장을 소속 다음에 이름으로 저장하는데, 뒷부분은 대충 보고 회사이름만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혹시 주말에도 일시키는 것은 아니겠지 하면서. 기프티콘 몇 개에, 제법 장문의 문자였다.
무무 선배님 (저번에 너무 급해서 선배님이라고 불렀는데, 괜찮죠?)
지난번에 저 대신 프로젝트 보고서 마무리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지금도 계속 감사하고요. 실은 그 날 엄마가 수술을 하신 날이었어요. 하루 종일 걱정이 돼서 일이 손에 안 잡히고, 진공상태였는데… 결국 실수까지 하고, 그냥 끝이구나 싶었거든요. 선배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정말 엄마도, 회사도… 상상이 안 가네요.
엄마가 회복하시는 동안 매일 죽을 사다 드렸거든요, 엄마랑 같이 매일 저녁 죽을 먹었는데 질리지 않고 오히려 죽의 맛을 알아버렸답니다. 혹시 좋아하실지 몰라 망설여졌지만, 퇴근하실 때 사 가셔서 아침에 드시고 나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식사까지 생각해주다니… 이 친구 회사에서랑 또 다르네,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