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겨울이 올 것 같더니 다시 날씨가 봄처럼 따뜻해졌다. 아침에는 겉옷을 챙겨 입다가도 낮에는 짐이 되는 날이 계속 되었다. 무무 씨가 겉옷을 챙겨 입지 않고 출근을 했던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외근을 하게 되었는데, 예고에 없던 비가 내렸다. 무무 씨는 조금 내리다 말거라 여기고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았다. 이내 굵어지는 빗줄기에 급히 우산을 샀지만, 곧 비가 그치고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늦은 오후 다리에 힘이 빠지는 느낌. 회사로 돌아가기에는 무무 씨의 컨디션이 별로였다. 바로 퇴근하겠다고 통화하기도 힘에 부쳐 부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10여분 뒤 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지만 무무 씨는 받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겨우겨우 샤워를 하고 잠이 들었다. ‘자고 나면 아침에 출근할 수 있을 거야, 아니면 동지팥죽을 먹을 수 있을까…’ 무무 씨는 잠결에 생각했다. 아니, 생각이 들었다. 냉장고 죽을 기대했다지만, 동지팥죽은 뭘까. 한 달여 뒤의 동지가 무의식에 있었던 걸까.
얼마나 잠을 잤는지 모르겠다. 제법 잔 것 같기도 하고, 이제 막 누운 것 같기도 한데… 탕탕탕… 탕탕… 먼 곳에서 공사를 하는 걸까, 아님 옆집에서 못을 박는 걸까. 그런 둔탁한 소리는 아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 우리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인가, 무무 씨는 일어나고 싶다. 하지만 누워있는 매트리스가 꺼질 듯 몸이 무겁다. 한참 뒤라고 느꼈지만 불과 1,2분일지도 몰랐다. 무무 씨는 몸을 일으키고 현관으로 향했다.
“안에 계세요?”
문밖에서 누군가 물었다. 간절하면서도 격앙된 여자목소리. 그러고 보니 잠결에 이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누구세요?”
“저… 잠깐 문 좀 열어 주시겠어요?”
“왜요?”
“아, 그러니까… 제가 여기 문 앞에 음식을 배달했거든요. 한 2,30분 전에요. 근데 그게…”
무무 씨가 문을 열었다.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서있었다.
“아! 근데… 그 음식 못 보셨어요? 혹시… 드셨나요?”
여자는 정중하게 묻고 싶지만, 그럴 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저는 음식에 대해 전혀 모르고요, 지금 자다가 나왔습니다.”
푹 가라앉은 무무 씨의 목소리에 여자는 말문이 막힌 듯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다가 뭔가 맥이 풀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에… 제가 너무 당황해서요, 죄송합니다.”
무무 씨는 문을 닫고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별 무리 없이 출근했다. 무언가 허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