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무 씨의 냉장고

by 박정아

17.

편의점 직원에게 팥죽을 배달한 뒤, 무무 씨는 죽을 집밖으로 갖고 나가도 냉장고에서 막 꺼낼 때의 온기를 계속 유지한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에 죽을 나누고 싶은 사람을 생각해 보았다. 몇몇 사람들이 떠올랐지만, 거리가 문제였다. 예를 들면, 회사 건물을 청소해주시는 분이나 회사 앞 사거리 지하보도에서 야근할 때 보게 되는 노숙인… 도자기 그릇에 담긴 죽을 그대로 가져가기는 무리였다. ‘다른 용기에 죽을 옮겨 담고 밀폐를 해야 할 텐데…’ 냉장고의 죽이 언제 다시 나올지도 모르는데, 무무 씨의 고민은 앞서 간다.


예년에 비해 야근이 많지 않은 연말을 보내고, 새해가 밝았다. 늘 그렇듯, 새해가 왔다는 것에 큰 의미는 없었다. 그저 나이가 한 살 더 들었다는 건데, 그것마저 별 이슈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밥값, 대중교통 요금이나 공과금 오르는 것이 더 신경 쓰였다. 아니, 생계가 달린 중요한 문제였다.

해가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저녁, 지체된 오후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 시간에서 한 시간쯤 지날 무렵이었다. 무무 씨는 컴퓨터를 끄고 겉옷을 챙기다가 화들짝 놀랐다. 어느새 부장이 바로 뒤에 와 있었던 것이다.

“부, 부장님… 왜…”

무무 씨는 또 무슨 급한 일이 생겼나 했지만, 야근을 직접 와서 시킨 적은 없었기에 의아했다.

“아, 그게 말이지… 잠깐 시간 있나?”

“네네… 잠깐…이요…”

“음… 그럼 회의실로 잠깐…”

부장을 따라가며 무무 씨는 사무실을 둘러봤는데, 아무도 없었다. ‘이 시간 정도면 그래도 몇 명 남아있지 않나… 뭔가 이상하네…’


회의실로 들어서자, 부장이 자리를 권했다. 무무 씨가 자리에 앉자 부장이 맞은편에 앉았다.

“혹, 혹시 배고프나?”

“네? 갑자기…”

“아니, 그게… 혹시 죽 좋아하나?”

“네?”

점점 알 수 없는 물음만 내놓는 부장.

“아니, 저번에 누구 씨랑 죽 먹으러 가는 것도 같고…”

“네네… 좋아하긴 하는데….”

“그럼, 잠깐…”

부장은 회의실 옆에 딸려있는 작은 다용도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일회용 숟가락과 그릇을 쟁반에 받쳐서 가져와 탁자 중간에 놓았다.

“음… 이거 좀 들게 나….”

무무 씨는 상체를 약간 일으켜서 가까이서 그릇 안을 봤다. 닭죽이다.

“부장님, 이게 어디서?”

무무 씨는 갑자기 하던 말을 멈추고, 그릇을 살피며 만져본다. 이 온기는, 그동안 무무 씨가 감각해온 딱 냉장고 죽의 온도 아닌가.


“부장님, 양이 조금 많은 것 같은데… 나눠 드실까요?”

“어? 그런가…?”

부장이 머뭇거리는 동안, 무무 씨는 다용도실로 가서 그릇 하나와 숟가락을 챙겨와 닭죽을 그릇에 덜면서 물었다.

“부장님, 닭죽 좋아하시나 봐요. 혹시 어렸을 때 자주 드셨거나….”

“어! 맞아요! 내가 닭죽을 좋아해서 돌아가신 우리 엄마가, 아니 어머님이 자주 해주셨지. 자주 먹었지. 요즘은 어쩌다 기회가 되면 먹지만….”

“아, 예예…”

무무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반쯤 덜은 그릇은 자기 앞에, 원래 도자기 그릇은 부장 앞에 놓는다.

“따, 따뜻해서 먹기 좋을 거야… 어서 들게…”

“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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