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무 씨의 냉장고

by 박정아

18.

무무 씨는 어느 냉장고인가 궁금했다. 여긴 회사가 아닌가, 이렇게 따뜻할 수 있다니…. 닭죽은, 역시 맛있다. 지난번 전복 내장죽 이후로 동물성(?) 죽이 비린내 없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냉장고 죽이라서 맛있는지도 몰랐다. 죽맛이야 당연히 인정이지만 무무 씨는 어느 냉장고인가 궁금했다. 같은 입으로 맛있는 죽을 먹는 것과 어느 냉장고인가 묻고 싶은 욕망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니, 맛있는 죽을 먹고 있기에 부장한테 묻고 싶은 것을 참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닭죽 먹기 전에는 굉장히 무안해 하더니, 먹기 시작하면서 부장은 별 말도 없이 닭죽을 맛있게 먹는다. 거의 다 먹어갈 때쯤 말한다.

“이게 말이야… 무무 씨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지…”

무무 씨는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부장님.”


지난 동짓날 누구 씨와 무무 씨가 야근을 한 다음날, 부장은 혼자서 사무실에 남게 되었다. 일을 빨리 끝내고 저녁을 먹자는 생각에 식사를 미루고 일을 하다가 출출해져서 다용도실 냉장고를 열었다가 닭죽을 발견했다. 처음엔 사무실 누군가 놓고 간 거라 생각했다가, 뚜껑도 없는 도자기 그릇이 이상해서 살짝 만져봤더니 따뜻했다. 따뜻한 그 온기에 부장의 두 손이 저절로 반응했다. 두 손으로 그릇을 받치고 회의실 자리로 가져와 닭죽을 먹었다. 먹을 때는 그 맛에 집중하며 맛있게 먹었는데, 다 먹고 나니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했다. 부장은 그 뒤로 연말에 몇 번 더 홀로 야근을 했다. 미리 저녁을 먹은 날도 있었고, 냉장고 안의 닭죽을 발견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마침 사무실에 무무 씨가 있었고, 무무 씨가 죽을 좋아했던 것도 같고, 이미 두 번을 혼자 먹기도 했고, 혼자 먹는 것 보다 함께 나누고 싶은 맛이어서 권했다고 부장이 말했다.

“근데, 내 말이 믿어지나…?”

그동안의 닭죽 얘기를 할 때는 쉬지 않고 말을 하던 부장이 갑자기 스스로도 납득이 안된다는 표정으로 무무 씨한테 물었다.

“음… 그… 냉장고 안에 죽 그릇을 만지면, 전해지는 그 따뜻함에 그냥 두 손이 저절로 가지요….”

부장의 표정이 급 해사해진다. 50대 남성의 얼굴이 이렇게 해사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에는 이렇게 웃는 적이 많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표정이다.


무무 씨는 집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혼자서 웃는다. 참아야하는데, 자꾸 미소가 입에 걸린다. 부장은 몇 달 전부터 무무 씨가 자기한테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는 다른 모습에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복권에라도 당첨되었나 했다는 것이다. 복권에 당첨되었다면 회사를 관둘 것 같았는데 그것도 아니고, 자신이 뭔가 무무 씨한테 잘못한 게 있나 고민할 정도였다고…

그러고 보니 부장이 예전과는 좀 달라졌다. 누구 씨의 프로젝트 실수 사건을 마지막으로 사무실에서 부장의 언성이 크게 들리지 않았다. 그 전에는 일주일에 한 두 번은 큰소리가 들리게 마련이었는데. 부장이 보기에 무무 씨도 그렇지만, 누구씨도 프로젝트 사건 이후로 뭔가 달라졌다고 했다. 부장은 그동안 나름 혼자서 많은 생각을 했고, 생각의 방향이 타자에게서 서서히 자기 자신에게로 향했다는 걸 무무 씨는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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