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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옥 Aug 10. 2021

향기는 옷에 가득, 어울림은 맘에 가득

『도산에 사는 즐거움』



이황의 『도산에 사는 즐거움』 중 맘에 드는 매화 시편을 외워 보자 의견이 나왔다. 즐거운 과제인지라 당장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고 기다림으로 하루를 보냈다. 책이 왔고 들뜬 마음으로 펼쳐 든 부분 중 맘에 드는 시 한 편으로 <달밤의 매화>가 선택되었다. 제목도 맘에 들었지만 특히 4행의 '향기는 옷에 가득 그림자는 몸에 가득'이 가슴을 건드렸다. 매화를 떠나지 못한 애절함이 한 문장으로 다했다. 






달밤의 매화 


                            이황


뜨락을 거닐 제 달이 사람 쫓아오니

매화 언저리를 몇 번이나 맴돌았나.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날 줄 모르니

향기는 옷에 가득 그림자는 몸에 가득.




시를 읽고 눈을 감자 이황이 매화 언저리를 돌며 밤늦도록 들어가지 못한 모습이 그려졌다. 달밤의 매화를 보고 떠나지 못하는 이황을 그리며 시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외운 문장을 잊지 않기 위해 설거지할 때도 거울을 볼 때도 매화를 불러냈다. 그렇게 이황의 ‘달밤의 매화’가 내게로 왔다. 이황은 『도산에 사는 즐거움』에서  “글을 골똘히 읽지 않으면 아무리 생각을 해도 얻은 게 없다"라 했다. 한 편의 시를 외우기 위해 매화를 생각했고 이황의 삶을 흠모했다. 이황을 알기 위해 성리학을 공부했다. 공부할수록 마음 가득 『도산에 사는 즐거움』 읽는 재미가 깊어졌다. 

 


시를 외우며 안동 매화 소식이 궁금했다. 남쪽의 매화는 3월부터 피었다가 지금은 지고 있는 형국인지라 행여 안동의 매화도 지지 않았을까 걱정부터 앞섰다. 다행히 차를 타고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차창 풍경은 아직 겨울이었다. 남쪽보다는 4~5도 낮은 풍경이니 매화를 볼 희망이 커졌다. 퇴계 이황을 모신 도산서원에 도착 후 이황이 흠모하던 매화부터 찾았다. 



대체적으로 서원의 건물 배치는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인지라 앞쪽에는 강당을 뒤쪽에는 사당을 모신다. 도산서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서원 마당 가득 매화가 한창이었다. 매화를 보며 '달밤의 매화'를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공들여 외웠던 시를 들려주자 매화는 이전의 매화가 아니었다. 마음을 내어주면 이렇게 꽃도 정이 되는가 보다. 



문을 열고 동쪽에 위치한 이황이 공부하던 도산서당으로 향했다. 서당 앞에 싸리문으로 만든 유정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갔다. '도산서당 마당 동쪽에는 '정우당'이라는 연못이 보이는데 이곳에 연꽃을 길렀다고 하나 보이지 않았다. 정우당 개울 건너에 작은 터를 닦고 샘을 파서 만든 '몽천'이 보였다. "이황은 샘 위의 산기슭에는 작은 단을 쌓고 매화, 대나무, 소나무, 국화 등의 꽃과 나무를 심어 두고 '절우사'라고 이름 붙여 산책을 즐겼다. 이 작은 뜰은 울을 쳐 막지 않고 자연스레 뒷산과 이어지게 했는데 이는 산이 뜰의 연장이 되게 한 것으로, 자연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아 정원으로 삼는 퇴계의 자연관을 보여준다(네이버 지식백과 출처)" 이는 곧 자연을 빌려온다는 차경을 말한다. 자연으로부터 빌려온 풍경은 또 다른 건축이 되었다. 어울려져 만들어 놓은 풍경을 뜻하는 차경은 꽤나 철학적으로 다가왔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차경'이란 단어는 신박 자체였다. 차경의 사전적 뜻은 멀리 바라보이는 자연의 풍경을 경관 구성 재료의 일부로 이용하는 수법을 말한다. 경치를 빌려와 건축의 일부분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 차경의 뜻인 경치를 빌려온다는 의미가 상상력을 불러들였다. 상상력의 나래로 건축은 '주인이 되고 풍경은 손님이 된다. 풍경을 손님이라 칭한 것은 풍경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삭막한 겨울이 지나고 봄꽃이 앞다투어 피면서 도산서원은 매화꽃으로 살아나기 시작한다. 꽃이 지고 초록색이 짙어지며 도산서원은 초록의 활기를 띤다. 왕성했던 나뭇잎들이 가을이 되어 낙엽으로 생을 끝내며 쓸쓸한 서원의 아름다움을 증폭시킨다.' 이처럼 주인인 도산서원은 그곳에 가만히 있으나 손님인 풍경은 계절을 따라 변하면서 건물의 미를 극대화한다. 도산서원과 함께 차경인 자연경관이 있기에 가능한 아름다움이다. 



매화와 도산서당의 어울림은 차경이었다. 차경의 뜻을 이해하면서 어울림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건물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함께 펼쳐진 풍경이 아름다워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건물일지라도 풍경과 동떨어졌다면 감흥이 덜할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조화로운 건축물은 두 번의 감탄을 안긴다.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면서 한 번, 사람의 힘으로 만들 수 없는 자연의 풍경에 또 한 번. 이들은 어울림이다. 



차경은 어울림이고 상생이다. 경관을 해치지 않고 자연을 품으려면 건물이 권위적이거나 돌출되어서도 안 된다. 건물은 자연의 일부여야 빛을 발한다.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자연과 합일됨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주변과 잘 어우러져야만 향기가 난다. 안동 여행 중 차경의 진정한 의미를 청량산을 뒤로하고 펼쳐진 농암종택을 보며 느꼈다. 농암종택 뒤로 펼쳐진 청량산이 종택을 품으며 어우러져 만든 풍경은 황홀했다. 농암종택이 압도한 건지 청량산이 압도했는지 모른 채 넋을 잃고 빠져들었다. 그때 뭔가 쨍하고 머리를 강타했다. 인식의 전환이었다.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만났던 풍경들이 떠오르고 모르고 지나쳤을 조화로움이 떠올랐다. 차경의 의미를 새롭게 알게 되면서 건물과 풍경이 다시 보였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경이다. 이래서 배움은 끊임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배울수록 세상이 넓어지고 황홀해진다.



인식의 전환은 함께한 이들 덕분이기도 하다. 차경이 자연을 빌려와 건물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이끌어냈듯이 함께 간 이들이 있었기에 안동 여행이 빛을 발했다. 여행을 계획하며 읽을 책을 주문하고 마음속에 담아둘 시 한 편을 외우면서 여행의 절반이 만들어졌다. 차경의 의미와 이황에 대해 배울 때의 기쁨도 컸다. 여행, 책, 배움, 동행과의 어울림이 있는 안동 여행은 인문학이었다. 여행은 인문학처럼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한 공부였고 함께 간 동행의 웃음소리는 삶에 지친 나에게 위로와 휴식이었다. 어울림으로 도산서당이 아름다웠던 것처럼 함께 간 동학들이 있었기에 빛을 발한 여행이었다. 



봄이 오기 시작한 길목에서 만난 안동 여행은 이황이 밤 깊도록 떠나지 못했던 마음이다. 안동 여행은 끝났지만 어쩌면 어느 날 훌쩍 "널(도산서원) 보고자" 안동으로 떠날지 모르겠다.




매화를 찾아가니

                           이황


망호당 아래의 한 그루 매화야

널 보고자 몇 번이나 말달려 왔나. 

천릿길 돌아갈 제 널 버리기 어려워

또 찾아와 흠뻑 취해 곁에 누웠네.




도산서원


도산서당


농암 저택과 청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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