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락을 거닐 제 달이 사람 쫓아오니 매화 언저리를 몇 번이나 맴돌았나.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날 줄 모르니 향기는 옷에 가득 그림자는 몸에 가득.
<달밤의 매화>, 『도산에 사는 즐거움』
안동 여행 중 도산서원으로 가려던 발걸음을 뒤로한 채 끌림처럼 농암종택으로 방향을 틀었다. 애초에 여행 목록에 없었던 여행지다. 농암종택 앞에 차를 세우고 대문 안쪽으로 들어가려던 발걸음을 멈췄다. 대문 입구에서 풍경을 감상하려는 의도였다. 대문을 몇 발치 앞에 두고 앉아 대문 너머로 펼쳐진 풍경을 바라봤다. 마당 너머 기와집(긍구당)이 눈앞에 나타났다. 뒷산을 배경으로 긍구당이 마치 만화 속에서 툭 튀어나온 듯 생소했지만 멋스러웠다. 아, 나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긍구당 대문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긍구당 홑처마 팔작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지붕의 곡선이 부드러웠고 목재로 만들어진 기둥과 문짝의 낡음이 인상적이었다. 나뭇결은 벗겨지고 군데군데 파인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긍구당이 고려 말에 세워졌다고 하니 흐르는 세월만큼 고풍스러움이 더해진 탓인가 생각했다. 낡음이 오히려 근사함으로 다가왔으니 말이다. 긍구당의 기와가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며 하늘로 향해서인지 전통 한옥과 다른 느낌이었다. 당당함과 자유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를 만큼 개성이 강한 모습이었다.
"긍구당은 고려 말 이헌이 처음 건립하여 손님을 맞는 별당으로 사용하던 것을 농암이 중수하여 긍구당이라 이름 지었다. 1973년 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었으며 조선 중기 문신 농암 이현보의 종가 별당이다." (네이버) 긍구당의 첫인상이 예술적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했기에 긍구당이 유형문화재 제32호라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건물도 성격이 있다면 긍구당은 낭만을 가진 여행자의 모습이었다. 언제든 훌쩍 떠났다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갇힘이 없는 분방함이 긍구당에 서려있었다. 긍구당에 첫눈에 반한 이유이기도 하다.
실은 안동 여행을 떠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회사일로 머릿속이 복잡했었다. 잘 나가던 공부방 교사가 갑작스럽게 이사를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수업을 인수할 교사 모집이 쉽지 않아 애가 탔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풀어가야 할 일들이 엉킨 실타래처럼 꼬여있어 마음이 복잡해졌다. 잘 견뎌내야 한다며 다짐했지만 결심은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졌다. 이를 앙 다물고 버텨보았지만 한계가 왔다. 위장장애가 왔고 두통이 시시 때때로 찾아왔다. 머리가 복잡한 시간에 떠나왔던 안동이었다.
마냥 긍구당에 끌렸던 것은 지금의 상황과 달라서인지 모르겠다. 세상과 멀찍이 간격을 두고 서있는 긍구당은 초월이었다. 의연한 모습이 삶은 견뎌내는 것이라말했다. 계절도 사계절이 있어 춥고 덥고 선선한 날이 있듯이 지금의 힘듦은 지나가는 과정이라 위로한다. '지금 일어나는 일은 다 좋은 일'이니 잘 견뎌 내라 용기도 주었다. 세월의 흔적이 훈장처럼 아름다워 보였던 것은 아픔을 승화한 당당함이었다. 쉼이 필요했던 힘겨운 시간에 만난 긍구당은 위로였다.
농암종택과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긍구당은 다시 들르고 싶은 곳이다. 봄빛에 겨워 연두색이 짙어질 때면 더욱 좋겠다. 긍구당 난간 누마루에 앉아 봄꽃이 흐드러지게 핀 개천도 보고 새벽잠을 깨우는 낙동강 물소리도 듣고 싶다. 밤이 깊어지면 누마루에 앉아 캄캄한 밤을 밝히는 별을 세어보고 싶다. 함께 한 이의온기에 몸을 맡기며 풀벌레 소리에 귀 기울이고도 싶다. 지루할 때쯤 청량산에 올라 땀을 흘려 몸속의 찌꺼기를 덜어내리라. 그렇게 꼬박 한 달을 지내보면 어쩌면 이황의 시 <달밤의 매화>처럼 긍구당의 '향기가 옷에 가득 그림자는 몸에 가득' 배일지 모른 일이다.
가끔 삶에 찌들고 힘들어 쉬고 싶다면 안동 농암종택의 긍구당에 들러 하루쯤 내려놓은 삶을 살아보는 건 어떨까. 사람에게 받은 위로도 힘이 되지만 때로는 자연으로 받은 위로가 더 클 때가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