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귀천>
봄빛이 익어가는 연둣빛 산을 배경으로 끝없이 대가야 고분이 눈앞에 펼쳐졌다. 광활하게 펼쳐진 능선이 고스란히 무덤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땅을 밟고 고분을 바라보면서도 비현실적이라 되뇌었다. 능선을 따라 끝없이 나타난 연둣빛 왕릉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현실성이 없는 커다란 왕릉이 영화 속 장면처럼 낯설기만 했다. 여행에서 만난 지산동 고분은 흔히 느꼈던 무덤이 주는 죽음과는 별개의 감정이었다.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단어가 웅장함과 죽음이 주는 유한성 때문이라 생각했다. 슬픈데도 아름다웠고 아름다워서 더욱 슬펐다. 그래서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단어였다. 아름다움은.
대가야 왕들의 무덤이 자리한 능선에 4월의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았다. 햇살을 받은 풀들이 바람처럼 하늘거렸다.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틈을 비집고 바람이 쉬익쉬익 화음을 넣었다. 화음 때문이었을까? 바람 따라 일제히 이름 모를 야생화와 풀들이 눕고 다시 일어나길 반복했다. 여행이 끝나가는 오후 햇살이 나른하게 길어질 때까지 대가야 왕들의 무덤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면서 그림자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덩달아 고분의 동그란 그림자가 커졌고 연둣빛 고분의 잔디가 넘어가는 햇살을 받아 한없이 온순해졌다.
이상하다. 세상은 바삐 돌아가는데 이곳만은 일시 멈춤 상태다. 누군가 재생 버튼을 누르는 걸 잊어버린 것일까? 아님 고분의 주인들이 시간의 흐름에 관심이 없기 때문일까? 삶이 멈춰버린 이곳은 정적만이 고분을 감쌌다. 자연이 주는 소리 외 불순물이 섞이지 않는 조용함이다. 사그락 거리는 옷자락 소리에도 놀라 눈을 떠야만 하는 이곳은 서기 400년 과거의 어느 봄날이었다.
적막감을 뒤로하자 아등바등 살아온 지난날과 놓지 못한 욕망이 지산동 고분군 앞에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수그러들었다. 끝없이 펼쳐진 대가야 왕릉 앞에서 시끄러웠던 머릿속 생각들이 멈추더니 어느 순간 텅 비어버렸다. 아무 생각 없이 햇살이 비쳐 따뜻해진 무덤과 배경으로 펼쳐진 산 풍경을 한참이나 응시했다. 왕의 무덤을 둘러싼 초록색 봄산이 연둣빛 왕릉을 조용히 품었다. 차경으로 펼쳐진 봄산 덕분에 왕들의 무덤이 한결 근사해졌다.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며 넘어가는 햇살을 바라보며 이렇게 몇 시간을 있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만큼 몰입으로 꽉 찬 시간이었다. 세상이 일시 멈춰버린 왕릉 위로 귀천의 노래가 잔잔히 울려 퍼졌다.
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서기 400년경부터 멸망한 562년 사이에 만들어진 대가야 왕들의 706개의 무덤 위로 애절한 노래가 흩어졌다. 마음이 삶과 죽음의 경계선 사이에서 오락가락 줄다리기를 타고 있던 상황에서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는 가사가 툭 마음을 건드렸다. 괜찮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일순간 와르르 무너졌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듯 위태로워 애써 두 눈을 꼭 감았다.
귀천의 노래가 배경이 된 채 노부부가 거대한 왕릉의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지팡이에 의지한 채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고 앞서가는 할머니는 연신 할아버지 상태를 주시하면서 왕릉 사이 좁은 외길을 앞서 걸었다. 얼핏 보아도 살아갈 시간이 살아온 삶보다는 짧아 보이는 이들이다. 저 두 분 중 누군가는 먼저, 노래 가사처럼 하늘로 돌아가기 위해 마주 잡았던 손을 놓아야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 저 노부부에게도 이 세상이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노래 가사에 얹었다.
고분을 내려오는 길에도 노부부의 모습이 잔상처럼 쉽게 떠나지 않았다. 왜일까 싶었는데 며칠 전 남편의 전화 때문이었다. “내가 말이지. 00 씨가 저번에 질문한 답을 곰곰이 생각해 봤어. 우리 부부가 왜 여행을 함께 다니는지에 다시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여행 다니는 이유가 좋은 추억 쌓기인 것 같아. 나이 들어 둘이 똑같이 세상을 등지진 않을 거잖아. 그때를 대비해 여행으로 좋은 추억을 만드는 거지. 추억은 혼자 남은 사람에게 주는 선물인 거니까. 먼저 간 사람이 보고플 때 꺼내볼 수 있잖아. 행여 늙어 우리 중 한 사람이 치매에 걸린다면 함께한 좋은 추억만큼은 기억하겠지. 삶은 기억의 무늬가 되니 말이야. ”
늘 함께라 우리 중 한 사람이 세상을 등진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고 우리도 언젠가는 이별을 하는구나 싶어 먹먹해졌던 시간이었다. 죽음이란 단어 앞에서 마음이 아파 생각하는 것을 멈췄지만 우리 중 한 사람이 먼저 떠난다는 사실이 마음을 눌러왔었다. 고령 여행은 마음속에 있던 숙제와 재회한 시간이었다. 꾹꾹 눌렀던 눈물의 시발점은 죽음이라는 화두 때문이었지만 슬픔은 아니었다.
1500년 전의 고분의 주인들과 만난 고령 여행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삶과 죽음이 머물러 있는 지산동 고분군에서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죽음과도 재회한 시간이었다. 평화롭게 누워있는 706개의 무덤의 주인들을 보면서 죽음을 외면하기보다는 품어야 하는 문제임도 알았다. 세월이 흘러 언젠가는 마주 잡았던 손을 놓아야 한다면 후회 없이 사랑하리라는 다짐도 했다. 아들러는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죽음이라는 필멸을 여기는 것은 담대한 용기로 그것을 인정하고 '지금 여기서 사는 동안 행복하라. 행복하라 그리고 또 행복하라'라고 말한다. 아들러의 말처럼 지금 이 순간 아쉬움이 없는 왕처럼 최선을 다해 사랑한다면 후회없는 여행이 될 것이다. 세상 끝나는 날 아름다운 소풍이었다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도록 행복하고 또 행복할 일이다.
그저 그냥 삶을 가장 소중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 아름답게 사는 것, 옳게 사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플라톤-
왕들이 잠들어 있는 지산동 고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