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아파트 1층이다. 처음 이 집을 선택했던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강렬했다. 창밖 풍경 때문이었다. 안개 가득한 비 오는 날, 베란다 너머 초록빛 나무들과 노란 꽃들이 담장을 이루며 서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싱싱한 초록으로 가득한 그 장면이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그래서 9층보다 덜 안전할지 몰라도, 햇살은 덜 들지 몰라도, 망설임 없이 일 층 집을 선택했다.
살다 보니 현실은 달랐다. 햇볕이 부족해 화초들은 예전처럼 무성히 자라지 않았고, 퇴근하고 겨우 물만 주며 하루를 넘기기 일쑤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집을 선택한 게 의문이 들기도 했다. 마치 첫눈에 반한 연인이 시간이 흐르며 현실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처럼.
그러던 어느 날, 베란다 밖 작은 자투리땅을 손질하는 어르신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무심히 지켜보다가, 점차 그분의 존재가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돌이 많고 풀이 무성한 땅을 일구고, 작은 꽃나무를 심고, 물을 길어다 정성껏 뿌리던 그분의 손길은 마치 오래된 시처럼 조용히 마음을 흔들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시간을 들여, 그 땅을 조금씩 바꾸어 가고 계셨다. 이웃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고, 식물 이야기를 나누며 텃밭을 가꾸는 어르신의 모습은 참으로 묵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동 빈 화단에 수국 열 그루가 심어지고, 꽃잔디와 국화가 그 뒤를 따랐다. 예쁜 꽃은 누구나 자기 집에 심고 싶어 하기 마련인데, 어르신은 그것을 ‘공유의 꽃밭’으로 만들고 계셨다.
퇴직 후 주택을 지을까 고민하던 나에게, 이 장면들은 잔잔하지만 강력한 울림을 줬다. 남편과 퇴직 후의 삶을 그려보며 ‘저런 삶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르신은 말없이, 그러나 꾸준히 이웃의 삶과 공간에 좋은 영향을 주고 있었다. 눈부시지 않아도, 거창하지 않아도, 그 존재는 분명 따뜻했다.
그 무렵 우연히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보게 되었다. 평생 약국을 운영하며 번 돈을 이웃에게 기부하고, 자신의 신념대로 조용히 살아온 그분의 삶은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런 분은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거의 신화에 가까운 삶 같았지만… 다시 베란다 너머 어르신의 모습을 떠올리자 조금은 용기를 얻게 되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작지만 따뜻한 무언가를 실천하는 삶.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지금의 여건 안에서 실현할 수 있는 ‘온기’의 나눔. 그 또한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어른이란 무엇일까. 나이를 먹는다는 건 숫자가 늘어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손에 쥔 것을 내려놓고 누군가를 위해 내 마음을 열 수 있는 용기를 키우는 일 아닐까.
내가 되고 싶은 어른은, 세상 한가운데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보다, 한 구석에서 조용히 따뜻함을 건네는 사람이다. 숫자만 늘어가는 노인이 아니라, 온기를 묵묵히 나누는 모닥불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