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의 관식이

by 박종옥




뒤늦게 인기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시청했다. 펑펑 울었다. 관식이가 애순이를 바라보는 눈빛, 묵묵히 챙기는 손길, 한결같은 마음은 깊은 울림이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익숙한 얼굴이 떠올랐다. 바로 남편이었다. 관식이가 애순이에게 전하는 사랑, 그 마음 씀을 보면서 남편이 겹쳐 보였다. 그동안 남편이 나를 향해 보내온 무한한 사랑이 떠올랐다. 그제야 깨달았다. 남편의 사랑 역시 관식이 못지않게 지극하고 깊었다는 것을.



며칠 전, 발목 수술 날짜가 잡혔다. 이미 2주 전부터는 산을 탈 수 없을 만큼 상태가 나빠졌고, 매주 함께하던 산행도 멈췄다. 등산은 우리 부부의 소중한 일상이었다. 정상에 오르면 몸이 개운해지고, 마음이 맑아졌다. 한 주를 새롭게 시작하게 해주는 의식 같은 시간이었다. 남편은 나보다 더 산을 좋아했다. 그러나 내 상태가 심상치 않자 그는 아무 말 없이 산 중턱에서 발길을 돌렸다.



“정상을 다 오르지 못해 아쉽지 않아?”라는 내 물음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정상보다는 너와 함께 있는 이 시간이 중요하지.”

그는 정상을 나를 위해 기꺼이 양보했다. 그 후로 산 대신 평지를 함께 걸었고, 걷는 것조차 힘들어지자 풍경 좋은 길로 드라이브를 했다. 수국이 흐드러진 길을 함께 달렸고, 내가 좋아하는 미술관을 먼저 찾아주었다. 비 오는 날엔 우산을 씌워주고, 계단을 오를 땐 손을 내밀어 조심스럽게 부축해 주었다.



산에 가지 못한 일요일, 내가 말했다.

“나는 발목 때문에 산에 가지 못하지만 당신이라도 산에 가.”

그가 말했다.

“각시가 같이 가야 등산도 재미있지. 네가 없으면 재미없어. 안 가. 각시랑 놀아야지.”


그 한마디에 모든 마음이 담겨 있었다. 산을 양보한 이유도, 드라이브를 기획한 정성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다 주는 다정함도. 그는 수술 전 입맛 잃을까 봐 갈비도 사주고, 소고기도 사주고, 회까지 챙겨주었다.

“수술 전 몸보신이라도 제대로 해야지.”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줄줄이 사다 주었다. 맛있게 먹고 있는 날 보며 그가 말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고 느낄 때가 언제인지 알아? 각시가 옆에 있어줄 때야. 그러니까 수술 잘해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같이 놀러 다니자.”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남편의 지극한 사랑은 예전부터 늘 곁에 있었다. 등산 중 신발 끈이 풀리면 허리를 숙여 묶어주고, 퇴근이 늦은 날엔 먼저 밥을 차려놓는다. 피곤할 텐데도 설거지까지 도맡고, 바닷가에선 내 신발을 벗겨 들고 다니다가, 다시 신길 땐 발가락 사이 모래까지 털어준다. 산을 오르다 자주 돌아서서 두 팔 벌려 나를 안으며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야.”



그의 사랑은 너무 익숙해서,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겨졌다. 관식이의 사랑을 보며, 남편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귀한 것이었는지 선명히 깨달았다. 뒤늦게 관식이의 마음을 알게 되면서 남편의 애정을 깊게 알게 되었다. 남편은 관식이 같은 사랑을 현실에서 조용히, 그러나 지극하게 살아낸 사람이었다. 이제야 그 사랑의 깊이를 알아차렸다. 너무 늦지 않아 다행이다.



《폭싹 속았수다》를 함께 본 일요일 아침, 남편이 아침밥을 해놓고 한 마디 했다.

“애순아, 밥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