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남편이 울었다

by 박종옥



결국 수술 날짜를 잡았다. 여름휴가에 맞춰 천천히 진행하려던 계획이 무너진 건, 계단을 내려가다 다시 발목을 접질렸기 때문이다. 접질린 상태로 교사 성과 워크숍을 진행하며 서 있었더니, 발목 통증이 극심해졌다. 결국 다음 날 병원을 찾았고, 수술은 예정보다 일주일 앞당겨졌다.



하루 전 입원을 위해 남편이 연차를 내고 병원까지 태워다 주었다. 입원 전 검사 항목은 많았다. 피검사, MRI, 엑스레이, 심전도, 소변검사… 기억하기조차 어려운 검사들을 받고 나니 어느덧 저녁이었다. 병실이 정해지고, 남편과 병원 근처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남편은 자꾸만 반찬을 내 그릇에 올려주며 많이 먹으라 당부 또 당부다.



4인실 병실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다리를 다친 팔순의 어르신, 허리뼈가 부러진 아주머니, 팔 수술을 받은 환자 사이에 나도 자리를 잡았다. 다들 아픔은 있었지만, 서로의 거리를 적당히 지켜주는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드디어 수술 전날 밤. 남편은 수술 시간이 정해지면 꼭 알려 달라고 당부했다. 혼자 수술실에 들어가겠다는 내 말에, 화를 내며 단호히 말했다.


“어떻게 수술실에 혼자 들어가게 해.”


알겠다고 말은 했지만, 마음속엔 ‘멀리서 왕복 2시간 반이나 되는 거리를 오게 할 수는 없다’는 마음이 있었다. 다행히 수술은 오전 9시로 잡혔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혼자 잘 다녀오겠노라 말했더니, 목소리 너머로 그의 걱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가족 단톡방에 ‘잘 다녀오겠다’는 문자를 남기는데 마음이 묘했다.



간호사가 와서 간이침대에 나를 옮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술실로 향했다. 좁아진 시야, 초록 수술복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들, 낯선 소독약 냄새에 겁이 덜컥 났다. 눈을 감고 안정을 취해보려 했지만, 반신마취가 된 채 수술실의 말소리, 메스를 대는 소리, 발목을 여는 기계음, 사진을 찍는 찰칵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려왔다. 의사의 말처럼 수면마취가 될 줄 알았는데, 나는 깨어 있었다.


“수면마취가 안 된 것 같아요.” 수술 끝에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누군가는 그 말을 들었을 것이다.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왔지만, 마취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8시간 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천장만 바라봤다. 메스꺼움과 어지럼증은 계속되었고, 죽 한 숟가락도 겨우 넘기고 눕기를 반복했다. 어지럼증이 좋아지지 않아 결국 복부에 주사를 4번 맞고 나서야 마취 부작용 증세가 조금 나아졌다. 수술보다 더 힘들었던 건, 바로 마취의 여운이었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걱정으로 가득한 목소리 끝에,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실은… 널 병원에 혼자 두고 돌아가는 길에 차 안에서 울었어. 네가 없으면 안 되겠더라고. 박종옥 없이는… 나는 도저히 혼자 살 수 없겠더라.”



그가 울었다는 말을 한동안 믿을 수 없었다. 결혼하고도 수십 년 동안 눈물을 보인 적 없던 사람. 묵직하던 그가, 수술을 두고 차 안에서 울었다니. 그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남편의 마음이 나를 울렸다. 남편이 흘렸다는 눈물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