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을 내어준 사람

퇴원 2일 차

by 박종옥



“일어났어? 아침밥은? 밥을 먹어야 약을 먹지.”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발목 인대 수술 후 집에서 보내는 첫날이다. 병원을 탈출하듯 나와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갑갑했던 입원실에서 벗어나니 숨이 쉬어진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여전했다. 아파트 주민들이 삼삼오오 오가고, 바람에 흔들리는 벚잎은 묵묵히 계절을 따르고, 마음씨 좋은 어르신이 손수 심은 백일홍이 환한 얼굴로 피어 있다. 나는 그 익숙한 움직임들 속에서 문득 멈춰 선다. 병원 특유의 하얀 긴장감에서 빠져나온 지금, 비로소 일상이 내 곁으로 조용히 돌아오고 있었다.


병원에 있었더라면 지루해 미칠 뻔했을 시간이었지만, 고맙게도 퇴원 1일 차는 무난하게 흘러갔다. 출근한 신랑은 틈틈이 안부 전화를 걸어왔다. 발목 상태는 어떤지, 점심은 챙겨 먹었는지, 불편 한 건 없는지, 약은 제대로 먹었는지를 확인했다. 통화 마지막에는 저녁에 뭘 먹고 싶은지를 물었다. 좋아하는 갈비를 먹으러 갈까 물었지만 목발이 불편해 사양했다.


“그럼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글쎄, 딱히 생각이 안 나.”


짧은 대화를 마치고 전화는 끊겼다. 저녁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양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들어온 신랑이 활짝 웃으며 안부를 물었다.


“잘 있었어? 힘들지는 않았고?”


씻고 오겠다며 욕실로 향한 그가 금세 나와 바구니를 풀기 시작했다. 시장 반찬이며 재료들이 쏟아졌다. 평소엔 시장 음식을 잘 사지 않던 사람이 깻잎, 계란 조림, 종류별 부침개까지 음식들이 잔뜩 쏟아졌다. 부엌과 식탁을 오가며 음식을 차리는 모습이 분주하고도 익숙하다.


“반찬이 없어 당신 잘 먹는 걸로 사 왔는데, 깻잎 좋아하지?”


안 그래도 입맛을 돋우는 반찬을 먹고 싶었다. 수술 후 입맛이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감자된장국을 끓이고 돼지고기도 구웠다. 테이블은 어느새 작정한 듯 차려진 진수성찬으로 변해 있었다. 입맛이 없던 나는 어느새 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남편은 다시 부엌으로 향해 과일을 들고 왔다. 귤, 방울토마토, 바나나. 모두 먹고 싶었던 과일이다.


“먹고 싶은 거 골라. 또 사다 줄게.”


말을 하면서도 그의 손은 쉬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입맛이 없어서 거의 못 먹었지만, 오늘 저녁은 오랜만에 제대로 먹은 식사였다. 식사가 끝난 뒤 남편은 설거지를 하고 내 곁에 와 앉았다. 붕대를 풀고 수술 부위를 살펴보다가 이내 얼굴이 굳어졌다.


“왜 이렇게 꿰맨 거야? 이게 뭐야? 실력 있는 의사가 맞긴 한 거야?”

“이딴 식으로 꿰매다니….”


화를 눌러 담은 말투였지만, 손길만큼은 조심스러웠다. 몇 번이고 소독을 반복하고, 붕대도 정성스럽게 감아주는 그에게 말했다. 피부 봉합이라는 게 꼭 미용실 기술처럼 반듯하고 고와야 하는 건 아닐 거라고. 의료진 입장에서는 감염 없이 잘 아물도록 기능적으로 잘 닫아놓는 게 우선이지 않겠냐 말했다. 모양보다 본질이 중요한 거라고 설명했다. 그는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빛은 아직 의심 가득했다. 꿰맨 흔적 그게 뭣이라고 생각하면서 날 위해 화를 내는 신랑이 고마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잠시 쉬고 있는 그에게 말했다.


“화장실 좀 가야겠어. 의자 줘.”

“그냥 업혀.”

“내가 무거워. 안 돼. 불안해서. 그냥 의자 줘.”

“괜찮다니까. 업혀.”


결국 그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등을 내주었다. 조심스레 그의 등에 업혔다. 화장실에서 돌아올 때도 그는 다시 나를 업어 소파로 옮겨주었다. 소파에 누워 드라마를 보고 있는 내게 그가 말했다.


“자고 싶을 때 불러. 내가 와서 업어줄게.”


시간이 훌쩍 지나 자정을 넘기자, 아들이 방문을 열었다. 밤늦도록 드라마에 빠져 있는 날 걱정한 아들은 일찍 자야 한다며 드라마를 꺼주었다. 뒤늦은 반성이 밀려왔다. 퇴원하면서 그렇게도 다짐했던 건강한 생활. 하루 만에 무너져버린 나 자신이 한심했다. 아들의 도움을 받아 안방으로 향했다. 그 소리에 남편이 벌떡 일어나 내 곁으로 다가왔다.


“조심, 조심. 발 잘 들고… 안 다치게… 그래, 됐어.”


내가 편히 누운 것을 확인하자, 그는 자리에 돌아가 깊은 잠에 들었다. 불을 끄고 눈을 감았지만, 나는 한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병원에 있는 내내 익숙하지 않은 공간과 어색한 시간 속에서 뒤척였다. 생각해 보면 직장에 있을 때도 늘 긴장 속에 살았다. 교육을 준비하며 머릿속이 가득 찼고, 불편한 관계 앞에선 감정이 밤까지 따라왔다. 제대로 눕는 것도, 푹 자는 것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그 모든 복잡한 것들에서 조금 비껴서 있다. 익숙한 집, 부드러운 침구, 그리고 조용히 곁을 지키는 사람이 있어 나는 더 이상 무너지지 않는다. 낯설고 힘들었던 시간을 지나, 지금은 그저 숨을 고를 수 있어서 다행이다.


퇴원 2일 차 아침, 평소 루틴대로 노트북을 열어 글을 쓴다. 아직 발목은 아프고 몸은 불편하지만, 마음은 편안하다. 남편의 지극한 정성이 오늘 하루를 천천히 시작하게 해 준다. 그 마음 덕분에,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