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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옥 Aug 26. 2021

아름다움을 지나치지 말길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

일상의 환경에서 벗어나 자연경관을 접하면(숲 속을 거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애써 주의를 집중할 필요 없이 주변 환경의 물리적 요소에 매료되어 자연히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이렇게 자연에 매료되면 말라버린 우물에 물이 다시 채워져 기분이 좋아지고, 신경계가 이완되고, 집중력과 주의력이 향상되어 문명세계의 일상적인 경쟁 사회로 복귀할 수 있다.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





* 일시 : 2019년 10월 27일

* 산행지 : 지리산 피아골

* 등산코스 : 직전마을~표고막터~통일소~삼흥소~구계폭포~남매폭포~피아골대피소~불로교~피아골삼거리

* 소요 시간 : 8시간




 


소설가 조정래는 역사적으로 비극적 현장이었던 피아골과 피아골 단풍을 "피아골의 단풍이 그리도 핏빛으로 고운 것은 먼 옛날부터 그 골짜기에서 수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원혼이 그렇게 피어나는 것."이라 소설 [태백산맥]에 단풍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피아골의 단풍을 기대하게 만든 문장이다. 글을 읽자 마음은 이미 피아골 계곡을 앞서 걸었다.



기대를 안고 피아골 등반을 위해 연곡사에 주차한다. 연곡사는 백제 성황 22년에 창건한 사찰이지만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전소가 된 절이다. 이후 소요태능 스님과 400여 명의 승려가 모여 수행하여 선풍을 일으키며 다시 세워졌으나 1907년 연곡사가 한일의병의 근거지라는 이유로 다시 일본군에 의해 전소된다. 이후 1950년 6.25 전쟁으로 또다시 전소되는 수난을 겪었다. 전쟁으로 세 번이나 수난을 겪은 곳이라니 아픈 역사를 상기하면서 최근 불거진 일본 불매운동 의지가 불끈 솟아올랐다.



처음 지리산과 연이 맺어진 계기가 지인과 함께한 천왕봉 등반이다. 지리산에 매혹되어 두 번째 다시 다녀왔던 천왕봉 등반에 첫눈을 만나는 행운도 얻었다. 세 번째는 뱀사골 계곡 트레킹, 네 번째는 세석평전을 다녀왔는데 모두 만족한 산행이었다. 다섯 번째에 다시 온 피아골이다. 피아골의 단풍은 산객들에게 이미 입소문이 난 산이다. 지리산 시인 이원규는 그의 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에서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라며 지리산 단풍을 찬탄했다. 그의 시처럼 지리산에 반해 다섯 번이나 올랐다면 자격이 있지 않나 너스레를 떨며 발걸음을 옮긴다.



직전마을에서 바라본 피아골 풍경은 가을빛이 완연하다. 산을 오를수록 계곡 물소리가 우렁차다. 계곡 주위에 펼쳐진 단풍은 산속보다 색이 짙고 아름다웠다. 검붉은 단풍에 넋이 빠져 길을 멈출 때면 여지없이 사진을 찍는 분들이 보인다. 장비만 봐도 전문가 포스가 느껴지는 이들이다. 그들이 풍경을 촬영하는 곳에 슬쩍 끼어 사진을 찍는다. '전문가가 보는 지리산 포인트는 어떤 곳일까?' 궁금했으니까. 그들이 바라보는 곳에서 똑같이 사진을 찍었지만 사진이 흡족하지 않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다 담아내지 못한 사진을 보며 문득 사진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피아골 대피소까지 오르며 자주 멈춘다. 속도에 빠져 아름다움을 지나치지 말자는 생각에 비롯된 행동이다. 산을 오를수록 계곡 물소리와 붉은 단풍이 어우러져 황홀한 풍경을 자아낸다. 지난주에 오른 세석평전 계곡이 부드러운 여성의 미라면 피아골 계곡은 투박하고 거친 남성적인 미다. 피아골 골짜기는 쉽게 곁을 내주지 않을 것 같은 까칠함이 있다. 때문에 멈칫했지만 용기 내어 다가가자 온전히 길을 내준다. 내어준 길이 여지없이 아름다워 이내 맘을 뺏긴다. 절정인 단풍은 손을 대면 데일 것 같이 붉었고, 붉은 단풍은 순식간에 불타버릴 것처럼 강렬하다.



산을 오를수록 단풍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힘들어 돌아섰다면 보지 못했을 풍경이 시시때때로 나타나 탄성을 자아냈다. 가을에 흠뻑 빠져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한 시간 정도 오르자 정상이다. 정상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운무에 갇힌 산과 구비구비 산등성이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풍경이다. 단풍이 짙어지면서 각양각색의 빛을 뿜어낸 산빛은 상상 이상이다. 세상의 색이 이렇게 다양하다는 걸 가을산 정상에서 느낀다. 덕분에 순간에 몰입하며 흠뻑 빠진다.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몰입은 명상이다. 몰입하여 생생하게 살아내는 이 순간 행복하다. 힘든 일상으로 다시 되돌아간다고 해도 거뜬히 삶을 살아낼 새로운 기운이 샘솟는다. 등산과 자연의 효과다. 가을산에 흠뻑 빠지지 않으면 모를 기쁨이다.



정상을 오르기 위한 힘든 오르막길도 결국 끝이 났다. 삶도 마찬가지다. 힘들다고 포기하고 뒤돌아 선다면 만나지 못할 풍경이 존재한다. 아름다움을 만나기 위해서는 힘든 순간을 극복해야겠지만  흠뻑 빠지는 게 중요하다. 똑같은 풍경도 마음이 힘들면 보지 못한 풍경이 많다. 나 또한 힘들다고 투정하고 땅만 보고 걸었으면 피아골의 가을에 매료되지 못했을 것이다. 마음의 시선을 바꿔 긍정정서를 담아 세상을 보자 삶이 아름다웠다. 지금 이 순간에 흠뻑 빠지는 일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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