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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옥 Aug 23. 2021

견디는 일은 물을 주는 일이다

『할아버지의 기도 중』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지혜를 가르쳐준다. 때로 삶은 우리에게 고통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과정을 지날지라도 뒤돌아보면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성숙해졌음을 알게 된다. 모든 사람들 안에는 성숙을 위한 씨앗이 뿌려져 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씨앗이 잘 자라도록 물을 주고 가꾸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기도 중』

『할아버지의 기도 중』

『할아버지의 기도 중』





신입교사 국어 강의를 위해 현관을 나선다. 나무 밑에 주차해둔  상태가 평소와 다름을 직감했다. 황사인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니 미세하게 꿈틀거린 게 보인다. 헉, 벌레들이다. 나무에서 떨어진 벌레들이 유리창에도 차 위에도 백미러에도 빈틈없이 쫙 깔렸다. 상상할 수 없는 양이다. 하룻밤 사이에 떨어진 양이라고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 꿈틀대는 벌레를 보자 온몸이 감전되듯 와락 소름이 돋았다. 딱히 제거할 방법과 시간이 없어 조심히 차문을 열고 잽싸게 차에 올라 시동을 건다. 속도를 높여 녀석들을 날려버리겠다는 심사였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3분의 2는 날아갔지만 유리창에 붙어있던 녀석들은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차가 없는 한적한 도로에서 속도를 더 올렸지만 마찬가지다. 끈질긴 벌레를 보면서 속도로 녀석들을 제거하겠다는 생각은 순진한 착각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교육장에 도착한 후에도 남아있는 벌레를 보고 생각이 복잡해진다. 벌레를 제거할 방법으로 세차를 생각하고 강의하는 동안 차를 맡기기로 했다. 세차장 직원에게 꼼꼼하게 벌레를 없애달라 신신당부하고 교육장으로 향한다.



겨우 마음을 진정하고 강의실 문을 열었다. 신입교사의 밝은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다. 강의를 시작하자 열정 가득한 신입교사의 밝은 에너지가 전달되어 교육할 동안 신이 났다. 마무리 교육을 끝내고 그들이 각 교실에 배치되어 현장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선배로써 조언해주고 싶었다. 때마침 생각나는 게 끈질기게 살아남은 벌레 이야기다.


 




선생님, 벌레 하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그렇지요. 징그러워 쳐다보고 싶지 않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벌레를 제가 오늘 수백 마리를 봤어요. 나무에서 떨어져 제 차에 떡하니 자리 잡고 꿈틀대는 벌레와 함께 고속도로를 달려 이곳까지 왔어요. 차가 무겁더라고요. 여기저기 웃음이 새어 나온다.

 


벌레를 보면서 느낀 점이 있어요. 벌레를 없애려고 고속도로를 있는 힘껏 달려왔는데도 끝까지 살아남았어요. 당연히 떨어질 거라 생각했거든요. 먼지처럼 가벼운 녀석들이니까요. 창원까지 덕분에 제 인생 최고 속도로 달려봤네요. 그런데도 녀석들은 떨어지지 않았어요. 대단하지 않아요? 그게 뭘까? 고민해 봤어요. 끈질김이라 생각했어요. 살아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그들을 살린 거예요. 끝까지 매달린 벌레들은 살아남았고, 중간에 포기하고 떨어져 나간 벌레들은 죽었으니까요. 안타깝게도 세차장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지만요. 하찮은 미물이지만 이 모습을 보고 삶의 지혜를 배웠어요.



여러분들은 교육을 수료하면 교육 현장으로 가게 될 거예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보람된 일이지만 예기치 않는 일이 발생할 수 있어요. 생각지 못한 일을 겪으면서 힘든 순간도 올 거예요. 힘든 순간을 극복한 후에도 가끔은  태풍이 여러분을 강타할지 몰라요. 가끔은 뒤돌아 눈물 흘릴 날도 있을 거고요.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올지 몰라요. 그 순간이 오면 오늘 저와 함께 창원까지 온 벌레의 이야기를 기억해주세요.

 


이 말은 벌레를 그리워하자는 의미가 아니죠. 다시 웃음이 흘러나온다. 그들을 보면서 다시 마지막 말을 이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벌레처럼 어려움이 닥쳐도 쉽게 포기하지 말자는 거예요. 각자가 가져갈 비전을 세우고 본인이 이 일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를 상기하며 견디면 돼요. 힘듦도 언젠가는 지나가더군요. 저도 살아남아 여기까지 온 거니까요. 여러분들도 잘 견뎌내면 힘든 시간을 웃으면서 이야기할 날이 올 거예요. '이 또한 지나간다'는 말을 좋아하는데요. 힘들 때 주문처럼 하는 말이에요. 견디기 힘든 시간에 자신에게 물을 주는 의미로 그 시간을 잘 보낸다면 힘듦도 지나가더라고요. 힘든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성장을 위해 거쳐야 할 시간이었어요. 힘들더라도 굳건하게 이겨내고 학생들에게도 자신에게도 최고의 선생님이 되세요.






강의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 그들에게 당부한 말을 상기했다. 신입 교사들에게 한 말은 지금 나에게 필요한 말이다. 교육 환경이 어려웠고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에 신입교사 강의를 도망치듯 왔던 나다.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를 때였기에 그들에게 전했던 말은 나를 위한 다독임이다. 누군가를 격려하면서 우리는 위로를 받기도 한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꽃도 움츠린 시간이 있었잖아요. 활짝 피기까지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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