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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옥 Sep 18. 2021

걷다 보면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그토록 많은 철학자들이 걷기를 즐겼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물론 소크라테스도 아고라를 거니는 것을 다른 무엇보다 좋아했다. 니체는 "진정으로 위대한 생각은 전부 걷기에서 나온다."라고 확신하며 종종 기운차게 스위스 알프스 산맥으로 두 시간가량의 짧은 여행을 떠났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나는 멈춰 있을 때에는 생각에 잠기지 못한다. 반드시 몸을 움직여야만 머리가 잘 돌아간다. p.93" 루소의 말처럼 걷기 위해 선택한 운동이 등산이다. 가슴이 답답할 때도 걸었고 글이 써지지 않을 때도 걸었다. 걷고 나면 답답함이 풀리고 맘에 드는 문장도 만났다. 황홀한 풍경을 자랑하는 산길을 걸을 때면 세상의 단어들이 달려드는 경험을 한다. 그중 하나를 골라 핸드폰에 적고 나면 곳간이 꽉 찬 것처럼 든든해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옆지기와 자연을 배경으로 걷는 행위는 생각보다 꽤 근사하다.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되어 옆지기가 뜬금없이 멋있어 보이는 돌발 상황도 만난다. 감성이 몽글거려 대화거리가 풍성해짐은 덤이다. 대화의 80%는 함께 걸으면서 이뤄졌다. 걷기는 혼자일 때도 좋지만 함께 걸을 때 더 많은 시너지가 생긴다. 덕분에 매주 일요일마다 산을 오른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극심하게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산은 피난처다. 걷기가 몸에 익숙해지자 걸으면서 부드럽게 대화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날 서지 않는 대화는 자연과 더불어 걸으면서 가능했다. 정지된 채 서로의 얼굴을 보며 나누는 대화는 각이 서지만 자연과 함께 나누는 대화는 풍경 덕분에 한결 부드러워졌다.



자연이 주는 넉넉함이 의견이 다른 대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나무는 조용히 바람의 이야기를, 산새의 이야기를, 구름의 이야기를 듣는다. 자연의 소리가 틀리다고 반박하지 않는다. 모든 소리를 귀담아듣고 요란하지 않게 조용히 다름을 인정한다. 나무는 가지를 흔들어 마음을 어루만져 줄 뿐 충고하지 않는다. 세차게 부는 바람을 탓하지도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소리도 타박하지 않는다. 묵묵히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경청이 먼저임을 나무는 조용히 타이른다.



자연은 똑같은 풍경을 보여주지 않는다. 삶도 그렇다. 다름은 당연함이다. 다르기 때문에 세상은 굴러간다. 부드러운 흙과 작은 자갈과 커다란 바위가 각자의 자리에 있어야 단단한 산이 되듯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게 자연이다. 다름을 핀잔할 일이 아님을 산을 통해 배웠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부부의 결혼도 마찬가지다. 다름으로 만나 조금씩 퍼즐을 맞춰가는 게 결혼이다. 내가 갖지 못한 걸 그가 채워줘 결혼 생활이 단단해졌다. 함께 걸으며 서로의 세상에서 한동안 머물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는데 쉬워졌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세상을 함께 거니는 일은 그를 사랑하는 일이다.



함께 걷는 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마주 잡은 손으로 전해지는 마음을 느끼며 같은 풍경을 보며 찬탄하며 아름다움을 공유하는 일은 단단해지는 일이다. 성벽이 단단하면 쉽게 허물어지지 않듯 함께 걷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관계는 견고해진다. 걷기를 통해 우정이 쌓이고 걸으면서 애정이 돈독해졌다. 20년이 넘는 결혼 생활을 탈없이 지낸 건 함께 걸었기에 가능했다.



마음이 시끄러울 때 걷기 위해 잠깐 일상을 멈춘다. 비움이 있어야 다시 채워지듯 걷기 위한 멈춤이다. 지혜롭기 위해서라도 걷기를 지속한다. 걷는 것은 땅을 밟는 일이다. 땅을 밟는다는 것은 현실을 토대로 이상을 향해 걸어가는 일이다. 현실에 발 딛지 않으면 꿈을 향해 앞으로 나갈 수 없다. 걷는다는 건 꿈을 향한 시작이며 성찰이다. 걷기는 더 나은 삶을 만나기 위해 나가는 일이다. 혼자 가는 길보다 둘이 걷는 일이 아름다웠기에 오늘도 분주한 삶에 '일시멈춤' 버튼을 누른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오늘도 그와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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