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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옥 Aug 24. 2021

나는 감정형이에요

『사람의 성격을 읽는 법』

감정형을 상대할 때는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라. 친절하고 사려 깊은 자세를 유지하라.

『사람의 성격을 읽는 법』

 

 





 

토요일 아침 서둘러 구름이 잔뜩 내려앉은 산 입구에 들어선다. 연일 비가 와서 땅이 미끄러웠지만 등산에 대한 애정을 버릴 수가 없었기에 나선 길이다. 구름에 갇힌 풍경을 맛본 사람은 안다. 안개에 휩싸인 산 풍경의 신비로운 매혹을 말이다. 산을 오를수록 안개가 깊어지고 습기를 머금은 산 내음이 짙어진다. 어제 하루 종일 내린 비로 노각나무에서 떨어진 하얀 노각나무 꽃이 지천이다. 걸어가는 길이 꽃길이다. 앞서가는 그의 인생이 꽃길이길 잠시 기도했다.



습기가 많은 산을 앞서 걸어가던 그가 길이 미끄러우니 "단디 보고 걸어라." 당부한다. 산 풍경에 빠져 그의 걱정은 귓등으로 흘러 보냈다. 썸 타던 그와 처음 밀당하던 순간처럼 보일 듯 보여주지 않는 풍경이 신비롭기 그지없다. '이렇게 근사한 풍경을 제대로 음미하면서 가야지.' 라며 생각하던 차에 발을 잘못 밟으면서 몸이 옆으로 굴렀다.



꽈당! 스틱이 지탱했던 곳이 미끄럽고 가파른 바위였다. 스틱이 미끄러지면서 바위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정신줄을 잠시 놓을 정도로 아찔한 넘어짐이다. 넘어지는 순간 크게 다치겠구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넘어진 채로 일어날 수가 없다. 그가 놀라 나를 일으켰고 그때부터 그의 잔소리가 쏟아졌다. "미끄러운 바위를 스틱으로 짚으면 어떡하냐? 물먹은 바위를 짚지 말고 땅을 짚어야지." 두 동강이가 난 스틱을 든 남편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길이 미끄러운 걸 뻔히 알면서 정신 차리고 걸었어야지." '나는 지금 이렇게 아픈데 저 사람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넘어지면서 잠시 멍했던 정신이 돌아오자 슬슬 화가 났다. 어디를 다쳤는지? 아프지는 않은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그는.



"아니, 당신은 지금 아파하는 내가 안 보여? 어디 다쳤는지, 아프지는 않는지를 먼저 물어야지. 넘어진 원인을 꼭 지금 따져야 해?" 속상함을 속사포로 쏟아냈음에도 그는 여전히 "그러니까 조심했어야지"만 되풀이한다. 마치 고장 난 기계처럼. 결국 입을 닫았다. 묵묵히 걷기만 하자 앞서가는 그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지 조용하다.



마음이 힘든 산행인지 오늘따라 쉽게 지친다. 남편은 너른 바위에 방석을 깔아주며 안기를 권하며 가방에서 빵과 커피를 꺼내 전한다. 섭섭함이 사라지지 않아 고개를 저었다. 다시 한번 권하는 그를 쳐다보며 따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날 걱정하는 게 맞아? 아니 사람이 다쳤는데 어떻게 타박만 할 수 있어? 아프지 않냐고 물어야 정상 아니야?" 그는 나를 빤히 보더니 "이 바보야. 네가 다쳐 속상하니까 그랬지. 내 속을 그렇게 모르냐?" 그의 대답 '속상하니까 그랬지'라는 말에 반박할 말이 나오지 않는다. 거짓말처럼 원망이 사라진다. 표현 방법이 다를 뿐임을 잠시 잊었다. 눈 녹듯이 화가 풀어지자 앞으로는 사실보다는 감정을 먼저 다독여 달라 부탁한다. 나는 감정 치유가 먼저인 감정형 임을 잊지 말라는 당부도 했다.



집에 들어와 딸을 보자 다친 팔을 보여 주며 "딸, 엄마 산에서 넘어졌어." 딸은 말이 끝나자마자 "어떡해 많이 아팠겠네. 조심하지 엄마."라며 다친 팔을 먼저 살핀다. 이 모습을 보고 웃고 있던 남편에게 한 마디 했다. "사랑 표현은 이렇게 하는 거야. 상대방 마음을 먼저 헤아려야 한다고. 딸한테 배우셔." 남편은 여전히 억울한 표정이었지만 우린 아랑곳하지 않고 놀리기에 여념이 없다. 쿵작이 맞은 모녀를 쳐다보던 남편이 기어이 한 마디 한다.

 


"딸, 아빠 낼부터 엄마 때문에 돈 열심히 벌어야 한다. 스틱 사야지, 엄마 여름 등산복도 사줘야지. 아빠 불쌍하지 않냐?"




구름 너머 더 많은 사랑이 있다는 걸 잊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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