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옥 Sep 14. 2021

상대방 시선으로 세상을 보세요

『친밀함』


단 한 번이라도 상대방의 시각에서 인생을 바라보면, 우리들은 그 사람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찌하면 이를 이루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인 알게 될 것이다. 

『친밀함』







"구피가 또 죽었어."

어항 물을 갈아주던 그가 안타깝게 뱉어낸 소리다.

"왜? 또, 말도 안 돼, 벌써 몇 번째야?"

비 맞은 중처럼 구시렁거리며 그가 있는 목욕탕으로 향했다. 무슨 이유인지 최근 연이어 구피가 죽어나갔다.



"알 수 없는 일이야. 이렇게 정성스럽게 키우는데 왜 죽는 거지?"






구피를 분양받은 후 처음 구피가 죽었을 때 충격은 꽤 컸다. 구피가 어항에서 탈출하면서 벌어진 죽음이다. 사체를 휴지에 싸서 묻어 주고 나서도 마음이 한동안 아팠다. 처음 몇 달 동안 구피는 잊을만하면 죽어나갔다. 죽음은 적응되지 않는 감정이라 구피가 죽어갈 때마다 가슴이 싸하게 쓰라렸다. 구피가 이렇게 한 마리씩 죽게 된다면 그래서 한 마리도 남지 않는다면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말아야지 결심했다. 인간의 수명보다 짧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건 예정된 슬픔을 들인다는 의미니 말이다. 죽음엔 순서가 없다고 쳐도 말이다. 



처음 구피를 분양받아 오면서 느꼈던 작은 설렘 대신 남편이 오히려 구피를 살피는데 정성이었다. 물갈이를 매번 진행한 것도 남편이었다. 남편이 바빠 물을 갈아주지 못한 날 마지못해 구피 물을 갈아주면서 가끔은 내가 구피를 사랑하는 건 맞은가 싶을 때도 있었다. 이에 반해 남편은 시간 날 때마다 어항을 서성이며 관찰하다 조금만 물이 더러워지면 물을 갈아주었다. 물을 갈아준 후 깨끗해진 물속에서 유영하는 구피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그는 사료를 더 넣어주곤 했다. 그를 말렸지만 바닥에 떨어진 먹이가 없어 구피가 배고플 거라는 남편을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남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으니까.



더 큰 문제는 그가 아니고 나였다. 최근 사료 전용 숟가락을 분실 후 먹이 양에 대해 감을 잡지 못한 상태였다. 바뀐 숟가락을 사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료 양이 늘었다. 양이 늘어난 건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구피의 활발한 모습도 한몫했다. 물 위에 폭죽처럼 흩어지는 먹이를 보고 마치 단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달려드는 구피를 보고 있음 배가 많이 고팠구나 싶어 자연스럽게 먹이를 더 넣어주곤 했다. 



정성을 쏟는 거와 달리 최근 지속적으로 구피가 죽어나갔다. 구피 죽음이 잦아지자 네이버를 이용해 원인을 검색했다. 죽는 이유를 찾아보니 지나친 물갈이와 많이 넣어준 먹이가 원인이었다. 부지런히 어항 물을 갈아주고 늘어난 개체수만큼 먹이가 부족할 것 같아 기존보다 많은 먹이를 주었는데 그게 독이 되다니 의아했다. 



상대를 사랑한다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파악 후 불편한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게 사랑이다. 구피도 마찬가지다. 구피를 데려왔다면 먹이 주는 방법, 환수 방법, 수질 환경, 수온을 맞추는 일을 제대로 공부했어야 했다. 키우고 싶다는 의지만으로 분양받고 주먹구구로 키운 건 생명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틀린 방식임에도 잘못되었다 생각하지 않은 점도 문제였다. 인간의 입장으로 구피를 키웠고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쏟아부었던 애정과 무지가 독이 되었다.



더 늦기 전에 원인을 인식했다는 점이 다행이다 싶지만 삶에서도 이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상대를 위한다고 베풀었던 행위가 상대에게 상처를 주었을지 모르고, 상처 주면서도 꾸역꾸역 사랑이라고 우겼는지는 더더욱 모를 일이다.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모를 일이 참 많다.


매거진의 이전글 안전지대 탈출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