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우린 산으로 떠난다. 일주일 동안 형편없이 가라앉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선 산이 제격이다. 산으로 떠나야만 살 수 있음을 안다. 서둘렀다.
드디어 산이다. 아니, 기어이 산이다.
주차장엔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떨어져 바닥이 온통 노랗다. 아스팔트를 노랗게 물들인 은행나무를 보자 덜컹거리던 마음이 조용해졌다. 쉼 없이 부딪치던 감정이다. 그토록 말을 듣지 않던 감정이 순한 양이 되었다. 이제, 됐다. 산에 다 왔다는 표시이니 말이다.
산을 오를수록 가을산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아침햇살로 가득한 산이 햇빛에 반짝거렸다. 붉디붉은 단풍이 차르르 바람에 흩날릴 때면 덜컥 숨이 막히기도 했다. 눈부시게 다채로운 단풍이 발길을 붙잡아 도저히 속도가 나지 않는다. 아름다움에 탄복해 한참을 머물렀다.(덕분에 평소보다 하산이 한 시간이나 지체되었다.)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붉은 단풍을 보면서 화장기 없는 얼굴에 입술연지만 붉게 바른 젊은 처자가 떠올랐다. 붉은 입술 립스틱만으로도 대단히 유혹적이었던 그녀를.
가을산의 11월은 절정으로 뜨겁다. 산을 오르다 눈앞이 환해 고개 돌리면 여지없이 붉은 단풍이 우릴 불러 세웠다. "제발, 나 좀 봐 달라"는 앙탈에 도저히 못 본 척 지나칠 수 없다. 미치도록 예쁘다며 몇 번이나 그에게 털어놓았다. 마치 고백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태양도 저토록 붉지 않겠다며 저건 뜨거운 핏빛일 거라며 그에게 돌아서며 말했다. 그도 빙긋 웃으며 나를 안았다.
터질 듯 붉은 옷을 차려입은 나무는 생의 마지막을 준비한 거라며, 나도 세상 떠날 때 가장 근사한 옷을 입혀 달라 그에게 말했다. 그는 쓸데없는 소릴 한다며 화를 내며 앞서 걸었다. 떠남을 알며 온몸을 불살라 마지막 잔치를 준비한 단풍나무를 보며 생각했다. 떠날 때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초라한 모습보다는 마지막 남은 생명을 모두 불태워 끝내주게 아름다운 모습이고 싶다. 가을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