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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옥 Oct 27. 2021

중독된 등산,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천관산을 다녀와서





"가을 하면 억새지!"



슬쩍 그에게 말을 꺼냈다. 억새를 보고 싶다는 말과 함께 억새가 장관이었던 천성산 이야기를 들먹였다. 검색해 보던 그는 천성산은 지뢰제거로 인해 산행이 금지되었다는 아쉬움을 전했다. 다시 억새를 보기 위해 고른 산이 천관산이다. 천관산을 떠올리자 정상 가득 펼쳐진 억새밭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지난주 떠났던 재약산에서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억새를 보았음에도 여전히 가을 갈증은 가시지 않은 상태다.

 




아침 일찍 서둘렀지만 3시간 30분을 달려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 10시다. 주차장은 우리보다 먼저 온 차량으로 이미 만원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천관산을 오르기 위해 왔단 말인가?' 싶어 순간, 움찔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한동안 사람 많은 곳을 피해 다녔던 우리다. 매주 동네산만 올랐던 우리가 가을 억새 유혹에 넘어간 게 잘한 일인가 싶을 정도로 많은 인파다. 어쩔 수 없으니 마스크를 착용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한 대로 산을 타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과 최대한 간격을 두면서 천관산을 오르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은 거리두기다.


 



최대한 거리두기를 하면서 천관산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천관산은 바위가 아름다운 산이다. 각양각색 다양한 바위가 능선에 우뚝 솟아 시선을 끄는데 그게 일반 바위와는 확연히 다르다. 세월의 힘 때문인지, 아니면 바위 특성이 다른 건지 바위 생김새가 유독 부드럽다. 마치 누군가 잘 다듬어 놓은 듯 착각이 일 정도다. 바위에 흠뻑 빠지기도 했지만 억새를 기대하면서 열월정, 장천재를 거처 금강굴, 환희대에 올랐다. 환희대에는 이미 사람들이 많아 딱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하트 바위 뒤편으로 펼쳐진 풍경을 찍고 환희대를 거쳐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환희대에서 바라본 정상에 억새가 가득 펼쳐졌다. 10년 전의 기억보다는 장엄하지 않아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에 걷는 걸 잊곤 했다. 조금씩 늘어난 억새만큼 산 곳곳에 가을 등반객으로 북적거렸다. 그들을 피해 서둘러 연대봉으로 향했다.


 



정상 또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2차 백신을 다 맞은 상태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조심했던 마음이 느슨해진 건 아닌가 싶어 불안했다. 하긴 이제는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위드 코로나 시대가 왔구나 싶고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배길 수 없는 가을이긴 다. 우리도 2년 동안 참고 참았던 타 지역 가을 산행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벗어나고 싶어 억새밭을 만끽하지 못하고 빠져나왔다. '어쩌다가 사람을 피해야 하나?' 씁쓸한 생각을 품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뱃속에서 연신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점심 먹을 장소에는 여지없이 가을 등산객이 많아 2시가 넘도록 점심을 먹지 못한 상태다. 점심을 해결하기 위한 장소를 만나길 바라며 발을 옮겼다.


 



앞서가던 그가 발길을 멈췄다. "이것 봐." 그가 가리킨 쪽을 살피니 강렬한 보라색이 눈에 들어왔다. 보라색 용담의 유혹적인 자태에 반해 주저앉아 한참을 머물렀다. 몇 장의 사진을 찍은 후 고개를 드니 용담 뒤쪽으로 넓은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졸참나무가 적당한 그늘을 만들어줘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 딱 좋은 곳이다. 용담이 우리 점심 장소를 마련해주었다며 너스레를 떨며 자리에 앉았다. 꽃도 보고 덤으로 정상 너머 가득 펼쳐진 황금빛 들판을 보면서 점심을 해결했다. 식후 따뜻한 커피로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는 시간이다. 가을로 치달아 가는 황금빛 들판을 보며 가을 속에 앉아있으니 다시 가슴이 떨려왔다.



용담



"인생이 오늘 하루 같으면 좋겠다"




 각자의 시간에서 치열하게 살아낸 후 갖게 된 포만감 가득한 휴일이니 더할 나위 없는 하루다.



 "산이 없었으면 지난한 인생을 어찌 견뎠을까?"



등산 덕분에 가능한 행복이고 등산 덕분에 또 하나의 추억을 쌓았다. 산을 타면서 배우는 게 많다. 힘든 오르막을 걸으면서 인생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생각하고, 비 오는 산을 타면서 힘든 일도 즐기면 수월하다는 점도 깨달았다. 산을 더 잘 타기 위해서라도 운동에 전념해야 암을 알았다.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 삶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주었다. 건강한 육체가 다시 건강한 정신을 불러왔다. 선순환이다. 등산 덕분에 우리 부부도 함께 걸으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 세월이 흐를수록 돈독해졌다. 등산의 파급 효과는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지만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문제다.



그러니 함께 걷자. 하루라도 더 늦기 전에!



중독된 등산,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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