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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옥 Dec 07. 2021

기어이 산으로 떠났다






일주일 전 등산하다 발목을 다친 탓에 조심하면서 일주일을 살았다. 직장에선 운동화로 대신했고 집에서 퇴근 후 매일 하던 걷기 운동을 끊었다. 저녁 루틴이 끊기자 삶이 무기력해졌다. 시간은 지루하게 흘러 다시 일요일이 되었다. 토요일 밤까지만 해도 발목 상태가 좋지 않아 집에서 쉬어야겠다는 생각과 달리 일요일 아침이 되자 몸이 안달이다. 등산이 가능하겠느냐는 남편의 말에 일초의 망설임 없이 함께 가겠다 답했다.


 

이번 주가 가을산의 마지막 잔치일 거라는 아쉬움이 무리수를 두게 했다. 주차장에 도착하자 등산객 차들이 제법 많다. 등산객이 오늘따라 많겠다며 그에게 묻자 이들도 우리와 같이 가을을 보려 오지 않았겠냐고 말했다. 하긴 발목이 시원찮은 나도 가을에 못 이겨 떠나왔는데 산을 좋아하는 이들은 오죽할까 싶었다.



 


산에 들어서자 훅 끼쳐오는 산 내음에 ‘좋다’가 절로 터져 나왔다. 산을 오를수록 바닥에 떨어진 낙엽이 수북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낙엽 밟는 소리가 조용한 산에 울려 퍼졌다. 푸드덕 머리 위로 딱새가 날아가는 소리, 바람에 후드득 낙엽 떨어지는 소리, 우리 부부의 발자국 소리가 조용한 가을산을 깨웠다. 바람이 불 때마다 툭툭 비처럼 낙엽이 떨어졌다. 영화처럼 아름다운 장면이다. 찰나의 순간을 붙잡고 싶어 카메라 스위치를 눌렀지만 아쉽게 맘에 드는 장면을 찍지 못했다. 소란스럽지 않고 아쉽지 않도록 계절을 떠나보내는 가을 풍경을 담고 싶었지만 순간을 놓쳤다. 삶도 이렇게 아쉽게 놓치는 장면이 있다. 붙잡고 싶은 순간을 추억하며 사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불현듯 말이다.



정상에 오를수록 발길에 닿는 낙엽이 두꺼워졌다. 푹신한 낙엽을 밟는 재미는 눈 쌓인 산길을 걷는 재미와 흡사해 아이처럼 두꺼운 낙엽 위를 통통 소리내어 걸었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떨어진 낙엽 덕분에 헐거워진 나무 사이로 햇살이 산 가득히 내려앉았다. 산 깊숙이 내려앉은 햇살로 산 곳곳이 따뜻해졌다. 비움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이다.



 


발목을 다시 다치지 않도록 평소보다 천천히 신중하게 발을 옮겼고 중간중간 쉬는 시간 시간도 자주 가졌다. 정상에 도착하자 등산화를 벗고 발목을 편하게 한 후 때죽나무 밑에 앉았다. 걸음을 멈추자 산새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느껴졌다. 툭툭 딱딱 나무 쪼는 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린다. 딱따구리인가 싶어 고개 들어보니 곤줄박이가 지천이다. 곤줄박이는 딱따구리처럼 나무를 치면서 먹이를 찾는 습성이 있다. 작고 귀여운 곤줄박이들이 나무 위를 분주히 날아다닌다. 사람이 있으면 피할 법도 한데 우리와 상관없이 새의 움직임은 한없이 자유롭다. 나뭇가지 위에 앉아있던 곤줄박이가 빠르게 밑으로 내려오더니 먹이를 낚아채고는 다시 나뭇가지 위에 앉았다. 부리에 커다란 벌레를 문 걸 보니 먹이 사냥에 성공한 모양이다. 사냥에 성공한 곤줄박이에게 박수를 보냈다. 새들의 움직임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다니 마치 연극 공연을 보기 위해 가장 좋은 좌석에 앉은 관객 마냥 신났고 덕분에 흥미로웠다. 한참을 곤줄박이 공연에 빠져있었다.

 

 



6시간 산행에 무리수를 두어 올랐지만 내려오면서 잘했다는 마음이 강했다. 산이 있어 지루한 코로나 시절을 잘 보냈다. 가라산 덕분에 삶의 버거움을 내려놓고 자연 속에 푹 빠질 수 있었다. 산을 오르고 나면 새롭게 시작할 일주일 에너지가 충전되었다. 언제든 찾아가도 편안함을 주는 친정 같은 가라산으로 가을을 온전히 즐겼다. 산이 있어 2년을 잘 견뎌냈다. 감사할 일이다.



무리해서 등산한 덕분에 몸은 다시 예전의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기분 탓인지 다행히 발목 상태는 생각보다 나쁘지 다. 산을 다녀오니 제대로 숨이 쉬어진다. 복잡했던 생각도 정리가 되어 마음이 한없이 평온해졌다.

 


가을산을 떠나오면서 생각했다.

'기어이 나는 산으로 떠나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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