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옥 Nov 18. 2021

나를 살린 책

『나를 살리는 철학』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마세요. 아예 안 하는 게 가장 좋아요.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좋은 일을 하면 기뻐하면 되고, 그러지 않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 돼요."
『나를 살리는 철학』









소용돌이친 감정이 얌전해진 건 『나를 살리는 철학』을 읽고 나서다. 믿었던 사람에게 발등을 찍히고 나서야 '아차'했다. 머릿속이 복잡했고 마음은 시끄러웠다.



일이 터지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를 생각하는 마음이 혼자만의 망상이었음을 뒤늦게 알았다. 그를 본성적인 모습이 아닌 이상적인 모습으로 바라본 건 나였다. 보통 사람인 그를 그보다 더 높은 곳에 올려두었다. 어쩌면 나는 그를 믿었던 게 아니라 내가 만든 모습을 신뢰했는지 모른다.



실망스러운 모습을 겪은 후 그를 믿으면 안 되겠다 생각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가 실망시킬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마음이 아팠고 혼란스러웠다. 마음이 깨지고 나서야 다시 그가 보였다. 인간은 '모두 선하지도 현명하지도 않다. 다들 약점과 흠결을 가지고 있고, 어느 정도는 자기중심적으로 산다. 이건 우리가 바꿀 수 없다. 진리처럼 받아들여야 한다'며 말하는 저자의 말에 수긍했다. 



문장을 접하고 '난 왜 그가 약점 없는 사람일 거라 생각했던 건가? 그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걸 받아내지 못한 걸까? 이상이 허물어졌다고 실망하고 아파했던 걸까? 나 또한 허점 투성이지 않는가?' 성찰이 일었다. '사람의 본성이 원래 그런 것'이라 말하는 작가의 말처럼 '그게 원래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니 받아들인다. 실망 또한 내가 만든 기대치에 불과한 것이다. 그는 애초에 그런 사람이었는데 내가 만든 틀로 그를 높게 봤으니 따지고 보면 기대치를 높인 내 잘못이다. 그는 변하지 않았는데 내가 만든 감정으로 그에게 실망을 느꼈을 뿐이다. 



기대를 버리자 마음이 더 이상 시끄럽지 않았다. 어제와 같은 모습을 보여도 원래 인간의 본성이니 동요하지 않는다. 신기한 거는 똑같은 행동인데도 마음을 접자 평온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인간 모두는 결점을 가진 존재라는 걸 이해하고 끈기 있게 연습하라'는 말처럼 또 다른 기대치가 생길 때면 고개를 젓는다. "다른 사람이 신뢰할 수 없고, 부주의하고, 자기중심적이고 배려심이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면 그에 반하는 기대를 하면 안 된다(P.113)"는 말처럼 그에게 걸었던 기대를 버렸다. 그리곤 속으로 되뇌었다. "오늘도 본성에 충실한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러니 기대 같은 건 쓰레기통에 버리자."



책을 덮자 마음이 조용해졌다. 실체 없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다짐도 했다. 마음 호수가 조용하니 살 것 같다. 이제 됐다. 책이 나를 살렸다.








"현자는 부족함에 분노하지 않는다. 왜인가? 태어날 때부터 현자인 사람은 없고 만들어져 갈 뿐임을 알기 때문이다. 현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소수만이 지혜로워진다는 사실을 안다. 그는 인생의 한계를 정확히 알기 때문이다. 분별 있는 자는 본성에 화내지 않는다.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고, 이해되지 않는 것에 관대하고, 실수에 너그럽고, 한결 편해지는 길로 나아간다. 현자는 집에서 매일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분명 꽤 많은 술주정뱅이와 본능에 충실한 사람,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욕심으로 가득 찬 사람, 좌절된 야망으로 분노를 억압하고 있는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러고는 의사가 환자를 보듯 태연하고 친절한 눈으로 세상을 본다."

-세네카
매거진의 이전글 환희 그리고 새로운 다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