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생각을 묵묵히 끝까지 밀고 가보는 것. 자신의 사고실험을 자기멸망을 초래할 위험이 있는 곳까지 밀고 가보는 것. 자유정신의 소유자는 한마디로 자신을 실험하는 사람이다. 이 시도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놀이 가운데 가장 위험한 놀이일지라도" 말이다. 니체는 '미래의 철학자'의 또 다른 이름이 '시도하는 자'라고 했다. '미래의 철학자', '도래하는 철학자'란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기보다 '미래를 열어가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이너마이트 니체』
『다이너마이트 니체』 저자 강연회를 김해에서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주저없이 1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했다.
작가와 인연이 된 건 『묵묵』 강연을 통해서다. 강연을 들으면서 마음속 밑바닥에서 뭉클하게 올라오는 감동으로 가슴이 따뜻했던 시간이었다. 그 후 니체를 읽기 위해 저자의 책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언더그라운드 니체』를 읽으며 책 속에서 작가를 다시 만났다. 작가 덕분에 어렵게만 느껴졌던 니체의 핵심 사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 후 작가와의 인연은 다시 『자본론』 (1권부터 12권) 줌 강연으로 이어졌다.
코로나19 덕분에 줌 강연으로 한 달에 2번 저자의 강연을 들으며 마르크스『자본론』을 알아가는 중이다. 혼자서는 감히 읽어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자본론』이다. 함께 공부하는 동학의 권유로 고병권 작가의 강연 소식에 기꺼이 응한 건 작가의 품성과 진정성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 작가의 삶을 다 알지 못하지만 그는 지식을 삶에서 실천하는 작가임을 알기에 먼 거리 강연이었지만 기꺼이 강연을 마다하지 않았다.
강연 가기 전 즐거운 마음으로『다이너마이트 니체』를 급하게 주문했고 책이 오는 동안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을 정도로 열심을 내었다. 책을 읽는 동안 책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고 있는가?" 책을 덮고 가을 하늘을 보면서 다시 물었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섣불리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잘 살고 싶은 열망만 가득한 사람이지 인식대로 살아내지 못한 사람이다. 다시 책 속으로 고개를 파묻자 작가가 다시 당부한다. "나는 나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손님을 후대하듯' 자기를 다 써버려서는 안 된다 (중략) 나를 극복한 곳이 나를 드러내는 곳이다."
안타깝게도 시간이 부족해 완독 하지 못한 채 저자 강연회에 도착했다. 강연 중 홀로 고심했던 제대로 사는 법을 저자가 말한다. "삶의 철학자는 가르칠 수가 없다. 특별한 메뉴가 없다. 그러니 경험으로 알아야 한다. 예수처럼 사는 사람은 없다. 그걸 시도하고 신중하게 부드럽게 조금씩 늘려가다 보면 때가 온다. 삶을 구석구석 두려워하지 않고 살다 보면 자신만의 눈길이 생긴다. 사물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발걸음이 생기는데 그게 철학자다." "자신만의 삶을 살다 보면 언젠가 때가 온다. 두려워하지 않고 살다 보면 언젠가 '출렁'할 때가 온다. 유혹할 때다. 그 출렁임과 유혹이 우리를 이끈다. 그때 한 번쯤은 달리는 말을 타다 고삐를 놓아야 한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 과감하게 액셀을 밟아야 한다. 그게 바로 위버멘쉬다. 물론 위험한 길이다. 그러기에 용기가 필요하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라는 작가의 말은 강한 울림이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감동이 일었고 막막했던 생각에 길이 보였다. 두려워하지 말고 액셀을 밟아야 하는 시기, 그 시기가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의식이 깊어져 행동으로 옮겨야 할 시점에 용기가 부족해 자꾸 머뭇거렸다. 생각만큼 행동이 뒤따르지 못했다. 과감하게 달릴 수가 없었다. 무서웠다. 고삐를 놓았다가는 분명 달리는 말에서 떨어져 버릴까 두려웠다. 강연이 끝난 후 어쩌면 넘어지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너무 얕잡아 본 건 아닌지도 생각했다. 도망가지 말고 과감하게 세웠던 목표를 향해 나를 던지는 일이 먼저임을 알았으니 자신만의 삶, 즉 주인의 삶을 살기 위한 첫걸음을 떼 보기로 한다.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는 노예의 삶이 아닌 넘어지고 다쳐도 괜찮으니 주인의 삶으로 발을 내딛어야겠다. 아주 조금씩 부드럽게 그러나 악독하게 치열하게 나를 세워야 할 시점이다. 제발, 멈추지 말길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서서히,
신중하게,
부드럽게,
하지만 가차 없이 - <서광>
앞으로 나갈 작정이다
더 강력하게,
더 악독하게,
더 깊이 있게,
하지만 더 아름답게 - <선악의 저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