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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옥 Dec 16. 2021

아름다운 풍화작용

가슴속에 1만 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넘쳐 그림과 글씨가 된다.

추사 김정희







'매일일기'를 시작하고 나서 하루 한 편 글을 썼다. 12시를 넘기지 않기 위해 용을 썼고, 자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 글을 올린 후 시체처럼 쓰러진 날도 있다. 글감이 없을 때는 책이나 신문 속 구절을 관심 있게 보기도 했다. 글감을 찾아낼 때 기쁨은 숨은 보물 찾기처럼 기뻤다. 하루를 기록으로 남기고 나면 일단 썼다는 성취에 안도감을 얻었다. 질보다 양에 치중한 시간이었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어떻게든 쓰고 나면 생각지 못한 글을 만나기도 했다. 타닥탁탁 자판을 두드려 파종되는 글자를 바라보면서 농부가 되었다. 작물이 잘 자라도록 잡초를 뽑아주듯 퇴고하면서 오탈자를 골라냈다. 소재 고갈 가뭄이 올 때면 책상에 놓인 책을 들춰보기도 했다. 밑줄 그어놓은 문장과 메모해둔 글을 읽다 보면 잊었던 내용이 되살아나 새로운 글감이 떠올랐다. 독서가 단비처럼 글감 사냥에 도움이 되었다. 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라듯이 글쓰기를 위해 글감을 파종하기 위해 부지런을 떨었다. 잘 자란 작물이 주인의 식탁을 풍성하게 하듯이 좋은 글은 짜릿함으로 즐거움을 준다.



글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이 들끓은 시간이었다. 욕망이 커질수록 글이 써지지 않았다. 쓴 글을 쳐다보면 문장은 허술했고 글의 구조가 엉망이었다. 한숨부터 나왔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니 자연히 글과 멀어졌다. 그럼에도 글쓰기 열망은 미뤄둔 숙제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쓰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불편했다. 미루고 미루다 글 쓰고 나면 마음이 안정되었다. 어떻게든 써내면 할 일을 해낸 기분에 개운함은 덤이었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일단 쓰기부터 하라는 작가들의 말은 정답이었음을 쓰고 나서 알았다.  



쓰기가 습관이 되기 위해 100일 쓰기를 동학들과 함께 했다. 글 쓰는 습관을 만들기 위한 100일 일기라는 강제 장치였다. 혼자라면 쉽게 지칠 일을 동학들과 일단쓰기를 결성한 후 매일 자정이 넘기 전 글을 올렸다. 함께했기에 100일 쓰기가 가능했다. 100일이 지난 지금은 매일 쓰기 루틴이 만들어졌다. 이제는 아침이 되면 습관으로 노트북을 연다. 글쓰기는 성실과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 함을 실감한 시간이다. 지속의 힘이 삶에 풍화작용을 일으켜 새로운 무늬를 만들었다.



추사 김정희는 가슴속에 1만여 권의 책이 있어야 그림이 되고 글씨가 된다고 했다. 그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인 것은 1만여 권을 읽기 위한 노력 때문이다. 1만여 권 책을 읽기 위해서는 독서에 투자한 시간이 필요하다. 독서 시간을 애써 내지 않았다면 일 만여 권의 독서는 없다. 독서가 일상화로 묻어났기에 가능한 권수다. 만여 권 책은 자연스럽게 풍화작용을 일으켜 멋진 그림과 글이 나오는 보물창고가 된다. 글도 마찬가지다. 꾸준히 일상을 기록하다 보면 생각과 기록이 쌓여 자신만의 글 창고가 가득해질 것이다.



독서가 지혜의 풍화작용으로 더 나은 인격을 만들 듯 물과 바람의 풍화작용으로 계곡이 만들어진다. 물길이 흐르면서 홈이 파이고 넓어지면서 계곡이 깊어진다. 물과 바람의 지속적인 풍화작용 때문이다. 글쓰기도 계곡이 만들어지는 풍화작용과 닮았다. 매일 쓰기를 멈추지 않고 꾸준히 갈고닦는다면 만족스러운 글이 나올 것이다.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힘처럼 '매일일기'는 글쓰기의 풍화작용이다. 일단 쓰기부터 꾸준히 진행해 맘에 드는 글을 건져보고 싶다.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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