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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옥 Jan 09. 2022

필사 중입니다만

『시로 납치하다』


<어떤 사람>

이상한 일은 어떤 사람을 만나면
몸시 피곤해진다는 것,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음속 생각이 모두 움츠려들어
마른 잎처럼 바삭거린다는 것.

그러나 더 이상한 일은
또 다른 사람을 만나면
마음속 생각이 갑자기 환해지면서
반딧불이처럼 빛나게 된다는 것

-레이첼 리먼 피드-

『시로 납치하다』

『시로 납치하다』


『시로 납치하다』




새로운 미션이 시작되었다. 매일 A4용지 한 장 분량의 필사를 하는 중이다. 좋은 글을 가슴에 담기 위한 작업이고, 글씨를 잘 쓰고 싶은 욕망이 함께한 일이다. 필사하겠다고 다짐한 건 언젠가 이뤄질 꿈인 동네 책방을 위한 준비 작업이기도 하다. 퇴임 후 섬마을에 작은 책방을 열고 싶다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책을 고르기 힘든 독자들에게 책 속의 문장을 남겨 놓는다면 책을 선택할 때 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왕이면 읽기 편한 예쁜 글씨체라면 좋겠기에 필체를 다듬는 중이다. 덕분에



필사가



명상이 되었다. 맘에 와닿는 문장을 필사하다 보면 마음이 고요해졌다. 삐죽삐죽 튀어나와 날카로웠던 감정이 시간이 흐를수록 부드러워졌고, 사각사각 만년필 굴러가는 소리와 노트의 빈 여백이 채워지면 몰입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몰입 후 찾아오는 휴식은 꽤나 달콤했다. 경험이 주는 특효약으로 마음이 시끄러울 때 펜을 든다.



멘토다. 필사는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해 멘토가 필요할 때도,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을 때도, 삶이 실망스러울 때도, 목표가 허물어질 때도, 근심이 찾아올 때도, 삶이 허망하다 느낄 때도, 인생의 쓴잔을 마셔야 할 때도, 자존감이 허물어져 턱없이 존재가 작아질 때도, 슬픔이 찾아올 때도, 용기가 필요할 때도, 설움을 삼켜야 할 때도 요긴했다.



위로다. 힘든 마음을 덜어내기 위해 적다 보면 책 속의 작가가 가만히 어깨를 토닥인다. '괜찮다. 이만해도 된다. 누구나 한 번쯤 겪은 아픔이다. 이 또한 지나간다. 감정은 흘러가는 물과 같다. 지금 있는 일은 다 좋은 일이다. 아픔이 없는 삶은 없다. 지금의 감정을 알아채고, 멈추고, 마음을 바꿔라. 부정적 성향을 멈춰라. 두려움을 인정해라. 묵묵히 견디는 일도 방법이다.' 작가들이 건네는 다양한 위로로 마음이 다시 따뜻해지길 몇 번이다. 퇴근 후 지친 마음으로 하루 일과를 마치기 전 써 내려간 필사는 숙면을 위한 필수가 되었다. 미션 덕택에 필사를 경험한 두 달이었다. 덕분에 일상이 예술이 되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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