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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비밀, 기밀자료, 회사원에게는 지켜야 할 보안이 참 많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보안팀이 따로 존재하고 데이터나 물리적 자료 또한 철저하게 관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사실 정말로 보안을 철통같이 지켜야 하는 것 외에는 불필요한 것이 또 보안이라는 것이다.
회사의 핵심 제품을 생산하는 R&D 기술이나 생산 노하우는 정말 상식적으로라도 지켜내야 하는 비밀이다.
때로는 그러한 제조업의 기술은 국가경쟁력과 안보와도 직결되곤 하니, 한 회사의 차원이 아니라 사명감을 갖고 외부 유출에 유의하면서 열심히 지켜야 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컴퓨터 전원을 끄고 가지 않은 것에 보안 경고! 스티커를 붙이고 가는 것이 보안일까?
닫은 줄 알았던 나의 개인 서랍을 시건 하지 않은 것에 또 스티커를 당당히 붙이고 가는 것은?
내가 쓰는 다이어리를 내 책상 책꽂이에 꽂아놓은 것도 보안 경고라니...!!
보안이 도를 넘어버렸을 때의 부작용을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많이 목격하게 되었다.
회사 앞에 가끔 진을 치고 시위를 하거나 혹은 지방 사업장에서부터 올라와서 확성기를 잡고 머리에 띠를 두르고 데모를 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당연히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이며, 의경 몇 명이 배치되기야 하지만 1970~80년대와 같은 투쟁이나 최루탄, 육탄전, 충돌 등은 정말 거의 없다.
회사 건물에는 보안회사나 알바생을 써서라도 전문 Security 요원이 교대하며 근무하고 있고, 그들은 그들의 일을, 그리고 회사 사무실 내부에서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위대 앞에 서서 인간 벽을 만드는 데에 자주 동원됐었다.
겉치레용 캠페인 문구를 적은 띠를 두르고, 시위대가 더는 전진하지 못하도록 그 공간을 차지하고 서 있는 역할이었다. "이것을 왜 하고 있지? 이것을 왜 내가 하고 있지?" 의문이 1초도 끊기지 않고 때로는 땡볕 아래 때로는 엄동설한에, 때로는 자동차 매연을 배불리 마시며 서있었다. 불과 3~4년 전에는 심심치 않게 일어나던 일이다.
보안팀 차장의 말이 귀에서 떠나질 않는다.
"보안업체 요원들은 외부인들이라, 시위대를 막는 도중에 다치면 문제가 됩니다."
"그러니, 우리 임직원 여러분들이 앞에 서서 시위대를 막고, 보안 요원분들은 뒤에 서시지요"
.... 철저하게 우리들은 블록이나 도구, 소모품 정도로 취급받는 느낌이었다. 인격체 대우는 아니었다.
외부 인원이 다치면 문제가 되고, 내부 인원이 다치면 문제가 되지 않는가?
아니면 나는 실은 온몸이 비브라늄이나 아다만티움으로 이뤄진 슈퍼히어로였던가?
말 한마디에서도 사람의 속내와 무의식과 가치관이 묻어 나오는 것이다. 회사의 문화까지도 말이다.
물리적인 보안이야 그렇다고 치자,
사실 회사의 보안 프로그램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회사 메신저와 메일함만을 사용하게 한다고 해서 인트라넷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을 쓴다.
지메일은 막혀있는데, 네이버 메일이나 학교 다니던 시절 쓰던 대학교 웹메일은 잘만 접속된다.
중국 업무를 담당하시는 분이 위챗이 필요하다고 해서 열어달라고 요청하니, PC카톡, PC라인, 안 되는 메신저가 없다. 여전히 페이스북 메신저는 잘 된다. (이후에는 황급히 막아서 현재는 거의 안 된다.)
문서에 보안을 자동으로 걸어버리는 프로그램도 허술하다. 원래대로면 팀장이나 실장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 보안해제도 사원 1년 차만 지나면 어떻게 풀어서 반출하는지 꼼수 하나 둘쯤은 전부 익히고 있다.
이것은 보안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 부족과 컴퓨터 지식의 부족도 한몫한다.
자료 중에는 정말 유출되면 곤란할 수 있는 기밀자료도 있다. 물론 있다. 그것이 대기업이라고 해도, 집 앞 구멍가게라도 그런 자료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개인도 비밀이 있기 마련인데 사업체야 오죽하겠는가.
그래서 시키는 것이 하드카피, 제본 만들기이다.
그야말로 인간 출판사가 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수백, 수천 장을 프린트하고 그것을 나눠서 구멍을 뚫고 제본하고... 몇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그러나 이것은 보안 프로그램 기능에 있는 "특정인" 혹은 "특정 직급"만 읽을 수 있게 설정하는 방법을 몰라서 발생하는 것이다. 몇 번을 설명해도 '보안'을 앵무새처럼 되뇌며 제본을 지시하는 상사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사실 모니터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 역시 종이로 된 문서를 읽는 것이 익숙한 상사들의 성향도 크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 부분을 감안하고서라도 반쯤 열리고 반쯤 닫혀서 융통성이 없는 보안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81일 뒤 나는 퇴사할 것이다.
보안은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더욱 중요한 키워드이다. 인정하며 나 또한 그 중요성에 깊이 공감한다.
블록체인 기술이 비트코인이라는 광풍에 묻혀 본질이 희석되었지만, 결국에는 차세대 보안기술이다. 그래서 코인 열풍이 식고 나서도 여전히 유망한 산업분야로 분류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안은 닫힐 때는 태산처럼 닫히고, 열릴 때는 아군과 우리 편을 영리하게 식별하여 업무에 지장이 가지 않도록 순조롭게 열려주어야 한다. 반쯤 열어놓고 반쯤 닫아놓고 들어올 수 있게 해 놓기도 하고 어중간하게 해 놓는 것은 보안이라고 할 수 없다.
오늘도 세절기 소리가 들린다. 썩 듣기 좋지는 않은 소리다.
종박의 퇴사까지 앞으로
D-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