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편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전환기'에 있었던 여러 경험들은 여전히 생생하게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2015년, 입사 극 초반에는 많은 것이 아직 규정에 남아있었다.
와이셔츠는 반드시 흰색! 하늘색이나 파란색 등 다른 색은 용납되지 않았다.
넥타이도 너무 튀어서는 안 됐으며 재킷은 물론 짙은 톤을 유지했어야 했다.
남자사원의 경우 머리를 튀게 염색하거나 파마하거나 하는 것도 눈칫밥의 대상이었다.
조금 지나자 여름에는 '노자켓 노타이'라는 관용스러운 것이 생겼다.
재킷과 타이 없이 출근했을 때의 시원함과 해방감은 생각보다 짜릿했다. 이렇게나 불편한 것을 어떻게 하고 다녔을까 싶을 정도로 홀가분하게 출근하여 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17년 즈음부터 당시 기준으론 과감하게 멋을 부리는 사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늘색은 물론 분홍색이나 노란색 와이셔츠를 시도하는 사원들도 있었으며, 그중에는 카라가 없는 셔츠인 '헨리넥'등을 시도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조금 짧은 양복바지에 알록달록한 줄무늬 양말이 일부러 꽤 보이게 해서 스타일링을 하는 친구도 있었고, 색다른 구두로 신발 쪽에 포인트를 주는 선후배들도 왕왕 있었다.
헤어스타일은 염색도 펌도 모두 각자의 개성과 취향에 맞게 널리 퍼졌다. 더는 '스포츠 컷'으로 가득한 깍두기 스타일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도대체 어떻게 과거에는 흰+검 조합의 장례식장 느낌으로 다녔을까? 백팩이나 크로스백만 메도 눈치를 주던 때가 불과 2년 전의 일이었는데 말이다.
2018년에는 당시로 치면 대격변이 있었다. "캐주얼 데이"가 공식화된 것이다.
매주 금요일에는 양복이 아닌 소위 말하는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고 출근해도 된다는 내용의 캠페인이었다.
비즈니스 캐주얼이란 굉장히 애매한 컨셉이다. '고개'가 신체 부위에서 어디냐 집어보라고 했을 때 솔직히 정확히 통일된 위치를 정할 수 없는 것처럼, '비즈니스 캐주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10명 모두 일치된 답변을 내놓을 수는 없다.
평소에 옷을 정말 사지 않는 패션 테러리스트 출신의 나조차도, 주말에 아웃렛에 들려 그럴싸한 비캐 세트를 조각조각 샀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것도 이제는 기억의 저편이다.
현재는 매일같이, 특별한 회의나 외부 미팅이 없으면 티셔츠를 입어도 좋고 반바지를 입어도 좋다. 처음에야 어색하고 서로 문화충격을 받았지만,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당일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입는다. 양복을 빡빡히 입던 시절에 도대체 어떻게 매일같이 그런 복장으로 출퇴근 및 업무를 보았을까 상상도 안 된다.
우리나라는 꽤 늦은 편이다. 경제규모와는 관계없이 사회의 트렌드와 문화를 담고 있는 것이 사무실에서의 복장이다. 여전히 몇몇 업종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칼정장을 입고 근무하며, 게임업계 같은 경우에는 이미 5~10년 전부터 굉장히 편한 복장으로 일했다고 한다.
80일 뒤 나는 퇴사할 것이다.
기분 나빴던 경험은 많다. 반바지를 처음 입었을 때, 비아냥 섞인 투로 '멋쟁이네'라고 굳이 코멘트를 남기고 가는 상사들이 많았다. 그러나 나도 아직은 사무실에서 스냅백을 쓰고 있는 후배를 보면 '저게 미쳤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결국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며 그것도 익숙해지고 난 뒤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 것 같다.
공장이나 지방사업장에서는 여전히 운동화를 신는 것조차 눈치를 준다고 한다. 심하게 눈치를 주는 경우에는 상사들의 단골 멘트인 "회사 참 좋아졌네~"가 소나기처럼 날아든다고 한다. 어디에나 꼰대는 있다.
퇴사를 하고 나서 내가 어떤 조직으로 들어갈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양복을 입을 때는 입어주고 복장을 풀어줄 때는 서로의 패션 세계에 괜한 참견 하지 않는 문화가 있는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