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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박 Aug 03. 2020

퇴사 D-79 : 되물어도 될까?

22.

지시사항을 한 번에 알아듣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시하는 사람이 정말 본인이 시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100% 알고 있지도 않을 때가 많고,

또한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긴장도 하고 또 잘못 알아들을 확률이 0%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커뮤니케이션은 매 순간이 기적이다. 모국어가 같은 화자끼리도 오해를 많이 하곤 한다.

다툼이나 갈등은 그런 사소한 언어적 오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친구나 동료와 대화가 잘 이어나간다면 그 자체로도 기뻐해도 좋다.


문제는 화자와 청자 둘 다에게 있다.

화자의 경우 본인이 설명한 내용이나 방식보다는 "뭐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먹어?" 하며 청자 탓을,

청자의 경우 귀담아 들었는지 여부나 이해력을 떠나 "뭐라는 거야, 알아먹게 말해야지"라며 화자 탓을 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나도 여러분도 살면서 한 번쯤은 생각하거나 입에 담아봤을 말들이다.


회사에서는 특히나 화자-청자 간의 갈등과 불균형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아예 동기끼리 얘기하는 것이 아니면 대화하는 사람 간의 계급 차이가 한 칸이든 열 칸이든 있기 마련이며, 보통 화자가 상사이고 청자가 부하직원일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지시하는 사람 입장에서야 사실 상세히 명료하게 알아듣기 쉽게 목표치와 기대치를 제시해주는 것은 선택사항이다. 필수가 아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부하가 이쁨 받는 곳이 회사라는 곳이다.

따라서 보통의 경우 청자가 알아듣기에 친절한 방식으로 전달되어 오지 않는다.


청자의 경우 정말 찰떡같이 알아듣는 능력이 출중하거나 눈치가 굉장히 좋은 경우가 아니면 실은 불명확한 내용이 귀를 통해 뇌로 들어오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래서 이걸 어떡하라는 거지? 보고서를 쓰라는 건가? 아니면 협조를 구하라는 건가? 나에게 직접 시킨 일은 맞는 건가? 우리 팀 다른 분께도 가서 전달드려야 하나?" 추가 질문이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문다.


청자는 갈림길에 선다. 되물어야 하는가?

내가 못 알아들은 부분을 다시 이분에게 물어봐야 하는가?

"말귀를 못 알아먹네, 내가 그렇게 설명했는데"라는 반응이 두렵다. 이런 것 때문에 혹시 나의 이미지가 눈치 없고 이해력이 부족한 직원으로 박히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차라리 알아들은 척하고 나중에 다시 확인할까? 그렇다면 시간이 너무 지날 텐데, 그러는 동안에도 0.1초, 0.5초, 1초, 시간은 흐른다.


나는 여기서는 되묻고 확인하는 것이 결국에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최대한 면밀히 받아 적고 '증거'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확인하고 또 확인하라, 이 사람이 언젠가 나의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절대로 배제하면 안 된다. 편집증 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성장하는 길이고 생존하는 방법이다.


그런 확인과 되물음에 대한 반응이 부정적이거나 신경질적이었던 경우가 나는 꽤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79일 뒤 나는 퇴사할 것이다.

물론 되묻는 것도 섬세하고 공손한 반응이 중요하다.

거슬리는 목소리로 눈을 동그랗게 뜨며 "예?" "네?"하고 짧게 되받아치는 후배를 보고 있을 때, 아니 지금까지 내가 설명한 것은 무엇인가 하며 허탈함과 함께 짜증과 분노가 끓어올랐던 경험은 나에게도 있기 때문에 안다.

정말 어떤 부분이 제일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특정하여 궁금한 부분을 되물어야 한다.


"예?" "네?"하고 되받아치는 것은 "안 들렸어, 네 목소리가 작아서, 아 그리고 뭐라 했는지 솔직히 귀담아듣고 있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당신이 정말 모르겠어서 모르는 부분을 되물었는데도 귀찮아하거나 짜증 내는 상사가 있는 조직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도망쳐 나오기를 바란다. 그런 문화일수록 전염병같이 전파가 빠르기도 하니까.


종박의 퇴사까지 앞으로

D-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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