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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단을 운영하는 회사라고 모두가 행복하지는 않다. 종목에 따라서 사정에 따라서 다르니까.
비인기 종목 구단을 운영하는 회사의 임직원은 종종 강제 응원에 징용되곤 한다.
내가 다니던 회사도 그러했다. 결승전이어도 예외는 없다.
스포츠계의 냉혹한 현실이지만, 인기라는 것은 누군가가 조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케팅 비용과 인력을 아낌없이 투입하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그런 물적 지원이 없는 가운데에 관객들의 마음이란 것은 그냥 그들 '마음대로'다. 재미와 볼거리가 있으면 알아서 모여주는 것이 관객이다.
그런 경우 결국에는 임직원들이 동원된다. 총무팀에서는 문자 그대로 본부별 차출 인원을 '할당'해준다.
애사심이 1g이라도 남아 있는, 그리고 발언권이나 거부권이 사실상 전무하다고 봐야 하는 막내들 계층이 주로 동원된다. 나는 CEO가 잠실구장의 야구경기를 관람하러 오는 것은 보았어도, 자기가 운영하는 회사의 축구단의 챔피언 결정전에 오는 것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꽤 강팀인데도 말이다.
부장님들이나 차장님들은 '자차 이동으로 갈게'라고 이름만 올려놓고는 경기장에 나타나지 않는다.
출석체크를 한다고 한들, 그 자리에 없다고 해서 인사 징계를 먹일 일도 아니고 그러지 못할 것을 아시니까 그런 것 같다. 결국 눈칫밥이 두려운 어린 사원들이나 별생각 없는 몇몇 상사들만 남는다.
강제로 동원되어, 대절한 관광버스 몇 대를 나눠 타고 경기장에 도착한 우리들 외에는 다른 관중은 없다.
아, 상대팀 응원단도 그 면면들과 분위기를 보아하니 십중팔구 우리와 같은 처지로 보인다. 너희도 잡혀왔겠지.
직장생활이란 이런 것인가? 이런 스포츠 행사를 통해서 겪게 되기도 하나보다.
스포츠단 '단장'은 보통 우리 회사의 임원이 담당한다. 단장이라고 해서 그 스포츠에 조예가 깊거나 아니면 선수단과 심리적 교감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냥 이름뿐인 보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감독'이나 '코치'그리고 '선수단'은 사실 우리 회사와는 큰 관련이 없다. 신입사원 시절 호기심에 전사 임직원 검색(그룹사 전체를 포함)을 해보았지만, 내가 아는 '그 구단 그 선수'는 나오지 않는다.
굉장히 유명한 구단들은 사실 손에 꼽는다.
농구, 축구, 야구, 배구.... 한 손으로 셀 수 있는 종류의 스포츠에서 각 종목당 정말 전국적 인기를 끄는 구단은 얼마 없기 때문이다. 그 구단을 운영하고 서포트하는 회사의 임직원들은 아마 달리 느낄지도 모른다.
회사에서 그 스포츠 경기의 표 나오는 것 자체가 복지가 되고, 임직원들이 그렇게 느낀다면 그만한 공생관계는 없다. 다만, 대부분의 회사는 그렇지 않다....
그러니 결국 강제로 징용된다.
사실 우리가 응원을 가든 가지 않든,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선수단도 알지 않을까? 저 텅 빈 관중석 속에 소수로 모여있는 저 아저씨들이 자발적으로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까지도 든다.
72일 뒤 나는 퇴사할 것이다.
그래도 회사에서 자비를 들여서 버스도 빌리고, 경기장 가는 길 식당에 멈춰서 갈비탕도 사주고 좋지 않냐고.
목요일이나 금요일 저녁 8시에 시작되는 경기, 끝나면 10시가 넘고 집에 도착하면 거의 자정이 된다. 돈 문제를 떠나서 명백하게 근무외 시간과 그다음 날에 영향을 주는 강제 동원이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가? WK리그(한국 여자축구리그)는 입장료가 무료다.
결승전이고 정규전이고 상관없이 전부 무료다. 그럼에도 경기당 1천 명도 모으기 어렵다.
인기 스포츠와 비인기 스포츠의 차이는 이렇듯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하늘과 땅의 차이다.
직장도 그렇지 않을까?
강제 동원되는 임직원들이 일하는 회사와, 알아서 그 경기에 가고 싶어서 표를 열심히 구해야 하는 회사들의 차이가 나는 너무나 뼈저리게 느껴진다.
입장료가 무료여도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그 경기장.... 그리고 월급을 잘 챙겨주는데도 퇴사자가 줄을 잇는 이 회사.... 별 의미 없어 보이는 90분짜리 공놀이에서 나는 이 직장생활의 끝을 이미 직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종박의 퇴사까지 앞으로
D-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