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주변정리를 깔끔하게 하라고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30년 동안 나를 가르치셨다.
30년 동안이라는 것은 내가 여전히 책상 정리에 서툴다는 것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는 안 새랴, 내 회사 책상도 무척 지저분한 편이었다.
여기서 질문, 부모님처럼 직장상사도 내 책상 좀 정리하라고 잔소리를 할 수 있을까?
물론 마법의 단어 '케바케'로 교통정리가 되겠지만, 사실 이것은 생각해볼거리이다.
나는 극한의 책상 정리가 하나의 조직단위로 실시되어, 그것이 문화를 반영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군대에 있던 시절에 정리는 목숨과도 같았다.
정리를 잘 못하면 선임에게도 혼나고, 소대장님께도 혼나고, 대대장님은 손톱까지 일일이 검사하셨다.
정리를 안 하면 호되게 혼났고, 나도 고참이 되어서는 지저분하게 사는 후임들에게 눈총을 주기도 했다.
(물론 전역 후에는 어느 정도 Reset 되었지만)
책상을 꾸미는 것이야, 개성이 중시되는 시대이니 가습기를 두든, 캐릭터 상품을 두든, 사진을 붙이든, 달력을 따로 두든 결국 책상 주인 마음이다.
단, 회사 자료나 중요한 정보를 아무 데나 덕지덕지 붙이는 것은 내가 보아도 조금 아니다. 부주의와 자유는 다르다. 또한 업무 관련 물건보다 데코레이션이 더 많으면 그것도 사실 보기 좋지는 않다. 이것은 그러나 개인차이가 있으니, 그냥 각자의 판단에 맡겨두고자 한다.
결국 핵심은 회사 차원에서, 혹은 하부조직 차원에서 얼마나 통제와 관리가 들어가느냐의 정도 차이이다.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지나친 깔끔함과 정리정돈을 강요하는 상황이다.
정말 전화기, 컴퓨터의 모니터와 키보드, 마우스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것도 책상 위에 허용하지 않는 조직도 있었다.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 찬물이 가득한 레인 옆을 걷는 서늘한 기분이 들 정도의 깔끔함이었다.
개인 소지품을 가지지 못하게 막은 것은 아니지만, '보이지 않게' 확실히 통제했던 것이다.
책상 정리에는 목적이 있을 것이며, 고리타분한 '청결' '정리정돈의 미덕'이런 것을 제외하면 그 가짓수가 많지는 않다. 그중에서 업무능률 향상을 위해 책상 정리를 강하게 권고한다면 양반 중의 양반이다.
여기서는 '보여주기 위해' 하는 책상 정리 강요가 문제가 된다.
초중고 시절 '장학사님이 오신다'라는 상황, 군대에서 '사단장님 오신다'라는 상황을 혹시 기억하는가?
청결은 중요하다. 위생의 문제를 떠나서 인간 두뇌의 주의집중력 Capacity에 기반해서도 산만한 환경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보통 인간이 한 번에 '신경 쓸 수 있는'것은 6~7 항목 정도밖에 없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공장이어도 깨끗한 설비와 지저분한 설비의 고장률이나 불량률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책상 정리도 그 같은 선상에서 놓고 생각할 수는 있다. 100%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런 업무 효율을 생각하고 잔소리를 해주는 상사도 있다. 집에서는 어머니 아버지고 회사에선 그런 분들이다.
다만, '보여주기 위해'가 먼저 머릿속에 자리 잡고 내게 잔소리를 하는 상황이라면 마음이 좋을 수가 없다.
어느 정도로 깨끗해야 하는가? 컴퓨터 바탕화면 속 폴더/파일도 도서관 색인처럼 해 놓아야 하나...?
적적알... 적당히, 적절히, 알아서로 결국 귀결되곤 한다.
70일 뒤 나는 퇴사할 것이다.
아직도 그 본부, 그 층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가 생각난다.
정말 모든 임직원들의 책상에는 모니터와 키보드, 마우스, 유선전화기만이 존재하며 나머지 모든 물품은 개인 서랍 속에 고이 모셔둔(그마저도 엄청 잘 정리해놓은) 모습을 보면서.... 뭔가 SF영화의 23세기 미래 속 통제된 빅브라더 사회가 이런 모습이려나? 하고 생각했다.
차갑고도 삭막한 분위기가 문제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회사가 분위기 좋으라고 다니나? 회사는 일만 잘하면 된다.
그렇다. 일만 잘하면 된다. 책상이 조금 너저분해도 지저분해도 일만 잘하면 된다.
강압적으로 잔소리하고 컨트롤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어질러진 방이라도, 방의 주인이 당신이라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중요한 물건의 위치는 알고 있지 않은가? 나를 포함한 모든 정리가 서툰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카오스로 보여도 나름의 오더가 있다고...
종박의 퇴사까지 앞으로
D-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