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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_행복할 권리

Finding Happiness 01_Right of Happiness

by 종박

대학교 1학년 때 들었던 영어수업의 특징은 '영화'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실존 인물의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만을 선정하였고,

그 중에서 나는 특히 윌 스미스 주연의 "행복을 찾아서 (the Pursuit of Happyness, 2006년)"가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너무 커버려서 슬플 정도인 제이든 스미스의 귀여운 어린시절 모습과

'친아빠'와 '명배우'라는 타이틀을 유감없이 보여준 윌 스미스의 열연도 열연이지만,

나는 영화가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에 매료되어 10년 넘게 이 영화의 팬으로 남아있다.


찢어지게 가난한 아빠 윌 스미스는 어떻게든 아들을 키워보려 고생하고 노력한다.

거의 사기를 당해 대량으로 구매해버린 의료기기를 팔아 하루하루 연명하는 삶을 산다.

전투기를 몰아 멋지게 외계인을 물리치는 파일럿도 아니고,

술 취한 슈퍼히어로도, 요술램프의 요정도, 유쾌한 검은 정장의 외계인 퇴치 특수요원도 아닌,

'일반인 아빠' 윌 스미스의 모습을 보고 정말 많은 충격을 받은 영화였다.


이혼까지 결정한 아내가 아들을 데리고 떠나려 하자,

윌 스미스는 그 둘이 있는 장소로 미친듯이 내달리며 이런 대사를 뱉는다.

동영상 20초부터 ~ 53초 경까지의 부분이다.

It was right then that I started thinking about Thomas Jefferson...

(내가 토마스 제퍼슨에 대해 생각한 것이 바로 그 때였다.)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독립 선언서...)


...and the part about our right to life,

(그리고 선언서의 생명권,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자유권, 그리고 행복'추구'에 대해 생각했다.)


And I remember thinking: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How did he know to put the "pursuit" part in there?

(제퍼슨이 도대체 어떻게 '추구'라는 부분을 거기에 넣은 것일까?)


That maybe happiness is something that we can only pursue.

(아마 행복이란 것은...우리가 오직 추구만 할 수 있는 어떤 것이고,)


And maybe we can actually never have it......no matter what.

(우리가 아마,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결코 실제로 가질 수는 없는 것이라는....)


How did he know that?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스포일러를 최대한 피하면서 말하자면,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며, 실제 이야기의 주인공 크리스 가드너도

꽤 성공적인 삶을 이어나간 것으로 들었다.


대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사실 결말에 크게 만족하지는 못했다.

크리스가 결국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것은 좋았으나,

영화가 물질적 성공이 성공의 척도라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도 그런 물질적 성공이 곧 행복이라는,

Success = Happiness 라는 듯이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Happiness.jpg

사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두 개념이 공유하는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성공한 사람을 보고 사람들은 저 사람은 행복할 것이라 짐작할 것이고,

행복해하는 사람을 보면서 참 성공한 인생이다 라고 흐뭇해하며 부러워 할 것이다.


다만, 그 때도 현재에도 변함없는 생각은

"성공한 인생이라도 불행할 수 있지만,

행복한 인생은 결코 실패한 인생이라 할 수 없다."

라는 것이다.


이런 불만을 품고 영화를 한 번 다시 보았다.

그리고 완전히 다른 해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크리스 가드너가 월가 증권맨으로서 멋지게 재기하여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었다는 것은

영화에서 변함없이 묘사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영화는 끊임없이 아버지 크리스와 아들 크리스토퍼의 고군분투와 케미스트리를 표현하고있다.

pursuit-1.jpg 이 시절의, 이 영화에서의 제이든 스미스는 정말 믿을 수 없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아무리 찢어지게 가난해도, 아내와 다투고 이혼의 곤경에 처하더라도,

크리스는 절대로 아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화도 내고 슬퍼하고 흔들리기도 하지만,

언제나 아들이 손을 꼭 잡고 살아남고자, 그리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노력한다.


아들은 영화 말미에 크리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한다.

역시나 아직도 직장도, 수입도, 살 집도 없어서 보호소를 전전하고 있었고,

수많은 노숙자들과 낯선이들 사이에서 낡은 담요를 덮고 누워있는 아들이었지만,

아버지를 어루만지며 이런 말을 한다.

You're a good papa
(아빤 정말 좋은 아빠에요)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이 무슨 헐리우드식 가족사랑 클리셰냐 하고 대수롭지 않게 봤던 나였지만,

다시 이 영화의 이 부분을 보면서 울컥 하고 솟구쳐 오르는 감동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영화 초반부에 크리스는 아내와 다투고 잔뜩 화가 난 상태로 아들에게 강요하듯 물어본다.


"넌 행복하니?"

(아들은 어리둥절하게 네 라고 답한다)


"왜냐하면 내가 행복하거든, 그리고 너가 행복하면 내가 행복한거고, 그건 좋은 거란다 그치?"

(아들은 다시 석연찮게 네 라고 답한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크리스도, 크리스토퍼도 전혀 행복을 이해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그저 입으로만 겨우 말하는 수준이었다. 그들은 척 보기에도 전혀 행복하지 않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은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와, 서로를 위한 희생,

그리고 서로에 대한 감사와 정을 느끼게 되었고,

마침내 영화의 막바지에 명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던 것이다.


크리스는 이미 행복을 손 안에 가득 들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는 힘을 내어 인턴십을 통과하고 '성공'을 꽉 잡아 쥘 수 있었던 것이다.

왜 처음 봤을 때는 이렇게 볼 수 없었나 확실히 애송이였던 20대 초반의 내가 가소로워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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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성공은 물질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는 편이 쉽다.

월수익 1천보다는 월 수익 1억이 '성공'했다 말하기 쉽고,

국산차보다는 포르쉐, 람보르기니, 벤틀리가 '성공'이라는 글자를 선명히 묘사해준다.


그러나 우리는 행복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행복을 성공과 혼동하거나 동일시 하며,

그저 늘어져있거나(Chilling), YOLO와 같은 개념을 행복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각자의 인생엔 각자의 행복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벼이 여기고 쉽게 발견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공이 쉽게 달성할 수 없듯이, 행복도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손 안에 이미 들어와 있음에도

그것을 꽉 움켜쥐지 못하게 된다.


토머스 제퍼슨이 '행복권' 대신 '행복추구권'을 선택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행복권이라 적는다면, 행복의 개념을 너무나 안일하고 무책임하게 던져버리는 듯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각자의 인생에서 너와 나와 우리들의 행복은 각기 다른 것이고,

또 열심히 그것을 평생 발견하고 가꾸어내야 하는 것이기에,

오히려 현명하고 책임감있게 '추구'라는 부분을 넣은 것이 아닐까?

(여담이지만,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통찰력과 업적에는 매번 감탄하는 바이다.)


비록 13년이나 지난 영화지만,

시간을 내어 한 번 보기를 추천하는 영화이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어째서 '행복권'이 아닌 '행복추구권'을 갖고 태어났으며,

나는 어떻게 무엇을 왜 추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도 나와 함께 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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