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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찬 Jan 11. 2017

라라랜드

행복했던 영화.

예술은 결국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다. 3각 구도거나 직선이다.

3각 구도의 예술은 세상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이러한 세상이다. 세상에 대한 이야기지만 결국 너와 내가 사는 세상이기에 경험은 개인적이다. 그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다시 세상을 구성한다. 그런 경험이 이어질 때마다 생각을 쌓기도 하고 또 깎기도 하고 드물게 뒤집어 엎기도 하면서 세상에 대한 인식을 키워 나간다. 이 개인적인 경험을 가진 이 사람도 역시나 세상의 구성원이어서, 이 사람이 살아감에 따라 또 세상이 어느 정도 변화한다.

직선의 예술은 나의 삶에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한다. 욕구 단계설 같이 야한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아무튼 개인적인 삶이 힘들 때, 다른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는 개인적인 삶을 가지고 다른 무언가에 대한 변명으로 삼든, 뭐가 어찌 됐든 힘든 시간들은 있는 법이다. 이런 문제에 작용하는 예술은 그 아픔을 직접적으로 건드린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고 감각을 이용하면 감정을 바꿀 수 있다. 놀라운 일은 주로 현실적이고 차가운 문제들 그러니까 외로움이라던가 빈곤 같은 진짜 문제들로부터 온 답답한 감정들을 밀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주로 이런 '차가운' 문제들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그 문제들이 일으키는 무력감이나 좌절감 같은 것들이 그 문제에서 벗어나는 걸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와 전혀 상관없이 작용할 수 있는 예술이 필요하다. 친구가 어깨를 두드리면서 아무 말 않고 건배를 권하는 그 순간 같은 예술이다.

라라랜드는 나에게 직선의, 그것도 아주 강렬한 직선의 예술이었다. 영화를 재미있고 없고로 평가하고 메세지가 어쩌고 하는 '차가운' 말을 할 수 없었던 영화였다. 마치 심장에 빨대를 꽂고 행복감을 불어넣은 기분이었다. 지난 몇 개월을 통틀어 그렇게 심장을 뛰게 한 일이 없었다. 어느 때보다 살아있음을 느꼈고,  "The End"라는 자막이 나오는 순간 박수를 치지 않은 걸 후회하면서 스탭롤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움직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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