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회복 중이다.

고백의 길 위에서

by 소구미
이 글은 아직 끝나지 않은 나의 회복 이야기이다.
나는 오랫동안 분노를 두려워했다.
그 감정이 나를 망가뜨릴까, 사랑을 잃게 할까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야 알게 되었다.
분노는 나를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려는 생명의 마지막 외침이었다는 것을.

나는 그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려한다.

상처와 불안, 그리고 분노를 품은 이 글이
누군가에게 안부처럼 닿기를.




얼마 전 나는 노인상담심리를 전공하기 위해 입학설명회를 다녀왔다.
또 대학원에 가려고 한 것이다.
대학원은 왜 그렇게 가려고 하는지.
결론적으로는 안가기로 했다.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그 중하나는
내안의 복수심 때문이었다.

나는 나를 낳아 준 엄마 아빠에 대한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
20살 때 부터 나는 나의 상처를 의식하며 나의 회복을 위해 애써왔다.
하지만 나의 불안은 여전하다.
나의 회복을 위해 내가 마지막으로 취한 것이 분노다.
그들에게 나의 온 분노를 토했다.
더이상 그들을 향한 분노가 무의식 중에 있지 않다.

분노 표현 후 나에게 끊임없이 불안이 찾아 온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막히는 느낌이 자꾸 든다.
일상생활에서 계속해서 불안이 함께한다.

이전에도 불안이 있었지만 이정도는 아니었다.
나의 원초적 분노가 튀어나오면서
몸과 마음에 불안의 자국이 남았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
버려짐에 대한 공포
학대에 대한 무기력

이 모든 것이 분노로 뿜어져 나와
온 갖 상처로 남았다.

그들은 나를 돌보지 않았다.
온갖 고통을 분노로 표현하던 그 순간에 그들은 가장 냉정히 나를 버렸다.
원래도 없던 내가 지어낸 신뢰도 사라졌다.

이런 불안과 분노를 안고
나는 노인상담심리를 전공하려했다.

아버지란 사람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억울함을 품고,
온갖 학대를 일삼았다.
나는 그 사람의 나약함과 상처를 알고 그 정서에 책임지며 나의 아픔을 돌보지 못했다.

나는 쳇바퀴처럼 곳곳에서 그런 사람들을 만났다.
상처 투성이인데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데 에너지를 쓸줄모르고 세상탓, 남탓 하는데 에너지를 쓴다. 자신을 치장하는데 투자를 많이 한다. 들을 줄 모르고 자기 알아달라는 이야기로 대화의 장을 채운다. 그리고 자녀에게 요구하고 의존한다.

나는 이제까지 그들이 약해보였다. 그들의 회복을 돕고싶었다. 학대를 받고도 그들을 위로 해댔다. 이것은 나의 굴레다. 내가 사랑받고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이제 그들이 곧 노인이 된다. 진짜로 약해지는 시기가 온다. 나는 이전과 다른 파워를 가지려고했다.

나는 그들의 약해짐을 환영하고 있다. 나는 그들을 향한 분노가 여전히 끓고 있다. 내 안의 분노는 그들을 교화시키고 억누르고 통제하기 위해 작동하려한다. 내 안의 복수심이 느껴진다.

그걸 느끼고, 아직은 그 전공을 시작할 시기가 아니라고 느꼈다.

나의 분노를 어떻게 온전히 표현할 수 있을까.
분노는 강력한 에너지라는데
어떻게 이 에너지를 써서 이 삶을 건강하게 살아낼 수 있을까.




이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

우리는 모두 회복 중 입니다.
그리고 그 회복의 길 위에서,
서로의 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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