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헌신의 역설
아빠와 엄마가 헤어진 후, 어린 시절을 아빠와 보냈다. 그러다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나는 엄마에게로 오게 되었다. 엄마는 미안함이 많았다. 두 딸의 곁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 미안함은 나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으로 이어졌다.
또래 친구들이 한 달에 몇 만 원 남짓한 용돈을 받을 때 나는 그보다 훨씬 넉넉한 용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항상 최신 기종의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새 핸드폰을 자랑하며 알 수 없는 자부심을 느끼곤 했다. 핸드폰뿐만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들은 모두 엄마의 우선순위가 되었다. 다니고 싶은 학원, 가고 싶은 곳, 사고 싶은 것 등 나의 욕구는 늘 엄마의 헌신 속에 충족되었다. 갖고 싶은 것을 참을 줄 몰랐고, 몇 번의 짜증으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돈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고, 쉽게 쓰고 쉽게 잊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야. 원래 가난하거나 부모가 못 챙겨주는 집 애들이 용돈을 더 많이 받아. 부모가 미안해서 최대한 돈으로 때우는 거야."라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야 보였다. 충분히 보살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안정적인 가정을 만들어주지 못했다는 부채감이 엄마를 짓눌렀을 것이다. 그리고 그 미안함은 가장 쉽게 줄 수 있는 형태, 즉 물질적인 지원으로 나타났다. 엄마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누리게 해 주면서 자신의 미안함을 덜어내려 했을지 모른다. 여러 복잡한 마음이 뒤섞여 무한한 헌신으로 발현된 것이다. 겉으로는 풍요로워 보였지만, 내 안에선 또 다른 공허함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엄마의 무한한 헌신은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내가 원하는 교육과 취미 생활 등을 지속시키는데 드는 비용은 엄마의 가계에 지속적인 부담이 되었다. 당시에는 그저 당연한 희생이라 여겼고, 엄마의 고단함을 헤아릴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결국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적 어려움이 성인이 된 나에게 들이닥쳤고, 그 파편들을 주워 담으며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다.
엄마의 헌신은 분명 나를 향한 깊은 사랑이었고, 나는 그 사랑을 통해 많은 것을 받았다. 하지만 그 사랑이 세상의 현실적인 어려움과 돈의 가치를 깊이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헌신이 한없이 아름답지만은 않으며, 때로는 자녀의 자립을 위한 적절한 거리와 현실적인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경험을 통해 엄마의 사랑을 더 깊이 이해함과 동시에, 삶을 더욱 단단하게 가꾸어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나는 어떤 부모가 되어 아이가 어떤 것을 진정으로 필요로 할지 깊이 고민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