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모 ①

학대, 역할 전도의 비극

by 윤종덕

최근에 너무 충격적인 기사를 봤다. 네 살 난 딸아이를 안고 응급실을 찾은 엄마의 이야기였다. 아이의 몸무게는 고작 7kg. 생후 3~4개월 아기 수준이었다. 네 살 평균 몸무게인 17kg의 절반도 되지 않는 거의 미라에 가까운 상태였다. 게다가 온몸에서 발견된 학대 흔적과 실명에 가까운 시력 장애까지. 그 아이의 엄마는 얼마 전까지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하던 피해자였다. 남편에게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듯했으나, 결국 그녀는 아이에게 또 다른 가해자가 된 것이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유튜브에 올라오는 학대당한 강아지들의 안타까운 사연만 보아도 마음이 찢어지는데, 하물며 인간 아이. 그것도 열 달 동안 본인 몸에 품었던 엄마가 어떻게 자신의 아이에게 저런 행위를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며칠 뒤 책임 없는 부모에 대한 꿈을 꿨다. 잠에서 깬 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죽죽 흘렀다. 마음 한편에 묻어두었던 상처를 조심히 꺼내보려 한다.




내가 어릴 때 우리 부모님은 경제적인 문제로 시도 때도 없이 다투다가 결국 이혼했다. 아빠의 강한 의지로 아빠와 어린 동생 그리고 나까지 이렇게 셋이 살게 됐다. 이건 자식에 대한 책임감보다는 일종의 소유욕에 가까웠다.

이혼하며 엄마에게 모든 책임과 가계빚을 떠넘기고 나니 걸림돌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박탈감 때문이었을까. 고삐가 풀린 듯 아빠의 알코올 의존도는 점점 높아졌고, 술에 취하면 폭력적인 성향이 도드라져 갔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상황이 이어졌고, 어느 순간 그 폭력적인 성향은 우리에게도 닿았다.


아빠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나는 이미 긴장한 상태로 잠에서 깨 침대에 누워 있었다. 잔뜩 예민해진 귀에 철로 된 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리면 두려움에 심장이 요동쳤다. 동생은 나보다 어린 아기였기에 깊은 잠에 들어 비교적 소음에 둔한 편이었고, 항상 내가 먼저 깨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평소엔 어느 형제자매와 같이 동생을 괴롭히고 놀던 나였지만, 그런 순간만큼은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빠는 우리를 깨워 앉혀놓고 본인 인생에 대한 한탄과 분노를 몇 시간이고 표출했다. 그리고 어린 우리에게 엄마에 대한 비난을 강요했다. 매번 신체적인 폭력까지 이어졌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 이 과정을 해가 뜰 때까지 이어갔고 그건 분명한 학대였다. 아침이 되면 아빠는 잠들었다. 나는 동생과 벌겋게 부은 눈을 뒤로한 채 등교해야 했다. 해봤자 고작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피곤함을 감내하기 어려웠다. 그런 일이 있는 날 학교에 가면 계속 엎드려 자기 일쑤였고, 수업 진도 또한 따라가지 못했다. 당연히 또래 친구들도 날 피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계속해서 고립된 채로 무력함에 빠져갔다. 부모의 문제가 아이의 삶 전반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치는지 여실히 보이는 대목이다.


친할머니는 아빠를 그저 아픈 손가락, 가여운 막내아들로만 보셨다. 할머니는 항상 우리를 사랑한다면서도 어린 너희가 참고, 아빠를 이해하라는 말 뿐이었다. 할머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른들이 미웠고,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아이가 부모의 아픔을 이해해야 할까? 이것은 아이가 어른의 역할을 대신하도록 강요하는 역할 전도의 비극이었다. 아이가 보호받고 성장해야 할 시기에 오히려 부모의 아픔을 감싸 안아야 했던 부조리함. 가족 구성원인 할머니조차 학대 상황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라는 변명 아래 방관했다.


보통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져보면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고들 한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의 아빠를 더욱이 이해해 줄 수 없을 것 같다. 부모는 아이 세상의 전부이자 가장 큰 울타리다. 그 울타리가 두려움과 폭력으로 차있다면 아이는 어디로 가야 할까? 아이의 작은 어깨에 부모의 불행과 아픔이라는 짐을 지우는 것 그 자체로 학대이자 방임이다. 아이는 보호받고 사랑받으며 성장해야 할 존재지 결코 부모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거나 불행의 대물림을 감당해야 할 존재가 아니다.


어린 시절 나는 지켜야 할 동생이 있었다. 그리고 내 안의 무력감과 공포에 홀로 맞서야 했다. 매일 해가 지면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두려웠고, 아침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 시절의 기억은 이렇게 문득 되살아나 나를 붙들곤 한다. 이 아픔이 결코 나만의 것이 아니며, 사회가 아이들에게 더 큰 울타리가 되어주기 위해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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