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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Mar 26. 2020

어리굴젓 같은 곰삭은 글을 연재하고 싶습니다.


“할머니 어리굴젓 맛있어?”

“어, 괜찮고만 , 옛날에는 부안에서 엄지손톱만 헌 굴을 캐서는 고춧가리하고 소금하고 젓갈 조금 넣고 버무렸다가 부뚜막에 놓았다가 일주일 있다 먹으믄 그렇게 맛이 좋았다. 어리굴젓은 사나흘 익혀야 맛이 좋다
이것도 맛이 괜찮타. 굴이 옛날 거맨치 쪼그매야 맛있는디 요즘 것은 다들 양식이라 조그만 것이 잘 안보이드라. 어리굴젓은 생 놈으로 먹으면 맛이 없다!”


몇 년 전 할머니에게 어리굴젓을 맛 보여드리고 할머니가 남긴 몇 줄의 감상을 잊어버릴세라 핸드폰 메모장에 속기사처럼 기록을 해두었던 내용입니다. 할머니는 종종 신기해하셨습니다.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나의 손맛은 나이가 들수록 할머니의 맛을 복사하듯 닮아갔거든요. 깻잎 장아찌도 어리굴젓도 김장김치도 한 번도 제대로 가르쳐준 적이 없다 하셨습니다. 제 기억을 뒤져봐도 할머니 옆에서 조 분 조 분 앉아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며 레시피로 배운 적은 없는 거 같습니다.


그런데 음식을 만들려고 부엌에 서면 내 머릿속에 각인된 할머니의 맛의 움직임이 그대로 살아나곤 했습니다. 어리굴젓의 정확한 레시피는 분당의 어느 요리 선생님에게 배워온 것입니다. 생강과 마늘과 배와 무를 즙을 내어 그 진액에 손질한 굴을 잠시 절여뒀다가 고춧가루 양념을 해서 하룻밤 익힙니다. 간은 맑은 멸치액젓 약간과 굵은소금이 전부이지만 재료만으로도 맛있는 굴 앞에 너저분한 장식은 필요하지가 않기도 합니다.


다섯 번 떨어지고 여섯 번의 브런치 작가 되기 시도에 드디어 승낙을 받고선 너무 기뻐서 혼자 팔짝거리며 뛰었습니다. 다섯 번째 떨어진 저녁에 노트북을 열고서 오랜 궁리를 해본 적이 있습니다.

나는 왜 작가가 되고 싶은가? 왜 일상을 보여주고 싶어 안달인지, 저도 제 마음이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음식에 각인된 사연들을 누가 읽고 공감하고 위로받는다면 너무 행복할 거 같았습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음식을 해 먹이며 느끼는 감정과 동일할지도 모릅니다. 허기진 배도 채워주고 외로운 사람의 마음의 허기도 채우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음식과 관계된 여러 사연들을 치장 없이 담백한 맛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어리굴젓이 맛있으려면 좋은 굴을 찾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갖은양념이 쳐진 쓰는 척하는 글 말고 생활에서 알게 된 좋은 소재들을 잘 보여드리고 싶단 생각이 들어 몇 자 적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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