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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Sep 19. 2021

추석 연휴 어떻게들 보내시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은 저도 막상 친정 없이 지내보는 첫 추석이라 어떻게 될지 기분이 어떨지 잘 모르겠어서 예측이 안됐거든요. 어떤 기분이 들든 어떤 파도가 들이치든 덤덤히 손님처럼 맞아들이자 싶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까진 택배전쟁을 치르느라 쉴 여력이 없었고 마지막 택배의 배달완료 메시지가 뜨는 순간 온몸이 녹아내리더군요. 그래서 딱 하루 아팠습니다. 몸이 지근지근 열댓 명 장정한테 밟힌 거처럼 어찌나 쑤시던지, 가을바람 불어주면 한 번씩 찾아오는 편도선염이 어김없이 또 찾아와 고열에 시달리며 그냥 딱 하루 누워있었을 뿐이었는데 집이 대 환장 파티가 열렸었습니다.


냉장고에 반찬 가득인데 제가 누워 있으면 전원 스위치 고장 난 로버트 마냥 둘 다 허둥지둥, 제 눈치 살피며 기운들이 없어서 제가 맘 놓고 아프지도 못합니다. 오늘 하루 더 쉬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어요. 식은땀 쫄쫄  흐르는데 수건으로 연신 닦아내며 일을 시작하니 몸살도 눈치가 뵈었던지 썩 물러가 주더군요.

노동에 길들여진 육체라 노동으로 스트레칭을 해주면 몸이 또 그런대로 쓸만하게 풀립니다.


하루 아팠던 육신으로 추석 음식 하려니  버거워서  세종류와 잡채만 만들었습니다. 밑반찬이야 냉장고에 빠질새 없이  그득  있으니 기름 냄새만 적당히 풍겨주면 명절 분위기가   같았거든요.

식구들 도움받아 산적꽂이  놨던 전거리부터 슬슬 시작했더니  집안에 풍성한 추석 냄새가 가득 차서 기분이 좋아졌어요. 식은땀이야  흘러주면 어떠냐 싶더군요. 내가 만든 전을 제비 새끼들처럼 젓가락 들고 맛있게 먹어주는 딸이랑 남편 보니 기운이 났어요.


마침 오늘 딸아이 수학 과외 보충이 있었던 덕분으로 선생님에게도  접시 나눠드리고 경비아저씨에게도  접시, 딸아이의 수시 접수할  엄청난 공부를 시켜준 지인분에게도 한 보퉁이 싸두고 시댁에서 먹을 음식도  놨더니  많던 부침들이  사라졌어요.

다들 맛있게 너무 맛있다고 기뻐해 주니 이게 꼭 친정에서 떠들썩하게 친정붙이들과 명절 음식 안 만들어도 기쁨이 꽤 가득 가슴에 차올랐습니다.


우리 식구 이틀 먹을 음식 빼놓고 두 접시 정도가 넉넉하게 남길래 이건 냉동을 시켜야 하나 고민했는데 여유분도 아주 맞춤의 집으로 배달이 가능했습니다. 딸아이의 친구가 아파트 건너동에 살고 있는데 명절 음식 먹고 싶다고 문자가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중학생 때 일찍 돌아가셔서 몇 년째 제대로 된 명절 음식 먹어본 기억이 없다는 카톡 내용에 냉큼 여유분의 전이랑 잡채를 가득 싸서 보내줬습니다.


내 손으로 만든 음식이 곳곳으로 전해져서 반가운 ‘정’으로 인사를 나누게 된 거 같아서 오늘 굉장히 뿌듯했어요. 비록 친정 가는 길의 지루함도 내가 살던 고향의 청량했던 새벽 공기도 이젠 경험해볼 수 없지만 ‘나’ 다운 나름대로의 추석 연휴를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종일 기뻤는데 남편은 남편대로 본가에서 속이 상해서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남은 산적이랑 동그랑땡으로 우리 세 식구만의 파티를 했습니다. 평생 사이가 안 좋으셨던 시부모님이 명절 앞두고 부부싸움을 벌이셨는데 큰 시누는 남편에게 아버님을 알코올 병동에 강제로 입원시키자고 난리난리가 났던 모양입니다.

이제 법이 바뀌어서 본인 동의 없이는 강제 입원이 안 되는지도 모르는지 그 잔인한 짓을 왜 남편에게 전가시키며 안 한다고 난리를 부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런 것들 다 덮어두고 우리 가족들만의 저녁 담소에 위로받았던 저녁시간입니다.


어느 집이나 꺼내놓지 않아 그렇지 사연 없는 집이 있을까 싶네요. 남편은 일찍 잠자리에 들고 딸은 공부하러 방에 들어가고 저는 또 손이 심심해서 괜히 멸치나 다듬고 있다가 다른 분들은 어떻게 명절 연휴의 하루를 보내셨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시댁에서의 속상한 일이 있긴 하였지만 오늘의 제일 큰 수확은 나눔의 기쁨입니다. 다른 추석엔 하나라도 더 많이 친정붙이에게 가져다 주려 했던 것들을 내 주위의 고마운 분들과 나눠먹었습니다.

그게 은근히 절 웃음 짓게 하고 마음이 뿌듯해져서 심장에서 뽀독뽀독 개운한 소리가 날 듯하네요. 그렇게 나눠 먹으며 지내다 보니 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음식이 없나를 고민하다 보니 별로 쓸쓸하지 않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전 종류와 잡채만 만들었는데 내일은 오늘 못다 한 나물을 좀 몇 가지 만들어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산에 올라가 먹으려고 합니다. 남편도 좋다고 하네요. 이렇게 지내면 되죠 뭐~  


다행입니다.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아서 다행이고 친정붙이들 생각 안 나서 다행이고 눈물 안 나서 다행입니다. 오늘은 꽤 잘 지냈더니 다행입니다. 다들 마음 즐겁고 건강한 추석 연휴 보내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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