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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Feb 10. 2022

미안하지 않다.

살면서 남편에게 제일 많이 했던 말이 그 말일 겁니다. ‘미안해, 내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이 중에서 실제로 정말 너무 미안해서 잘못해서 했던 사과는 몇 번 되지 않을 거 같아요. 보다 못한 딸이 한 번은 엄마를 위해 항변을 한답시고 아빠에게 그런 말도 제 대신해줬던 기억이 납니다. 왜 엄마 아빠가 싸우면 맨날 엄마만 사과를 하느냐고요.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해소하고 이해받고 싶은 감정이 있었고 많이 망설이다가 참을 수 없는 지경에서야 아주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물었던 거 같습니다. 그날은 종일 남편이 기분이 좋았던 하루였거든요. 낮에는 우리 가족을 진심으로 위해 주시는 장로님 내외분과 점심을 먹었고 산에도 두 시간이나 다녀왔고 저녁엔 와인을 두 병이나 마시고 한 껏 기분이 좋아진 남편이 나지막이 ‘아, 행복하다’ 하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아무리 해서는 안 되는 얘기라지만… 그래도 오늘은 괜찮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 잘못된 판단이었더라고요.


며칠, 찜 짐 한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던 딸의 표정을 느끼긴 했습니다만 에이 설마 하고 넘어갔던 일이 있었습니다. 설 명절에 시댁엘 갔을 때 재수하며 일 년 고생한 손녀딸의 대학 입학을 칭찬하는 소리는 한 마디도 듣지 못하고 이종사촌 아이들이 전문대를 들어갔는데 아주 취업 잘되는 학과엘 들어갔다며 자랑을 하시는 시어머니의 반응에 제가 좀 당황했습니다.

에이 … 설마 했습니다. 내가 오해한 거겠지 싶어서 일부러 그런 말도 꺼내봤습니다.


“예림이 이제 대학 보내 놨더니 속이 다 시원하네요”


그 말에도 우리 어머님, 아무 말을 안 보태셨습니다. 그 속내를 알 수 없으나 느껴지던 감정과 태도가 아이가 외고를 들어갔을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달라서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거든요. 외고에 입학했을 때는 우리 어머님이 예림이를 껴안으시고 펄쩍펄쩍 뛰며 신나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느 대학까지 보낼 수 있냐고 물어보셔서 순간 당황했던 제가 얼껼에 “이대…”라고 말을 흐렸더니만 아주 실망한 표정으로 그러셨어요.


“이대 밖에 못 보내냐?”


그 장면이 기억이 나더라고요. 그래도 이건 나 혼자만 느끼는 자격지심일 거라며 모른 척 흘려보내려 했는데 기어이 감추었던 감정들이 터질 일이 일요일에 생기고 만 거죠. 트리거는 아주 사소했습니다. 종일 행복한 일정을 보낸 남편이 침대에 누워 자려고 하는 시간이었는데 기운이 한참 떨어진 딸이 아빠와 엄마 사이를 파고들더니 한숨을 푹 쉬며 하소연을 하더군요.


“엄마, 서울대 애들만 다 취업하고 나는 취업도 못하고 그럼 어떡하지?:”


그 소리에 대번에 알아졌습니다. 딸을 거실로 데리고 나와서 너의 장래에 대해 엄마는 걱정이 정말 들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혹시 할머니 때문에 그러냐 물으니 어떻게 알았냐고 토기 눈이 됩니다. 자기 딴에는 숨기려 했던 마음이었는데 뭔가 애매하게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고 하더군요. 대 놓고 구박을 하신 것도 아니고 대학을 그것밖에 못 갔냐고 뭐라 하신 것도 아닌데 서운했나 봅니다.

마음고생 많이 하며 온 가족이 힘들게 재수 뒷바라지했던 일 년이었고 무엇보다 딸아이의 상처가 너무 신경이 쓰였습니다. 아이가 그런 감정이 들었던 건 알려주고 싶었어요.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가서 물어봤던 게 큰 화근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빠… 혹시 어머님이 예림이 학교 흡족해하지 않아 하셔?”


그 한마디에 정말 난리가 났습니다. 좀 전까지 와인을 먹고 행복하다 했던 사람이 360도 돌변해서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으로 저를 때려버리겠다고 위협을 하더라고요. 너무 놀라서 식은땀이 났습니다. 그래서 얼른 또 수습을 하려 했습니다. 내가 미안하다고요. 너무 미안하다고요. 그랬더니 남편의 말이 더 점입가경이 되어버렸어요.


“너 참 진짜 부덕하다. 네가 우리 엄마라 친해? 엄마한테 지금 전화해서 물어보지 그래? 전화는 하냐? 모든 사람이 니 기분에 맞춰서 좋아해 줘야 하는 거야? 진짜 복을 깨도 유분수지. 나가! 때려버리기 전에!”


차라리 한 대 맞았던 게 나았으려나 싶은 모멸감에 식은땀이 났는데도 남편에게 매달려서 미안하다고 연신 그랬던 거 같아요. 그리고 뜬 눈으로 거실에서 밤을 새우고 그다음 날 오전에 문자를 보냈습니다. 절대로 다시는 시어머니 험담도 시누이 험담도 하지 않고 오빠 맘 상하게 하는 일 없게 하겠다고요.

그런데… 그런 저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시어머니 험담을 한 것도 아니었고 시누이 험담을 했던 게 아니라 딸이 상처를 받았다 하는데 우리 그 얘기 좀 해보고 싶다는 의사표현이었던 거였죠. 첫 한마디 듣고 모든 걸 예단해버리고 대화를 험상궂게 막아버린 남편이 무서워서 그리고 이전의 평화스러웠던 집안으로 돌려놓기 위해 미안하단 소리를 백번쯤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놓고는 갑자기 회의감이 몰려왔습니다. 남편은 자상한 사람입니다. 가족에 대한 희생정신도 대단하고 성실하고 근면하죠. 다만 시누이, 시어머니를 대상으로 불만이나 투정이나 내 감정이 속상했다는 얘길 하면 굉장히 폭력적으로 변합니다. 그걸 알고선 아예 함구하고 살았던 세월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 상황을 당장 무마하려고 미안하다 해 놓고 너무 억울한 겁니다.


내가 잘못한 게 뭐지? 싶고 언제까지 이런 얘기는 치외법권으로 다뤄야 하는지, 당신의 어머니가 나와 딸에게 상처를 주는 일에 대해서도 보호해주지 않고 미안해하지 않는 게 잘못된 게 아닌지 묻고 싶었지만 솔직히 무서워서 묻지 않았습니다. 폭력적으로 변하는 걸 알기 때문에 괜히 아득바득 물어봤다가 억울하게 맞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일지도요. 그 일이 있고 나서 줄곧 서로 말을 안 합니다. 항상 제가 먼저 미안하다고 하고 새색시같이 예민한 남편, 미안하다고 잘 못하는 남편을 웃겨주고 기분을 맞춰줘야 일이 해결이 되곤 했는데 이번엔 그러고 싶지가 않아서요.


며칠째 집에 자물쇠가 채워진 듯 밥도 따로 먹고 말도 하지 않는 게 딸 입장에서는 너무 속상한 일이었던가 봅니다. 오늘 저녁엔 아빠와 같이 밥을 먹고 싶어 하는 눈치여서 사흘 만에 시금치도 무치고 생선도 굽고 된장찌개도 끓였습니다. 그런데 밥상에 앉은 남편은 여전히 말이 없고 나는 먼저 거기에 아무렇지 않은 듯 얘길 건네질 못해서 속도전을 하듯 밥을 해치우고 설거지를 끝냈습니다.


퇴근길에 마트에서 와인 한 병을 사 왔길래 딸기와 함께 상을 차려줬는데도 와인 한 잔을 억지로 먹고 들어가는 남편을 억지로 붙잡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이상하게 저도 그냥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서요. 언제까지 납득되지 않는 미안함을 건네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요. 기분이 좋지 않아서 불을 다 끄고 누웠는데 느닷없이 내 편을 평생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았던 친정아버지가 생각이 나면서 눈물이 비죽 나오네요.

아빠가 보고 싶었습니다. 2년 전 요양원에 찾아갔을 때 아빠와의 면회를 막냇동생이 차단을 해 놔서 아빠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법원의 조정에서도 마지막으로 보여달라 했던 아빠 얼굴을 그 들이 보여주는걸 너무 싫어하더라고요.


아빠의 의식이 돌아온걸 병원에서 경비원이 가져온 쪽지를 통해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일부러 믿지 않았습니다. 큰 딸이 보관하고 있는 자신의 합의금을 돌려달라고 쪽지에 적혀 있었습니다. 자신의 돈은 막내딸이 다 관리를 할 거라고요. 그때는 … 믿고 싶지 않아서 믿지 않았지만 나의 부모들은 자식들 헌 옷 버리듯 자신의 이익에 맞게 잘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란 걸 인정하기가 싫어서 끝까지 몸서리를 치며 믿기를 거부했지만 그게 내가 도망갈 수 없는 나의 현실입니다.


남편에게서 온 서운함이 너무 심해서 자꾸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참 너무 과한 생각이라고, 이게 좀 지나친 비약 아닌가 싶어서 명리학을 공부했던 동생과 통화를 했는데 동생이 그러더라고요.

“언니에게 남편의 존재는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해 같은 존재, 하나밖에 없는 의지처”여서 마지막 남은 해가 나를 비난하니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매번 그렇게 미안하지도 않은데 미안하다고 매달렸던 모양입니다. 나의 속상함만 잠시 감추면 다른 모든 게 완벽하게 평온한 상태가 유지가 되니까요. 그런데 이번엔 그냥 내버려 둬 볼 생각입니다. 나도 모르겠지만 이번엔 겉모양만 ‘미안’의 사과를 건네고 싶지가 않습니다.

부덕하다… 어쩜 부덕할 수도요. 남편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네요.


부덕하니 엄마도 나를 버리고 아빠도 나를 버렸겠지요. 명리학에서는 이걸 다른 표현으로 말한다더군요. 부모 도움 없이도 혼자서 잘 살 수 있는 능력이 출중해서 부모복이 없는 거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저녁엔 혼자서도 잘 해쳐나갈 수 있는 능력자의 모습은 아닌듯합니다.

밀어낸 아빠가 어이없게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나네요.


‘아빠… 왜 그랬어… 나 한 번만 믿어주지 그랬어. 늘 똑똑해지려고 강해지려 애쓰던 큰 딸 한번 믿어보지 그랬어… 내 편좀 들어주지…’


내 편 하나가 없는 듯 느껴지는 깜깜한 저녁입니다.


ps. 내글의 구독자님들에게 오늘은 정말 그냥 하소연의 시시콜콜… 입니다. 하하

      얘기할데가 없고 말로 하려면 또 누구의 귀한 시간을 헐어써야 하고 그런데 글은 버벅거리지 않고 감정 표현이 정리가 잘 되는 수단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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