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 평소엔 만나지도 않았던 사람들을 실컷 만나 이상한 얘기의 조합으로 드마마 한편을 찍고 일어났더니 애정 하는 출발 비디오 여행이 거의 끝나갈 시간이었습니다. 소파에 누워있는 남편을 깨워 밥을 먹여야겠어서 냉동실에 비상으로 넣어둔 쌀국수를 해동해서 끓여주고 저는 국물만 조금 덜어 후루룩 마시던 중이었습니다.
쌀국수를 우적우적 먹던 남편이 비에 젖은 저음으로 저에게 말을 하더군요.
“예림이 오늘 오전에 국어 특강 못 갔다. 일요일 아침에 국어 특강 있는 거 까먹었지?”
깔깔한 입안에 쌀국수 국물 좀 먹어보려던 저의 의지가 순간 비에 젖어 푹 꺼져버렸습니다. 속으로는 이런 아우성이 잠시 소요를 일으켰습니다.
‘나는 좀 아프면 안 되냐? 내가 아프면 너네 둘은 왜 바보 멍청이가 되는 거야! 내가 누워 있어도 학원 갈 수 있고 밥 먹을 수 있는 거잖아!’
하지만 그 말을 당연히 하지 않고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어머… 미안해. 내가 아프면 안 되는 건데. 아휴, 오늘 국어 특강 있는 거 정말 잊어버리고 있었어. 어쩌냐.. 그 수업 비싼 수업인데… 너무 미안해”
재수생 엄마는 늘 죄인이어야 합니다. 아프면 안 됩니다. 간 밤에 위경련으로 응급실에서 진경제를 맞고 와서 새벽에 늦게까지 뱃속의 전쟁 같은 통증으로 몸이 고되어도 아이를 새벽에 깨워 밥을 먹이고 도시락을 싸줬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남편의 귀한 돈이 낭비가 되지 않고 딸아이의 머릿속에 손해 없이 지식이 저장이 될 수 있으니 절대 아프면 안 되었는데 부족한 제가 컨디션 조절을 잘 못해서 아팠던 게 큰 불찰이었던 거죠.
밀키트 쌀국수를 해 먹이느라 개수대가 금세 또 설거지할 거리로 가득 찼는데 오늘은 그거 좀 대신해주었으면 좋겠는데 남편은 그대로 안방으로 들어가 버리더군요. 엊그제 알려준 남편의 카드값이 올해 역대 최고 금액을 경신했었습니다.
여러모로 답답할 겁니다. 그래도 학원비 결재와 이러저러한 파이널 특강 수업이 이게 마지막 달이란 게 안심이라고 남편과 서로 위로했으나 그 카드값 메꿀 일이 또 머리가 아득하겠죠.
그런 와중에 아내마저 컨디션 조절 못해 비싼 응급실에 가서 진경제를 맞고 왔으니 그게 짜증이 났나 싶기도 하고 물어보고 싶지만 그런 거 물어봐야 뭐하나 싶어서 말았습니다. 허긴 새벽에 응급실에 가자며 남편을 깨울 때도 제가 그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응급실 비용도 실손 처리되니까..” 하고 말끝을 흐렸던 거 같습니다.
위경련은 스물두어 살 때 작은집 더부살이를 할 때 처음 생겼었습니다. 제가 그때부터도 워낙 주위 사람에게 싫은 소리도 듣기 싫어하고 극도로 예민한 까칠이 었던지라 작은엄마 눈치가 늘 반찬으로 하나 더 놓여있는 그 밥상에 같이 앉아 있기가 어찌나 힘이 들던지 밥을 그 집에선 안 먹기 시작했었거든요.
집에 들어올 때는 신촌역 출구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천 원짜리 떡볶이 한 접시와 어묵 두 개로 저녁을 먹고 오기가 다반사였습니다. 아침은 당연히 굶고 회사에 가거나 학교에 가고 점심은 바깥에서 사 먹다 보니 위장이 극도로 망가졌던가 봅니다.
어느 날 새벽이었는데 처음 겪어보는 배의 통증에 식은땀이 온몸에 나고 죽을 거같이 아파서 허리를 새우같이 구부리고는 혼자서 신촌의 어느 병원 응급실엘 갔었습니다. 그곳에서 밤새 피를 뽑고 소변검사를 하고 뱃속 ct를 찍어 보고 나서야 그게 위경련이란 걸 알려주더군요.
그 이후로 예민한 상태로 음식을 편히 먹지 못 할 일이 생기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가 자주 경련을 일으킵니다. 운동 시작하고 한 동안 그놈의 위경련이 찾아오지 않아서 너무 편했는데 어제는 아주 오랜만에 응급실에 갔던 거였습니다.
몸이 너무 피곤합니다. 피곤한 건 딸도 마찬가지고 남편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서 졸린 눈을 뜨지도 못하고 밥을 먹어야 하는 딸도 피곤할 것이고 딸아이를 대치동 학원까지 데려다주고 저녁에도 데리러 갔다 와야 하는 남편도 피곤할 겁니다.
세 식구가 이제 마지막 한 달을 남겨두고 더 몸조심, 마음 조심을 했어야 하는데 제가 툭 넘어져버리니 두 사람이 잠시 흔들리는 것도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좀 전에는 아휴.. 하는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두 시간 정도 또 기력 없이 불 꺼진 거실에 누워있으려니 저녁에 식구들 먹일 먹거리가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집안꼴도 누추해져서 어지러운 집안 꼴을 보고 있자니 제 몸이 더 아플 거 같아서 그냥 몸을 일으켜 집안 청소를 했습니다. 설거지도 해 놓고 청소기도 돌리고 마지막 남은 기력으로 냉장고 야채칸을 열어보니 외롭게 어묵이 한 봉지가 있더군요.
어묵볶음은 5분 만에 휘리릭 볶아지니 아무리 지난밤에 위경련으로 고생을 했더라도 기력 없는 손끝에서 볶아지는 어묵이라도 맛은 평소와 똑같을 겁니다.
음식을 팔기 시작하고 주위에 가르쳐주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물어보는 게 의외로 어묵볶음이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아니 그게 왜 어렵지 싶어서 적지않이 놀랐는데 어묵볶음이 타지 않고 말랑하고 간이 적절히 배어들게 볶아지는 게 많이들 어려워하시더라고요.
제가 또 어묵볶음을 볶은 경력을 따져보자면 삼십 년이 넘는 세월이긴 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동생들 밥을 자주 해먹이고 도시락 반찬을 싸주기 시작했는데 그 시절에도 제일 만만한 반찬이 어묵이었거든요.
어묵 5장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궁중팬에 넣어줍니다. 그리고 계량컵에 물 50cc 정도를 담아 잘라진 어묵에 부어줍니다. 여기에 포도씨유를 두어 바퀴 휘휘 둘러주는데 이걸 굳이 계량을 하자면 3~4T 정도 됩니다.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어묵과 물과 기름이 잘 섞이도록 가볍게 버무려줍니다.
가스불을 켠 후에 처음엔 가장 센 불로 볶아주다가 어묵이 노릇하게 익어가면 불을 중. 약불로 줄입니다. 그리고 간장 2T를 궁중팬 가장자리로 흘러내리게 해 줘서 어묵에 간장의 풍미를 입힌후에 고춧가루를 반 스푼 정도 떠서 어묵에 뒤적뒤적 섞어줍니다. 마지막으로 불을 끄기 전에 들기름 한 스푼을 넣어주고 마늘을 반 스푼 넣고 불을 끕니다. 양파를 반 개 정도 채 썬 게 있으면 양파와 대파를 어슷썰기 해서 꺼진 궁중팬에 넣어 볶아진 어묵과 같이 뒤적여줍니다.
마늘, 양파, 대파는 잔열로 익혀야 어묵볶음의 풍미가 더 좋아지더라고요. 이 과정이 총시간으로 따지면 5분도 안 걸립니다. 간 밤에 위경련으로 아무리 고생을 했어도 기력 없는 손 끝으로 버무려도 어묵볶음은 여전히 맛이 좋습니다.
할머니가 일 년에 한 번씩은 휴가 개념으로 서울에 사는 둘째 작은 아빠네 집에서 일주일 정도 휴식을 하고 오시곤 했었습니다. 할머니가 집을 비우면 부엌의 곤로 앞에 쪼그리고 앉아 생존의 어묵을 볶아서 동생들 아침밥을 차려줬던 기억이 납니다. 아침에 눈을 뜨지 못해 동생들과 제가 학교에 늦을까봐 자기전에 자명종을 맞춰놓고도 긴장을 하며 자느라 선잠을 잤던게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곤로불 심지에 성냥불로 불을 붙이고 까만 후라이팬에 어묵을 넣고 기름을 두르고 볶다보면 석유곤로 심지에서 나오는 까만 그으름의 냄새가 어묵볶음에도 배어들었습니다. 그런 어묵볶음이었어도 동생들의 도시락에 넣어줄땐 오늘아침에도 해냈다는 기쁨에 가슴이 벅찼던거 같습니다. 어린 엄마역할을 늦잠자지 않고 해낸거 같아 많이 뿌듯해했던거 같아요.
지인들이 저에게 어묵볶음을 자주 물어볼 때마다 어묵에 물을 좀 넣으라고 얘길 해주면 그걸 그렇게 신기해하더라고요. 어묵에 물을?? 하면서도 한번 그렇게 해보고 나선 다들 맛있게 볶아졌다며 좋아해 주곤 했습니다.
오늘도 이 어묵볶음 하나와 김치 하나로 식구들 저녁을 차려줄 예정입니다. 아프면 안 되지… 하면서 마음을 또 갈무리해봅니다. 재수생 엄마는 아프면 안 됩니다. 아프면 안 되나 봅니다. 내가 아프면 딸도 지각을 하고 남편도 기운이 없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