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할 리가 없는 일상에 특별한 일식 두부조림

by 종이꽃

우리 집 재수생은 온갖 병을 돌아가며 앓고 있습니다. 한 달에 두 가지 정도는 꾸준히 약을 먹어주고 있나 봅니다. 장염과 위염과 위경련이 번갈아가며 아이의 뱃속을 휘젓고 가고 나면 척추측만증이 힘들게 하더라고요 척추측만증의 통증이 좀 가라앉으면 이젠 사랑니가 말썽을 부리곤 했습니다.


추석 전에 독학재수학원으로 바꾸면 안 되냐고 하면서 저를 또 한 번 휘청하게 해 놓은 후엔 한 일주일 잠잠했나 봅니다. 언제부터인가 제 입에서 금기시되는 문장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심심하다’란 말입니다. 징크스입니다. 심심하다고 말하고 나면 꼭 작은일 이든 큰 일이든 생기더라고요.


가끔은 저주받은 열정같이 느껴지기도 할 만큼 에너지가 늘 충만해서 일을 하면서 책도 많이 읽고 자수도 하고 일본어 공부도 병행하던 넘치던 저의 에너지는 올해부터는 모두 우리 집 재수생에게 재물로 바쳐지고 있었거든요. 하루도 쉴 틈 없이 방심할 틈 없이 여기저기 많이 아파줘서 고맙게도 딴생각 하나도 하지 못하고 아이가 하루하루 무탈하게 지내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었는데 요 며칠은 너무 편한 거예요.


공부도 잘해주고 있고 불안해하지도 않고 허리도 아프다고 안 하고 장염에 시달리느라 흰 죽을 끓이고 있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편하던지 제가 금기시했던 그 문장이 톡 튀어나왔습니다.


“아유, 심심해. “


뒷산에 한시간 산책을 다녀와서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뭘 좀 재미난 걸 해볼까 궁리를 하던 중이었는데 아뿔싸! 반나절 만에 그 말을 입 밖에 내놓은걸 후회했습니다. 우리 재수생님이 어제저녁에 집에 귀가해서는 배가 맹꽁이 배처럼 부풀어 오른다고 꽁꽁거리며 난리가 난 겁니다.


변비인가 싶어서 보리차 끓여서 미지근하게 연신 먹이고 말린 자두 먹이고 밥도 질게 해 주고 반찬도 부드러운 것만 만들어 준다고 저녁내 부산을 떨었는데 오늘 낮에 학원에서 또 배가 아프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젠 아파도 혼자서 병원에 척척 알아서 찾아갑니다. 내과를 갔다 오더니 또 장염이 도졌다고 알려주더군요.


사나흘 편했던걸 감사해하며 아이고 소리를 얼른 등 뒤로 숨기고는 일찍 귀가하는 아이에게 줄 요량으로 두부를 굽기 시작했습니다. 금식이라고는 하지만 흰 죽만 먹이기엔 심심하니 뭔가 담백하면서도 영양가 있는 특별식이 필요했거든요.


두부 한 모를 6등분으로 네모반듯하게 잘라줍니다. 물기가 잘 빠지는 작은 소쿠리나 채반에 두부를 받혀놓고 굵은소금을 한 꼬집 집어서 살살 뿌려줍니다. 이렇게 두어 시간 놔두면 두부의 물기가 쪽 빠집니다. 냉장고에 채반채로 넣어두고 잠시 잊어버리고 다른 집안일을 하고 조리를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물기가 충분히 빠진 두부에 감자전분을 사방으로 골고루 묻혀줍니다. 그러고 나서 전분가루가 두부에 스며들기를 기다리며 3분에서 5분 정도 놔둡니다. 전분가루가 촉촉이 배어들고 나면 기름 두른 팬에 굽기 시작하는데 이쪽저쪽 뒤집어가며 두부의 여섯 면을 골고루 바삭하게 구워주면 됩니다.

이렇게 구워주면 마치 튀겨낸 듯 오래오래 바삭합니다. 두부가 다 구워졌으면 데리야끼 소스를 만들면 되는데 이게 아주 쉽습니다. 정종 3T, 미림 2T, 다마리 간장 1.5T (없으면 양조간장도 괜찮아요)을 팬에 붓고 소스가 바글바글 끓어오르면 구워진 두부를 넣고 요리조리 돌려가며 졸여주면 됩니다.


여기에 쪽파 다짐이나 어린 새싹을 올려주면 근사한 에피타이저가 된 답니다. 배가 아프다면서도 연신 방귀를 뀌어댄다면서도 다행히도 입맛은 여전한 채로 있는 딸에게 흰 죽이랑 두부조림을 내어줬더니 너무 맛있다며 호들갑을 떨며 한 접시를 금세 비워냅니다.


“엄마! 너무 맛있어서 손이 다 떨려!!”


말이나 못 하면 덜 미울 텐데 하면서도 그래도 잘 먹어주니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두부조림을 한 접시 다 먹고도 입맛을 다시길래 장염이 빨리 나으려면 적당히 먹어야 한다고 더 못 먹게 말렸습니다. 얼른 장염이 가라앉아야 하는데 싶어 마음이 또 쓰입니다.


대학생 엄마는 공짜로 되는 게 아닌가 봅니다. 오늘의 특별 두부식은 지친 나에게도 필요한 음식이 되어줄 거 같았습니다. 급 … 에너지가 고갈되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단백질이 필요하지만 고기는 별로 안 좋아하니 두부가 제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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